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떼의 맛

6인실 입원 병동에서 (1)

- 남대문시장 불사조 김 아주머니

by 저녁바람


4년 전, 빙판길에 미끄러져 다리 골절 수술을 하고 병원에 한달 반 남짓 입원했었다. 경춘국도변 작은 외과의원 입원 병동 6인실에서, 방송국 50부작 창사특집드라마 주인공보다 더 사연이 많은 인생을 살아온 그녀들을 만났다. 모두 100%실화이며, 오늘의 이야기는 8시간여에 걸쳐 같은 병실 옆옆 베드 환자 김 아주머니가 들려준 본인 인생 이야기 중 극히 일부분을 발췌해 기록한 것이다.


64세의 김귀자(가명) 아주머니는 강원도 동해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삼시세끼 비린내만 맡았지 푸성귀라고는 말린 나물 몇 번 먹어본게 다였던 그녀는 열아홉에 서울토박이 남자를 만나 상경, 왕십리에 정착한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인사하자 시아버지는 처음보는 며느리에게 창녀도 아닌데 왜 한복을 입고있냐며 밥상을 엎었다. 욕이라고는 '마할년(망할년, 이 절대 아니란다)' 한 단어밖에 모르던 열 아홉 새색시가 그날 썅년, 씹팔년, 창녀 라는 '서울욕'을 듣고 무슨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고.

여차저차 살림을 살고 스물 세 살에 뱃속 아이가 육 개월이 되던 날 밤, 꿈에 시커먼 구렁이를 본다. 그 무시런 것이 방바닥을 뚫고 머리만 내민 채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날름대는 긴 혀가 무서워 보기만 하고 꺼내주지 못한 그 꿈은, 태몽이었으나 일종의 복선이었다.

다음날 남편과 시장에 갔다가 사건이 터지고 만다. 남의 물건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손 안대는 성미였으나 무슨 호기심에선지 그날 닭집 가게 뒷편 에 놓여있던 고무다라이 덮개를 손끝으로 살짝 밀어본 게 화근이었다.
거기엔 껍질을 막 벗긴 시뻘건 개 시체가.. 있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던 그날 이후, 태기에 이상을 느껴 당시 유명하다는 옥수동 A산부인과에 찾아갔다. 의사는 자궁에 혹이 있다며 제거수술을 권했고 순진하고 어린 부부는 아무 의심도 없이 수술에 동의했다.
그러나 수술 다음날... 병원의 수세식 화장실에 변을 보러 갔다 복통과 함께 아이를 쏟는다.
그녀가 제 손으로 받은 첫 아이는, 귀를 잡고 웅크린 채 하반신이 잘려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양품점을 하며 근근히 먹고살던 서른살. 버스 사고로 청계천 고가에서 아래로 떨어져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죽다 살아난다. 그 이후 무당에게 자신의 사주를 내밀면 죽은 사람 사주를 왜 내미냐며 호통을 친다고.

'칠십 이년도에 빚보증으로 쫄딱 망해 젖먹이 업고 숟가락 두 개 이불 한채 달랑 들고 서울로 올라와 이 년 만에 집을 산' 으로 시작되는 시어머니의 자수성가 성공신화를 지난 십년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어느 정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이골이 났지만 이상하게도 푹 빠져들었다.

그녀의 외모는 작달막하고 동글동글 오동통해 귀엽기까지하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왜소하고 말라 영락없는 파파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남편은 매일 저녁 병원에 들러 그녀의 아픈 다리를 주물러주고, 오늘도 김 아주머니는 역시 우리 서방뿐이라며 엄지를 세워보인다.


옆 베드 윤 할머니의 이야기도 가히 역대급 미스터리 호러 영화 뺨쳤는데... 모두가 침상에 누워 눈물 짓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모두 다친 사람들이었고 밤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고통을 줄여 준 것은 약물이 아닌 바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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