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주팔자(四柱八字)와 점(占)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태어난 연•월•일•시가 운명의 네 기둥(사주四柱)인데, 각 숫자는 동물을 뜻하는 12간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에서 한 글자, 10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에서 한 글자씩 뽑아 두 글자로 나타낼 수 있다. 내가 태어난 순간에 정해진 여덟글자, 바로 '아이고 내 팔자야~' 할 때의 '팔자(八字)다.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연구하는 명리학은 엄연한 학문이다. 세상 만물이 음과 양으로 나뉘고 불, 물, 나무, 쇠, 흙으로 이루어져 고유한 기운과 성질이 있다는 음양오행론 외에도 다양한 이론이 더해져 운명을 풀어낸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사엔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있다. 사주팔자를 분석해 내 삶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짚을 순 있지만 미래를 알고자 하는건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닐까?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고백컨데 꽤 많은 돈을 지불했다. 스무살에 대학교 앞 사주 까페에서 남편 자식 없이 외롭게 살 팔자니까 힘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속상하던지. 손수 만든 부채까지 선물해주신 혜화동의 한 역술가는 내 사주엔 두 갈래 길이 있다 했다. 사람은 하나인데 길이 두 개라... 지금 난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지만 힘들때마다 그 말을 곱씹어보곤 한다. 마치 가지 않은 또다른 길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늘 불안하고 흔들렸기에 점복에 의지하기도 했다. 내 삶이 왜이런가에 대한 답을 찾느라 사주팔자에 집착했다면, 신점을 보러 다닌 건 미래를 대신 결정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얘기가 오가던 무렵 연신내 애기동자에게 부자 남자를 만날 수 있겠냐고 농담처럼 물었다가 쌀알을 얻어맞고 호통을 들은 적도 있었다. 이년아, 무슨 욕심이 이렇게 많아. 머리위에 아지랭이가 피는 거 보니 곧 시집가겠는데 뭘! 먹고는 사니까 걱정마!
마흔이 넘어가면서 더이상 나는 신점을 보러가지 않는다. 헤어진 전 남편과의 사연을 들려준 남양주 할머니, 딸이 혼전 임신해서 손주가 생겼는데 내가 몰랐지뭐야 하며 묻지도 않은 가족사를 줄줄이 얘기한 의정부 백발 언니, 의심많은 중국인들보단 일본 사람이 상대하기 쉽다며 영업비밀을 알려준 돈암동 도사님까지... 내 미래가 궁금해 갔는데 오히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당황스런 경험을 하고나서부터다.
하지만 아직도 '오늘의 띠별 운세'와 '이달의 별자리 운세'를 즐겨 본다. 얼마전 '타로 카드 수강생 모집' 플랭카드를 보고 신청을 하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시작도 전 강의 개설 자체가 무산됐다. 찾아보니 역시나 온라인 강의도 무궁무진하다! 이런 데 관심이 많은 건 타고난 사주팔자때문일까? 이 쪽으로 관심을 가져도 될지 점집을 찾아가볼까? 공자는 40세를 미혹되지 않는(不惑) 나이라 했건만 아무래도 난 해당하지 않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