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떼의 맛

꽃님이 언니

by 저녁바람

꽃님이 언니는 서른 일곱살이었다.
스물 두살의 겨울, 나는 서른 일곱의 꽃님이 언니에게 일주일에 세 번 두시간 씩 수학을 가르치고 한 달에 30만원을 받았다. 첫 수업시간 다소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최종 학력은 '국민학교'이고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가는것이 최종 목표라 했다. 그날부터 나는 수학을 가르치고, 언니는 내게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경북 깡촌에서 식모의 딸로 태어나 식모로 살던 꽃님이 언니는 열 일곱살에 사랑에 빠져 상대방 남자와 서울로 도망쳐왔다. 자신의 나이 두 배나 되고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온 주인집 큰아들이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수 없었다. 자신의 rh- 혈액형 때문이라고 말하는 언니의 큰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나는 굳이 비극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 꼭 그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삼키고 다정히 손을 잡아 주었다.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분명 미인이었다. 그러나 잡티가 무성하고 가무잡잡한 피부와 나이를 속일수 없는 주름, 묘하게 풍기는 촌스러움이 태생과 삶을 가늠케 했다. 아주 가끔, 라이크어버진 뮤비의 마돈나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난 그럴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쁘고 젊어보인다고 칭찬했다.

사실 꽃님이 언니의 실제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얘기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닥 놀라지 않았다. 서른 일곱이나 마흔이나, 스물 둘의 아가씨에게는 똑같이 그저 '나이 든 아줌마'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꽃님이 언니가 좋았다. 다이어트 한다면서 요거트와 견과류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언니가, 브랜드 이름은 라코스테와 폴로 밖에 모르지만 검정고시학원의 젊은애들 사이에서 '명품걸'로 대우받는다며 웃던 언니가, 남편과 싸운 날엔 '대학만가면 정주영 동생같은 부자 남자를 만날거'라며 씩씩대던 언니가, 온 몸으로 내뿜는 순수한 천박함과 열정이 좋았다.

중졸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제 고졸 검정고시만 남겨놓았을때였다.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고 부부싸움이 잦아지면서 어느날은 남편이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했다. 꽃님이 언니는 불안하고 초조해보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꼭 갈데가 있는데 함께 가줄 수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언니와의 인연이 끝날 날이 머지 않았음이 느껴져, 아르바이트를 제끼고 일요일 아침 안동행 고속버스에 함께 올랐다.

터미널에 내려 두번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걸어 간 곳은 잡초가 무성한 누군가의 무덤이었다. 언니는 소주를 한 잔 따라놓고 한참을 아무말 없이 흐느꼈다. 출발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무덤의 주인은 몇년 전 돌아가신 꽃님이 언니의 어머니였다.

어떤 사연인지 남편은 몇달 째 돌아오지 않았고 언니는 더이상 과외비를 부담할수 없어 그만 두어야겠다고,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자기 얘기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몇 번이고 내 손을 잡았다 놓았다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보수를 받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하기엔 난 너무 가난했다.
마지막 수업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왔고, 마지막 과외비를 받아 산 17만원짜리 부츠도 소용없이 발이 너무 시렸다.

오늘은 내 생일.
나도 꽃님이 언니처럼 서른 일곱이 되었다.
꽃님이 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학생이 되었을까 남편은 돌아왔을까
언젠가 언니를 만나면

그때 참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꼭 안아주고싶다 .


2017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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