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죽은 고양이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었다. 낮에 녹은 눈이 밤엔 다시 엉겨붙어 길은 미끄럽고 더러웠다. 집에 가서 뜨끈한 전기장판에 엎드려 귤이나 까먹으면 딱 좋을 날씨. 하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일하러 가야했다. 아이엠에프라는 괴물이 모두를 벼랑으로 떠밀던 때다. 난 이미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늘 돈이 절실했다.
학교 생활관 매점에서 팔던 천 원짜리 엄마손 김밥을 젓가락도 없이 우겨넣다 '과외 대신 하실 분 구함' 쪽지가 눈에 띈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우리집은 청량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시간 반을 가야 하는 경기도 외곽 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과외할 집은 서울의 학교보단 집에 가까운 도시골 어디쯤이었다. 첫 달 페이의 30%를 소개비로 줘야해 조건이 야박했지만 찬 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려 군부대 입구를 지나 족히 십 분은 더 걸었나보다. 군데군데 녹이 슬어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는 검은 철문을 슬그머니 밀자, 늙어서 짖을 힘조차 없어보이는 작고 하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든다. 마당 한가운데 수도꼭지를 기준으로 빙 둘러 기역자로 살림집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대문과 붙어있다시피한 맨 끝 방을 사용했다.
상고를 다니거나 졸업해 이미 돈을 벌고 있는 누나들은 건넛방 하나를 셋이 함께 썼다. 삼대독자인 아들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고 대학생을 붙여 과외공부를 시켰던거다. 부모는 한 번도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걔 방에선 누가 들고 나는 것이 웬만해선 눈에 띄지 않기에 종종 아이를 데리고 나가 시내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 주며 시간을 때웠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겠다해 함께 걷던 길이었다. 캄캄한 골목을 지나 첫 번째 가로등 밑에서 그만 아아아아악! 하고 길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연탄재와 진흙이 뒤섞인 눈더미 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동물의 이빨. 두 눈을 부릅뜬 채 빳빳하게 얼어죽은 흰 고양이였다.
어떠한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디지털 파일처럼 또렷하게 남는다. 괴로운 장면일수록 무의식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기 마련이다. 뇌에 박음질이라도 된건지 뜯어내고 싶은데 너무 아프다. 그날의 불쌍하고도 참혹한 죽음이 그랬다. 사체를 수습한다거나 구청에 신고라도 해줄 수 있었을텐데 이십년 전의 난 그렇지 못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꿈에서 그 장면을 반복해 보아야했다.
소리를 질러대는 내게 옆에 있던 아이는 아 깜짝이야. 괜찮아요, 다른 길로 가면 돼요. 라며 손을 꽉 잡고 끌어당겼다. 그 손을, 나는 왜 바로 놓지 못했을까.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