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을 읽고 한참을 울었어. 그리고 여전히.
그 책을 읽고 한참을 울었어.
시간이 흐른 후에 , 다시 그 책을 펴면 또 눈물이 날까 싶어서 한번 다시 펼쳐보기도 했지.
이제는 아닐 거라고 무뎌졌다 생각해서 다시 그 책장을 넘겼지만 아직도 티슈를 몇 장 꺼내야 하는 나 자신이 넘겨지지 않은 채로 있더라.
네가 그 책을 건네면서 '그냥 네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하고 나서 내가 '왜?'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너는 허겁지겁 덧붙였어.
‘아니 대충 보면 알겠지만 삽화도 진짜 예쁘고.. 아무튼 가볍게 쭉 읽기 좋은 책이니까 한번 보려면 봐봐'라고 부연설명을 했어.
적극 추천은 아니지만,
그냥 내가 가볍게 한번 읽어보기를 바라던 책.
한번 쓱 읽어보라고 할 정도의 별거 아닌 책이지만 ,
또 굳이 내 손에 쥐어 주던 그 책.
비행기 안에서 잠이 오지 않길래 그 책을 펼쳤어.
네 말대로 책에 실린 삽화가 참 예뻐서 자연스럽게 손에 들어오더라.
삽화를 대충 훑고서 본격적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어.
그 뒤로 정말로 내가 하늘 위에 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어. 내 발이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기분이었어.
그리고 난 닿지 않는 그 발을 땅으로 가져오려고 계속 안간힘을 쓰면서 조금 많이 흐트러졌어.
나는 많이 울었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우는 모습이 보일 세라 눈물을 계속 닦아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티슈 한통을 다 썼지.
페이지들이 어떻게 넘어간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아. 진짜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고이 넘긴 건 기억이 나면서도 어떻게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게 된 지는 모르겠더라.
나는 늘 그랬어.
네가 책을 한 권 읽으라고 주면 거의 무슨 숨어서 금기서를 읽는 것처럼 왠지 모르게 짜릿하고 재미있어.
아주 술술 잘 읽히는 건 물로 니거니와 진정한 몰입을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곤 했어.
추천해 주는 것이 되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냥 단지 너의 입에서 너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이유가 나의 몰입 동기이자 계기가 돼.
나는 거의 무슨 숨겨졌던 보물을 발견하는 호기심 정도로 네 책을 읽거든.
솔직한 심정으론 네가 일러주는 책의 내용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너라는 사람의 힌트를 조금 얻기 위해 집중을 해.
네가 말한 책 속에 들어가 보면 너의 어떠한 흔적이 있을 것만 같아. 어떤 면에서든 네가 그 안에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그 책을 좋게 생각했을 테고 그래서 나에게 추천해 준 것일 게 분명하거든. 어쨌든 어떠한 포인트가 너를 움직였을까 해서 웬만해서는 뚫리지도 않을 만큼 단단한 너를 조금이라도 흔들기라도 한 것이 무엇인가는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적혀 있을 것만 같아서 진심을 다해 본다.
나는 이러한 추천들이 바로 네가 흘리는 일종의 흔적이라고 봐.
네가 직접적으로 추천까지도 해주지 않고 그냥 얼핏 던지는 말로 좋았다고 했던 영화든 글이든 무언가가 있으면 어떻게 서든 그 자료를 찾아 반드시 보려고 해.
유명한 현직 작가들의 추천 베스트셀러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너의 추천 책이 내게는 정말로 중요하고 나에게는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지.
그리고 단 한 번도 정말로 단 한 번도, 실망했거나 별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너의 취향과 철학을 너무 믿고 효용성 있는 가치라고 무조건 적으로 믿는 것도 있고 특히 너의 추천을 따라가 보면 정말로 그 안에서 너의 발자취가 담겨있더라.
아, 이런 감정선에서 네가 이 영화가, 이 글이 좋다고 했을 것 같다, 아, 이런 장면에서 네가 어떠한 희열을 느꼈겠구나 라던지.
그냥 네가 자꾸 보여서,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
그 정도로 너의 말은 나에게 참 많은 의미를 던져주지.
우리는 정말 비슷한 감정선을 가졌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고 그 이유는 너도 잘 알 거야.
나는 누군가가 네 얘기를 하면, 입을 닫고 싶을 때가 참 많아. 부연 설명을 굳이 하고 싶지도 않을 때가 많아. 왜냐면 그들은 어차피 너를 알지 못해.
확신하는데 너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나일 거야.
그 이해라는 게, 너에 대해 잘 안다 뭐 그런 이해가 아니야.
너라는 사람을 그동안의 상황들, 환경을 종합해서 너의 행동에 대해서 '그럴 수밖에 없지'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이해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네가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백방으로 감싸주게 되는 그런 이해. 다른 사람들이 혀를 차고 못마땅하게 생각해도 나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으니 더 이상은 나쁘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그들을 설득해 볼 수 있는 그런 이해.
이제는 불행히도 나는 널 전만큼 잘 알지 못하게 돼 가고 있어. 참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번의 근황 업데이트를 놓치면서 그렇게 되었나 봐.
그래서 이해하기도 점점 쉽진 않아. 하지만 나는 반드시 너를 이해해야만 하는 사람이더라. 그냥 이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나의 임무이자 업일 거라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껴.
점점 너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는게 사실이야. 그만큼 너는 그런 쉽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그럴수록 나는 내가 지켜내기로 한 것 들을 더욱이 지켜내야만 하는데 근데 너무 어렵다 사실.
그런 너를 이해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네가 걸었던 길 속에서 혹시나 건질 게 없나 해서 발자취를 다시 밟는 방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너의 흔적이 담긴 무언가를 찾다 보니, 가장 첫 번째 수단은 책이었던 거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계획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게, 너는 갈수록 어디에도 흔적을 거의 흘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애석하다.
네가 빈틈을 조금만 내줬으면 하는데,
빈틈들을 더 이상 메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야만 하는 너를 지속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겁이 나는데.
의무를 행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야.
네가 한번 가볍게 읽어보라고 했던 그 책,
쭉 한번 읽어 보고서 혹시 짐이 되면 그냥 버리라고 까지 했던 그 책말이야,
그 책이 나에게 얼마 큼이나 말을 걸어오는 책인지는 네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이라서 넌 그 책이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헐거워져 있었고 구겨지고 얼룩이 있고 여기저기 삐뚤한 줄이 마구 쳐져 있었지.
네가 중고서점에서 샀던 책이기도 하고.
그 줄들이 너의 것이었는지 그 전의 사람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 누군가의 흔적이 남긴 곳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 조금 변태적일 수도 있는데 은밀한 희열이 있더라.
다른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이 책에 밑줄을 그을 만큼 좋았는지를 알게 되는 일은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이야.
그 밑줄 위의 글자에서 나도 어떠한 감흥, 감동을 느낄 수 있는지를 비교하는데 그것 또한 헌책을 읽는 특권 같고.
어쩔 땐 이 사람은 왜 대체 이런 데서 줄을 그었을까 싶은데 그게 정말 재미있더라.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시선을 갖은 사람들의 흔적. 그래서 누가 이미 읽었던 헌책을 사면 종종 이런 흔적들이 있어서 새책보다 훨씬 매력이 있어.
언젠가부터는 네가 새책을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헌책들이 익숙해진 것 같아. 그전까지는 새책만 고집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또 너는 책을 볼 때 줄을 긋고 무언가를 적어놓기도 하지.
난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과감하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언젠가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서
네가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과‘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리고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나 봐.
어느 날부터 나도 새 책, 헌 책이던지 간에 너와 같은 방식으로 읽게 된 거 있지.
단지 읽는 게 아니라 나도 그 안에서 너처럼 ‘대화’를 하고 싶어서.
난 너를 자꾸 따라 하게 돼.
아니 자꾸 따라가게 된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넌 항상 책에 진심을 다했지.
언젠가는 네가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책이 너의 마음을 사려고 자꾸 주변에 맴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네가 혼자일 때 책이 있어줘서 고맙기도 하고 또 조금 원망스럽기도 해. 어쩌면 그 책이란 게 없었다면 네가 혼자이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같아서.
순서가 어떻게 되어버린 건지는 모르지만 어쩔 때는 이게 없었다면 너는 정말 어땠을까 해
난 네게 언젠가 네가 준 그 책을 다 읽었더라면서 이야기를 꺼내 봤더니 네가 건조하게 대답했지.
‘그러게 네가 좋아 할거 같긴 했다'라고 가볍게 이야기하고 또 그때처럼 뒤에 내가 어떠한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곧바로 덧붙이길, 너무 오래돼서 사실 내용은 잘 기억도 안 난다고 했어.
다만 내가 좋아할 거 같았다는 느낌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지. 네가 어쩌면 그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지 않는다는 거 , 거짓말 일수도 있지만, 나는 네가 그 내용과 나와의 연관성을 잊었으면 해서 , 차라리 다행이고 잘됐다 싶었어.
너는 그냥 내가 좋아할 것 같았던 그 느낌만 가지고 있으면 될 거 같아.
그 책의 내용을 붙잡고 구질하게 엉엉 울어대는 건 나 혼자 숨어서 하고 싶거든.
그런데 네가 말한 ‘내가 좋아할 것 같았다’는 의미가 단순히 내용이 좋다가 아니라 넌 알고 있었을것 같아. 내가 가장 싫어하던 모습을 그 속에서 찾을 텐데 그 싫음이, 슬픔이 책 속에서 나타나면 어떠한 방식으로 내게 위로가 될 것을 예견하고 그래서 좋아할 것 같다고 했을 네가, 기억력이 참 좋은 네가 그 내용을 잊을 리가 없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어.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댄 건 나에 대한 너의 배려였을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네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한건 거짓말일 지도 모른다고 한 거야.
넌 그랬을 거 같아. 넌 그런 사람이야.
난 그래도 그 책을 보고 울었다는 말을 끝까지 안 한 나 자신이 뿌듯했어.
난 그런 사람이고.
사실 난 그 책이 안좋았어.
너무 미웠어. 너무 슬펐어. 너무 화가났어.
그래서 책이라는게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미움, 슬픔, 분노
나 이런것들 분명 안좋아하는데
그런 감정들을 책 안에서 읽고 나서는 그 책이 좋다고 말하게 된다는게 정말 너무 이상한거야.
게다가 그냥 좋다가 아니라 미치도록 좋아.
아 나 그 책 죽도록 좋아해. 진짜 이상해.
저번에 아주 오랜만에 만났더니 그때도 빈손으로 오지 못하고 어떤 책 하나를 들고 왔지. 그 여유 없는 마음을 내게 조금 써서 약간의 틈을 준 것 같아 고맙고 감동이었어.
아마 너는 내가 그 책을 단순히 가볍게 받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나는 아직 그 책을 한 장도 펼치지도 않았어.
왜 우리가 너무나 기대하는 게 있으면 최대한 아끼고 싶고, 정말 좋은 때를 기다리고 싶잖아.
그 책이 그렇더라.
사실 너무 읽고 싶고 못 참겠지만, 너무 흔하지 않은 일인 데다가 바라던 귀중한 일이다 보니까 그 책을 한번 잡으면 너무나 빨리 끝나 버릴 까봐.
그래서 열지도 못하고 한쪽 구석에 놓고서 지나가면서 오며 가며 겉표지만 훑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어.
뭔가 굉장한 때를 찾고 싶어. 새해라던지 생일 이라던지 기념일도 괜찮은 것 같고 아니면 어느 날 내 감정이 희망에 찰 때도 좋고, 또 바닥이 치는 날 이라던지 뭔가 도움을 받고 싶은 날이 오면 펼쳐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아무튼 어떠한 때를 기다렸다가 그때가 되었다고 감이 오면 각을 잡고 열려고 해.
약간 민망하고 웃기지만 일종의 계시를 받는 것처럼 말이지.
그때 너의 흔적을 만나려고.
네가 어떤 모습으로 그 안에 있을지 기대가 돼.
사실 못 참겠는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기다리는 중이지.
그래서 조만간의 그때에 너는
너를 내게 보여주기로 해.
난 그 틈으로 너를 찾으러 가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