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산만한 이유

by 창작몽상가

네가 문득 연락이 왔어.

열어보니 몇 줄로 적힌 카카오톡 메시지가 캡처된 사진 하나.

그리고 메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어.


'2018년에 네가 나에 대해 적어준 것이야.'


문자를 보고 나서 순간 너의 연락에 반가움보다는 그렇다면 나의 것이 궁금해졌어.

그래서 답장에는 다른 인사도 할 시간도 없이, 그럼 네가 보는 나는 어떤지 좀 적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어.


사실 그동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크게 궁금증은 없었던 것 같아. 그냥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했나. 또 조금 불편한 사이와 만날 때는 순간순간 최대한 약점이 잡히지 않기 위해 예민함을 곤두 세워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에게 맞추려고 노력한 게 사실인 것 같고. 그래서 굳이 어차피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 것인가는 이미 알 것 같았던 것도 있고.

또 그냥 누구한테 이걸 적어줘라고 부탁할 정도의 임무를 주는 것도 부담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어차피 내게 그런 부탁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의 가까운 친구일 텐데 그럼 좋은 이야기만 적어 낼 테니까 이런 반강제적 덕담이 그다지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었고.

뭐 당장에 기분은 정말 좋겠다.



너는 항상 너 스스로에 대해 탐구정신이 강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사회성이 워낙 뛰어나서일까 너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보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기도 했어.

비슷한 점이 참 많아서 적지 않은 10년이라는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되었지만 그 부분에서는 우리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너의 성숙함과 어떤 일을 이끌어내는 능숙함이 늘 나에게 또 다른 자극을 주었고.


나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평가되는 것 자체에서 거부감이 들었고 자신감도 없었던 사람이라 신경 쓰지 않으려던 게 컸던 것 같아.


너는 네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평판과 이미지까지도 신경을 정말 많이 쓰고 늘 조심했지. 그냥 네가 어떻게 옷을 입는지, 지인들의 경조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등만 봐도 난 알 수 있었어.

그러다 보니 인맥도 정말 넓고, 그게 유지되려면 제대로 '인사'하는 법도 알고 사회적인 흐름을 잘 파악하고 센스도 있어야 그 인맥이라는 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게 현실이잖아. 넌 그걸 늘 잘 해냈고.

그래서 네가 늘 대단하고 나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아.

그렇게 많은 인맥의 경쟁을 뚫고 우리가 한때는 굉장히 자주 만났다는 것이 나름대로 뿌듯하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너는 '근자감'이 있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고 늘 이야기했었지. 그럼 너는 해맑게 웃으며 격하게 동의했고.

너는 정말 자신감 나아가 자존감도 정말 강하게 가지고 있는 단단한 사람이라서 내가 너를 보면서 적잖은 영감을 많이 받았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

나도 너랑 어울리면 그런 점을 닮아볼 수 있을까 해서 주변을 맴돌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그 다시 신경을 안 쓰던 내가 어제는 왠지 모르게 갑자기 내가 남들에게는 어떤 눈으로 비추어질까 라는게 슬쩍 궁금해졌어.


아마 날이 갈수록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더 커지는데 답을 확실히 얻기 점점 힘들어져서 스쳐가는 그런 것 마저 궁금해졌거나,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전 보다 많이 알게 돼서 과연 이쯤에서 남들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이미지나 성격의 변화가 있을까 라는 호기심이었던 것 같아.


나는 요즘 내가 나에 대해서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는 때는, 다르게 말해 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구해 본 적은 여태까지를 통틀어 바로 요즘 시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하는 사소한 생각 하나하나 마저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돼서 계속 머리가 아프게 고민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이유와 원인을 찾고 있어.


특히 요즘은 과연 나의 잠재된 본성은, 또 잠재된 능력은 무엇일까? 에 대해서 자문을 정말 많이 해.

그래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답을 얻으려고, 안 하던 일도 기회만 생기면 최대한 해 보는 중이야. 내가 늘 하던 일만을 하다가는 본성, 잠재성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하지 않던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할 때야 말로 나의 본성이 건드려지고, 그 낯선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보면, 내가 궁금하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거든.




네 부부의 답장을 보고서 역시 엎드려 절 받기가 나쁠 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서 그럼 이 좋은 말을 지지대 삼아 잠시나마 자존감 회복을 하기로 했지.


그런데 그 말 중에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는데 '수선스럽지만'이라는 단어였어.

네가 그만큼 나와 친하기 때문에 솔직한 한마디 살짝 끼운 것을 보고 웃음이 나기도 했고.

내가 자존감이 정말 낮은 시절에 이런 단어를 봤으면 너무 상처를 받았을 것 같은데, 말했듯이 나는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시간을 참 많이 가지면서 그런 말에 '그렇구나'를 여유롭게 읊조릴 수 있게 되었어.


네가 나만 보면 자주 하는 말이 '산만하다'였어.

그런데 뭐 충격적이지도 않은 게, 그런 류의 말은 이미 어린 시절 학생기록부에도,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입에서 자주 들락거리는 말이었거든.




나는 오늘 아침에 창밖을 지긋하게 보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는데 갑자기 그 말이 스쳤어.


그래서 자문을 했어.


근데 나는 왜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왜냐면 갑자기 그게 진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유는 내가 평소에는 정말, 정말로 산만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거든.

지금 창밖을 보며 가만히 머리를 바람에 날려가며 하늘을 바라보는 내가 전혀 산만한 사람이 아닌 거야.

나처럼 차분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렇게 혼자 있을 때는 아주 산 만과는 거리가 멀고 한없이 고요해. 내향적인 사람인 것도 맞고.


그런데 나는 왜 매번 그런 말을 듣는 것일까?

갑자기 감정 싹 빼고 아홉 시 뉴스처럼 팩트체크가 필요해졌어.


생각해 보니 내가 다른 사람들과 있기만 하면 정말인지, 수선스럽고 산만해지더라는 거야.

이어 그 뒤의 질문은

'그렇다면 왜?'

정말 왜일까?




나는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이야.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도 난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온전한 나로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아예 몰라서 방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며 불안에만 떨었지.

그런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혼자 있는 것도 하면 안 될 일 같고 죄책감이 들어서 이 숨 막힘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처럼 무조건 사람을 만나러 나가고,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을 줄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사실 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불안은 커지고 불편하기만 했던 것 같아.

정말 익숙한 사람과도 어느 순간에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어.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람들과 있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사람인 거야.


또 그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 보니, 내가 작은 자극들에 너무 예민한 사람인거지.

그냥 내가 아닌 타인은 나에게 있어서 그 사람들이 딱히 뭔가 나쁘게 하는 게 절대 아닌데도 그냥 타인 자체가 내 신경 자극의 대상인 거야.

내가 그렇게 예민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거고.

참 어렵게도.


그래서 친한 사람들을 만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무언가의 긴장감을 계속 놓지 못하니까 그게 몸의 반응으로 나와서 하는 행동이나 말이 뭔가 정상적으로 차분해 보이거나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서 산만해 보인다고 사람들은 느끼는 게 당연한 거지.




네 덕분에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타고 가다 보니 이유를 찾긴 한 것 같아서 속이 너무 후련해.


타인과 있으면 계속해서 나는 산만한 아이가 맞을 것 같아. 이유를 알고 나서 납득을 하고서 산만함을 인정하니, 나 스스로를 다독인 다음에 이해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제는 하나도 안 억울하네.


남의 눈에는 계속 그렇게 보여도 나는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니까 그냥 혼자는 무언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여태껏 녹화 중인 카메라를 향해 '뭐 난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윙크를 찡긋 하는 배우가 된 것 같은 여유가 생겨서 마음이 놓여.



나는 네가 메시지로 말해줬듯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하고 다정한 눈'의 이 '눈'을

이제는 세상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특히 잘 굴려보려고 해.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나를 돌보면서 내가 바라던 창작을 하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드디어 한숨을 푹 놓고서 정신적으로 정말 편하게 쉬는 중이야.

아참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

나도 컨디션에 따라 자극이 예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많고 신경 자극을 받으면서도 보고 싶은 내 사람들도 있고.

그냥 나는 혼자 있는 게 더 편한 사람일 뿐인 거지.



다음에 만나면 네가 나에게 또 같은 말을 하겠지.

그때는 이유를 너에게 설명해 주려고.

그리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 계기도 꼭 말해주려고.

네가 분명히 그 말을 들으면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이해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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