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하지 않는 법
뭐가 그렇게 슬펐니?
너를 중심축으로 주변의 사람이 슬프고 슬퍼야만 했던, 슬프기를 계속했던 시절이었네.
8살부터 슬프기를 시작했던 너를 발견했어.
산타할아버지를 여전히 기다리던, 그의 집이 궁금하고 부모는 누굴까 , 어떻게 착한 일을 하는지 아시는 건지, 그러다가 정말로 계실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마지막엔 선물을 기다리고 산타할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했지.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던 네가,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곧 바로 뒤에 찾아온 새해에는 해가 바뀌는 것이 슬프고 또 슬프다고 했다.
그래서 알게 됐어. 네가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
보통의 아이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기쁜 하루를 보내보자며 다짐하던 너의 나이는 고작 8살.
왜 이렇게 슬픔이 너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걸까.
그 시절 사진 속에서 조차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거의 없던 넌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한편에 써놓기만 했던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도 또 그놈의 슬픔 때문에 한바탕 울었던 게 분명해.
그 글을 발견함으로써 네가 정말로 오래전부터 깊숙한 슬픔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 발짝 더 가까워졌어.
그 명백한 사실이 발각됨으로써 나를 다시 또 슬프게 만들긴 했지만.
너의 어린 일기장을 보면 숨이 막히는 무언가가 있어. 밝은 느낌은 드물게 나타나. 늘 조금 어둡고 흐리면서 퉁퉁 불어 있는 기운이 너무 많이 보이는 사람이라서 어른으로서 미안해.
그때 너를 어루만져주고 지켜줄 수 있었다면 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을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때 무언가를 해줬더라면, 그때에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봐줬다면은, 그때에 바로 잡았더라면, 그때 필요한 누군가 옆에 있었더라면.
아. 이런 마음을 후회라고 부르는 거겠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불평과 한탄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라는 심정으로 살아가게 됐어.
왜냐면 누구든 그렇듯이 그 편이 더 어른스럽고 의젓해 보이는 대처야.
후회를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게 조금 더 앞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고 남들이 보기에도 그게 건전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니까.
그런데 솔직히 후회라는 거,
감히 할 수 있는 정당한 어떤 것 아닌가?
후회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좋은 기운이 아니니까 하면 안 된다는 강박 아래, 후회를 하면서도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을 까봐 후회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냥 한탄일 뿐이라며 거짓으로 둘러대는 거.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후회 안 하는 척하는 거.
사실 나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런데도 사람이 참 웃기지. 또다시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후회는 하지 말자며 되뇌고 다짐하며 주문을 걸어.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해보고 후회하느냐 하지 않고 후회하느냐의 질문에서는 당연히 해보고 후회하자며 엄청 쿨하게 말하면서도 막상 그 후회를 늘어놓게 되면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또다시 그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라는 굴레에서 고뇌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해.
후회.. 좀 하면 안 돼?
해도 되겠지.
그런데 후회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지가 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나의 후회를 늘어놓을 곳이 없어.
그리고 누구도 나의 응석받이가 되게 해서는 안 되는 거고. 게다가 그런 좋지 않은 기운을 남들에게 전하는 건 너무 실례가 되는 일이야. 알고 있어.
그래서 결국에는 또 자기 검열을 하고 채찍질을 하면서 후회 안 하는 척 그만한다고 말한 것을 다시 번복해.
사람이 후회 속에서 살 수는 없을 거야. 그치만 무언가 선택을 하는 그 순간순간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던 사람들은 후회라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 같긴 해.
뭐 약간의 실수,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여기고 후회까진 하지 않고 조금 서운해하는 시간을 갖은 뒤에 다음 챕터로 가기 위한 페이지를 씩씩하게 넘기겠지.
그런데 그 선택의 순간에 지지리 운이 없는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었을 거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크지 않았던, 매우 좋지 않은 타이밍을 갖은, 조금 안타까운 사람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그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이렇게 구차한 말들로 포장을 하고 있어.
후회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일까 아니면 그반대 일까가 궁금해.
이유는 그냥 내가 보통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서.
보통의 사람과 비슷하게 가고 싶은 건 맞지만, 사실 보통의 사람이 되는 건 또 별로야.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감사한 일이지만, 평범하게 사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감해.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두 가지 있다는 것을 최근에 확실하게 깨달았어.
지금은 확실해졌는데, 어린 시절 나로 돌아가보면 타고난 기질 자체가 나를 이 방향으로 자꾸 끌어냈던 것 같은데 뭐 그때는 알아채지 못하니까 방황한 것 같고.
독창성과 자유.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남들과 같지 않았으면 좋겠어.
보통의 또는 평범함이라는 말이 사실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테마야.
왜 그러면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게 걷게 된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길 위에서 지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이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려면 아무래도 평범한 게 진짜 좋긴 하거든. 물론 가슴속에서는 평범하지 않고 싶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불만, 불행의 대부분이 내가 누군가와 비교되면서 비슷하게 무언가를 행해야 하며 또는 그들 만큼의 실력을 유지해야 '평범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자꾸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나는 나의 수준에서의 ‘고유의 나’로 있고 싶은데 계속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잣대가 나에게 들어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칼로 군데군데 서서히 찔리고 있는 기분이었어.
독창성이라는 말의 나의 의도는 번뜩이는 기발한 무언가를 창조해 내고 그런 독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면에서 독창성을 말하는 건데, 설명하자면 개인의 개성 그리고 나아가 고유의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대체불가능한 무언가를 가진 개개인이 있는데 그것을 자유 속에서 지켜 내는 게 나에게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기준이 정해져 있고 비교가 되어야만 하는 경쟁사회에서 나는 실패작이 되었고, 후회가 가득한 사람이 된 것도 그런 영향으로 생긴 걸 거야.
아직도 잘 모르겠어. 보통의 사람이고 싶으면서도 보통의 사람처럼 사는 건 (물론 쉽지도 않지만) 나의 추구 가치에서 멀어지는 것이라서 혼란스러워.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면서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게, 내가 지금 '세상과 나를 분리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고.
내가 세상 안에 들어가서 안착할 궁리를 해도 모자란 판에 자꾸 떨어져 나가려는 것을 보면 어쭙잖은 망할 놈의 독창성을 추구하는 나 자신이 걱정되기도 하면서 이렇게 태어난 사람으로서 결국 짊어지고 가야 하는 업 인가 싶지.
네가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알수록 나는 그렇다면 마음먹고 보통의 사람이 되기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 계속해서 그 슬픔을 보는 게, 그것을 지켜보는 게 나에게도 좀 무리가 되는 것 같아서.
슬프지 않으려면 그냥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하면 숨은 막히겠지만 슬픔은 덜 할 테니까.
계속해서 고민해봐야겠지만 네가 너무 늦지 않은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다만 늦은 결정일지라도 너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은 상태에서 내리는 거라면 뒤에 찾아오는 것은 말했듯이 후회가 아니라 약간의 서운함 정도로 바뀌는 건
정말로 확실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