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색일까?
우리가 가까운 사이가 되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아.
왜일까?
우리가 가진 취향이 정말 비슷하면서도 또 아주 달랐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끌리게 된 건 아마 같은 초점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바로 그 초점이 취향이라는 곳에 맞춰져 있었어.
그때의 시기가 그랬던 걸까?
조금 미숙했고 딱히 취향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꼭 찾고 말리라 하던 것까지도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씩 더 확고해지기 시작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호기심이 생긴 정도의 시기라고 보면 될 것 같아.
그전까지는 취향이라는 것에 큰 질문을 생각을 해보지도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아.
그냥 단순히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 딱 여기까지였던 것 같아.
취향을 갖는다는 건 바로 이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로 끝내는 상태가 아니라 그 이후에 내가 그럼 이것을 왜 좋아하는 걸까? 좋다고 생각되는 이유, 계기를 심화시키고 분석하다 보면 그 취향이라는 것이 점점 뚜렷하게 내 안에 자리 잡게 되고.
또한 취향이라는 것이 나의 전체적인 분위기, 이미지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아무튼 너와 취향이라는 것을 찾아가려고 하는 시점에 만나게 된 것 같아서 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 돼.
그래서 우리의 대화 속에는 참 많은 말들이 '앗 네가 이거 좋아한다고 했잖아.' , '이거 그때 네가 그 미술관에서 좋아했던 그림', '너한테 잘 어울리겠다.', '이거 네 스타일인데?' 등과 같이 서로가 그냥 던지듯 하던 말들, 스쳐가면서 좋다고 했던 것들까지 세세하게 기억해 주면서 어딘지 모르게 취향을 챙겨주려 한다는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가깝게 그리고 서로를 꼭 붙잡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배려심과 동시에 은근히 풍기는 영감 같은 것도 있었고.
맞아. 나는 노란색을 좋아했어.
그런데 너를 만나기 전 까지는 내가 노란색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샀던 물건들의 색깔의 많은 것들이 노란색을 차지한다는 것을 네가 '알아차려주면서', 그리고 그걸 그렇다고 내게 말을 해주고 나서야 나는 정말인지 '아 나는 노란색을 좋아하는 거네'라는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길을 걷다가도 노란색의 어떠한 물건이 있으면 꼭 지나치지 않고 내게 '오오 이것 좀 봐! 노란색이야! 이건 완전 네 건데!'라고 해맑게 일러주곤 했지.
너와 다니다 보니 사소한 모든 것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기도 했지. 그리고 그때는 왜 이렇게 그런 일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에너지도 지금보다는 많이 있었겠다.
난 그래서 두리뭉실하게 그냥 좋은 걸 좋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에서 어느 새 좋아하게 되는 것들에서 이유를 찾아보는 사람이 되었어.
그리고 네 덕분에 타인의 취향까지도 인식하고 배려해 주는 행위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렇고 관계 성장에도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도 알게 됐어.
어느 날 네가 호들갑을 떨며 나타나서 내게 너무나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내가 왠지 정말 잘 맞을 거 같다고 했어.
내가 이유를 물으니 네가 그랬지.
'왜냐면 그 사람이 초록색 좋아하는데, 너도 초록색 좋아하잖아!'라면서 껄껄 웃던 모습.
그리고 그 말이 너무 귀엽고 또 어이가 없어서 한바탕 같이 까르르 웃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나는 네 말대로 노란색 다음으로 초록색에 꽂혀서 초록을 한창 좋아하고 있던 중이었지.
그리고 나는 생각했지. 어떻게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잘 맞을 것 같은 이유가 취미도 나이도 관심사가 아닌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색깔을 좋아하는 취향으로 그냥 이렇게 편견 없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
이걸 과연 20살이 넘은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생각일까? 그래서 나는 그 생각이 너무 귀하다고 생각됐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체가, 너라는 사람 자체가 빛이 나 보였지.
정말인지 좋아하는 색깔만으로 친구가 될 수 없는, 되지 않는 게 우리의 세상이잖아. 그런 세상에서 여태 살고 있던 네가 한 그 말이 정말 너무 소중하고 예뻐서 나는 지금도 네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
살면서 한 번씩 반드시 기억하게 되는 말소리가 있는 것 같아. 그런 말들을 만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우연히 갑작스레, 또. 어떨 때는 막상 별건 아니기도 하지만, 크고 작은 감동을 주는 말은 소리가 함께 머릿속에 저장되고 가슴속에서 회자되고.
몇 년이 지나고 네가 문자를 하나 보냈지.
'네가 살아온 삶의 색은 어떤 색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 현재의 삶은 어떤 색으로 표현할 것 같아? 색과 그 이유가 있으면 간단하게 설명해 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네 문자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서 그냥 너답다 싶었어. 그리고 고민에 빠졌었어.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이 노랑과 파랑 같아.
이유는 노랑이 주는 호기심, 우울, 열정, 따뜻함 그리고 파랑이 주는 노랑과는 다른 조금 깊이 박힌 우울, 동시에 파랑이 희망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바다를 헤매는 물고기가 생각났어.
현재 삶은 하늘색과 흰색 같아.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고 그전보다는 더 성숙해졌고, 안정감 같은 것도 생겨서 파랑의 짙은 안개가 조금은 겉히고 잔잔한 하늘색이 된 것 같고,
흰색은 나에게 무궁무진한, 어떤 색이든 조금 탁하고 연하게 만들 수 있어서 무한의 가능성을 주는 것 같고 , 일종의 생기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서. ]
라고 보냈어.
난 과거엔 바다에서 길을 잃은 물고기 같았어.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도 모르는 광활한 바닷속에서 무리를 잃고 물살을 따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딘가를 왜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또 내가 어딜 가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제자리에 있으려고 하는 건지 조차도 알 수 없이 붙어 있는 지느러미로 물속에서 겨우 숨만 쉬며 버티고 있는 물고기.
갑작스러운 진지한 물음에 얼른 답장을 보내놓고서 너무나 무거운 생각에 잠겼어.
언급된 물고기에 대한 설명은 굳이, 차마 하지도 않았지.
가슴이 조금 먹먹했어.
그런 아름다운 질문을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마움 그리고 나의 현실에 대한 착잡함으로.
내가 과연 바닷속 물고기였을까도 의심이 들었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흘러들어온, 바닷속도 아닌 바다의 수면에 둥둥 떠 있던
심지어는 알고 보니 살아있는 물고기가 아니라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속이 텅 빈 플라스틱 물고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사실 그동안의 방황은 지금 와서 약간의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탈바꿈 되어 간다는 생각은 들어.
과거의 어리숙한 내가 품고 있던 노란색 그리고 짙은 파랑의 기운은 결국에는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담긴 색깔이었고, 피할 수 없는 필수적인 고통이었다고.
이제 나는 내가 가진 지느러미를 한껏 이용해 중심과 방향을 잡아 능동적으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 지느러기마 있어서 맘껏 헤어 칠 수 있음을 인식한 깨어있는 물고기.
어쨌든 플라스틱 태엽 장난감 물고기는 아니게 되었다는 건 확실해졌으니.
나의 삶이 흰색으로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좋겠어.
흰 백지위에 그려지고 채워질 잠재성을 깨우는 일은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나는 또 네 덕분에 잃어버린 조각 하나를 더 찾아서 퍼즐판 속에 붙였어.
그 여정에 네가 항상 있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오렌지 색을 참으로 좋아했던 네가
지금도 여전히 그 색에 머무르고 있는지 연락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