부고(訃告)
버스는 한참을 오지 않았다. 아이는 내내 조용했다. 여자 손은 정말 작네요. 저는요, 처음이에요. 누구 손 잡아본 거. 어색해진 공기에 고개를 돌린채 얼버무렸다. 에이, 애기 때 엄마 손 잡고 유치원 갔겠지이~ 다 잊어버렸구나? 버스가 왔고, 점점 멀어지는 얼굴엔 뿌옇게 김이 서렸다.
힘든 밤이었다. 할머니가 끝끝내 어음 막을 돈을 내놓지 않자 아빠는 다 같이 죽자며 식칼을 찾아댔다. 나는 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였다.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음악 사이로 아빠의 절망과 할머니의 흐느낌이 타고 들어왔다. 조금전 눈길에서의 일 따윈, 잊혀졌다.
수업이 예정돼있던 어느날 아이에게 뜬금없는 연락이 왔다. 집이 아니라 종종 가던 롯데리아에서 만나자고.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서둘러 도착해보니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건만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사연인즉슨, 전날 밤 우연히 부모님의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아 그 길로 집을 나왔단다.
십 육년 전, 손이 귀한 집에서 딸만 셋을 내리 낳고 더이상의 출산은 힘들다는 선고를 받은 부모는, 형편이 어려운 먼 친척의 남자아이를 데려와 입양했다. 어젯밤 한 통의 부고(訃告)전화를 받았고 문상을 가니마니 투닥였던 모양이다. 부고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의 생모였다.
아이는 조숙하고 똑똑했다. 하지만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을 감추고자 때론 필요 이상으로 시니컬한 태도를 보였다. 본인이 원해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하나같이 한심한 애들 뿐이라 말도 섞기 싫다고, 누나와 부모 역시 자신과는 대화의 레벨이 맞지 않는다며 손사래쳤다. '상대가 되는' 말벗이라곤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 늙은 강아지를 빼면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내가 유일했다.
차분하고 담담했지만 분명 그 얼굴엔 분노와 원망이 서려 있었다. 아이는 꼭꼭 씹어뱉듯 천천히 말했다. 이젠 알아서 괜찮다고. 누나들이 자기를 보는 눈빛이 왜 그리 서늘한지, 왜 엄마는 한번도 손을 잡아준 적이 없었는지 모든 의문이 풀렸다며 스무살이 되면 바로 집을 나올거라 했다. 햄버거를 사 주고 콜라를 리필해다주었지만 난 말을 아꼈다.
다음날 아이 큰누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제 안 오셔도 된다고, 사정이 그렇게 됐다했다. 묻고 싶었지만 알 것도 같아 말을 삼켰다. 그 뒤로 물론 몇 번 이고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하지만 받을 수 없었다. 난 이미 어깨가 너무 무거웠고, 누군가의 처음이 되어 마음을 내어주기엔 삶이 너무 고단했다. 길고 긴 겨울이 끝나가던, 이월의 마지막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