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랑 속의 자유

by 창작몽상가

자유로운 것들은 빨리 죽어.



정처 없이 걷다가 내 옆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니 그래.


펄떡 뛰어서 그 새 위에 올라타서 그가 가는 길을 함께 날아가 보고 싶고, 그들처럼 강가에 둥둥 떠서 쉬고 싶고 또 나무에도 앉아 보고 싶으면서도,


갑자기 새들이 가엽다고 느껴졌어.

자유롭지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참 많이 하잖아. 나는 틈만 나면 그 생각을 해. 그 원수 같은 자유를 추구하다 보니 결국에는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 안에 갇혀서 결국은 자유롭지 못하니까 여전히 방황의 연속이야.


그런데 자유로운 애들은 마치 자유를 얻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듯, 자유로운 대신에,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빨리 죽어.

생각해 보니 저렇게 자유로운 것들은 우리 인간에 비하면 기본 생명이 길지 않아. 그리고 아주 연약해.


우리는 다른 것들에 비해 평균수명을 길게 받은 대신에 자유는 쉽게 얻을 수 없도록, 쟁취해야만 하도록 설계된 창조물일까?.

그럼 언젠가 마침내 완전한 자유를 얻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죽는 걸까? 죽어있는 걸까?

죽음이 자유의 최고 경지일까?



비교적 마음껏 틀에 갇히지 않고 살아가 보이는 듯한 사람들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르고 그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몇몇 있을 거야. 혹은 '자유로워 보인다’ 라던지.

그러나 ‘자유로운 육신’이라는 말을 가진 사람은 없어.

‘자유인’이라는 말도 잘 쓰지는 않는 것 같은데, 자유인이라는 말이 있기 위해서는 어느 것에도 소속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 일 텐데. 사회는 그를 허락하지 않아.

우리는 탄생을 하는 순간 자유인이 될 수 없어. 부모라는 보호자 밑에 소속되니까.

부모가 없어지거나 해도 우리는 사회, 세상이라는 보호자에게 또다시 존속 돼.

그래서 위로 차원에서 영혼이라도 자유로워라는 격려로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영혼과 생각은 자유로울 수 있으나 우리의 육신은 절대로 자유가 될 수 없는 게 사실 이 세상의 딜레마인가 봐.


자유를 추구(하는)인 은 되기가 가능해.

그러니까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지만 자유를 '추구' 할 수는 있어.

그래서 모두가 위대한 자유를 추구하면서 갈망하고 평생의 숙제 같이 그것을 바라보면서 고군분투한다는 건데.

결국 자유에 다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정말 죽음이라는 게 결국엔 자유의 종착지 일까. 아니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한 때의 신기루 같은 것일까?


그런데 죽음은 삶의 종착지 이기도 하니까 결국에는 이 생에서 모든 노고와 수고, 내 육신, 영혼 전부는 언젠가 바람처럼 사라져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다는 거지.

그래서 죽는 건 안될 것 같았어.

살아있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끝내 얻을 수 없겠지만, 어차피 내가 살아있지 않고 없어진다면 그 어떤 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자유를 찾으려 수고를 겪으면서 얻어지는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깨우치는 여정 또한 자유로 다다르는 길 같아서.

그 길 끝에 마침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여전히 자유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못할 테지만 자유를 추구하며 그 방향으로 가보는 건 계속 할것 같아.




너는 '아이고 죽겠다'는 말을 많이 했어.

그러면서도 '야 근데 죽는다는 사람은 꼭 하느님이 안 데려가.'라고 하고 찡긋 웃음을 지어.

그 뒤 숨결 한 포기의 침묵을 푹 들이마시고서 다음 문장을 이어가. '... 꼭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데려가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는 웃음이 사라지고 시선이 사선으로 틀어지곤 해.


그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네가 말하기 전에 대화 중 낌새가 오면 내가 선수 쳐서 시 구절을 외우듯이 읊고 '이 말하려고 했지?'라고 하면서 짓궂은 표정을 지으면 우린 함께 눈을 마주친 후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곤 했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해도 이 문장은 우리끼리의 심심풀이 문장 같은 게 되어서 이제는 그냥 재미있어서 농담처럼 '아이고 죽겠다'라는 사실 의미 없이 던지는 너의 이 말 뒤에는 하나의 세트처럼 뒤의 말까지 마치고 웃어댄 후에야 우리는 다른 대화의 주제로 넘어갔지.


나도 잘 알지.

너의 ‘아이고 죽겠다'는 결국 '살고싶다'라는 말이었다.


죽어서까지 자유롭다는 건 결코 없었다.






또 다른 네가 그랬어.

'사랑'이 삶의 가장 큰 가치이자 목적이라고.

지금 하는 일, 노력. 모든 것이 정말 결국엔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어.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이 없으면 너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내어 줄 대상이 늘 필요하다고.


소셜네트워크 세상 안에서 아주 좋은 이미지로 너를 포장해 내는 것을 , 아주 많이 부러울 만큼 잘 해내면서, 솔직히 보이기 위해 조작하는 것들이 많아서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엔 최종 종착지인 '사랑'을 위한 어떠한 하나의 노력이자 준비일 뿐이라서 그 정도의 수고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삼고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고.

평소에도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하고 네가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이 참 가득한 너는 서둘러 그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안달이 난, 말 그대로 '사랑둥이'지.

나는 그 당시도 마찬가지로 내 삶의 목적은 바로 '자유' 였어.


나는 그냥 모든 것을 다 떼어내고, 간섭에서 벗어나 시원한 숨을 맘껏 쉬기 위해 많은 것을 저버릴 준비가 되어있었고 그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지. 그리고 이를 대신할 말은 '자유'였다고 생각했다.

자유가 바탕이 되어야만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자유가 있어야 사랑을 할 여유도 생기는 거라고.


사랑이 굳이 없어도 될 만큼, 나는 사랑의 진정성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 나한테는 항상 어떠한 조건이 전제로 깔려야만 하는 게 사랑이었거든.

만약 어떤 사람이 괜스레 좋다면 그 사람이 내게 어떤 부분을 채워주니까 인 거지 그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마냥 좋은 건 아니잖아.


뭐 사랑이라는 거 나도 제대로 받아본 적 있긴 하겠지? 그런데 그것은 상대가 내어주는 사랑이었겠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과는 자주 달라서 이럴 거면 차라리 안 받는 니만 못한다고 , 이런 게 사랑인 거라면 굳이 안 받고 굳이 안 하고 싶다 생각한 적이 많아.

믿었던 모성애마저도.

어릴 때 내가 기억나는 나이에서 느꼈던 사랑이라는 것은 항상 뭔가가 전제되어 있었어.

내가 어떤 일을 잘 해내야 사랑을 받는 느낌. 잘 해내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하는. 그래서 혼란스러웠어.

사랑은 무언가를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던 순간부터 불안은 시작된 것 같아.


약간 칭찬하고 비슷한 느낌이지. 하지만 칭찬과 사랑은 엄연히 다른데.

칭찬 받을 거리가 없어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야 타당했던 건데 말이지.


사랑이 성과가 되어야 하는 건 말이 안 돼. 그런데 나는 무언가를 잘 해내는 아이가 절대 아니었던 게 화근이었지.

그래서 사랑에 대한 의심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고.

기억나는 나이 이 전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분명 받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너무 애기 때라 기억은 없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압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유가 너무 중요해졌어. 그래서 나는 사랑보다는 자유를 추구하기로 했지. 자유가 있으면 굳이 사랑을 받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어. 나에겐 그 경지가 최고의 안락 상태라고 생각됐거든.


그런데 너랑 이야기를 할수록 내가 하는 생각이 조금 잘못된 것일 수 있겠다 싶은 때가 있었어.

자유가 있은 후에야 즉, 내 마음이 여유가 생겨야만 사랑도 주기도 하고 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너는, 충만한 사랑 안에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내게 말해주고 있었어.


네가 그랬지. 사랑을 주고받으면 일종의 안정감 같은 게 생기는데 그것이 너의 모든 용기와 시도, 도전의 원동력이 되고 뭐든 헤쳐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지. 그래서 그 사랑의 둘레가 바탕이 되어야만 너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어.

나는 일단 타인이 포함된 이야기에서는 자유라는 게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의 이야기가 정말 신선했어. 자유롭다는 건 혼자 있을 때만 얻게 된다고 당연시했어.


넌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에서도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자주 감동을 받았고, 그런 이유로 때론 어떤 작품이, 또 어떤 작가가 그 때문에 좋다고도 했지.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는 게 작품 속에서 너무 강렬하게 읽힌다나.


그 사랑이 도대체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길래 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데?

넌 아마 그렇게 진한 사랑을 무조건 적으로 받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 그에 대한 맛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그게 너와 나의 다른 점이었을 테고.

사람들이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잘 주기도 하는 거라고 하듯이 결국 사랑은 학습이 아니라 그냥 몸에 베인 습관 같은, 일상적인 것 이어야만 할 거야.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줘야 하는 날이 오면 그 습관을 잘 정착시킬 수 있을까. 그럼 사랑을 습관으로 만들어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게 나의 숙제인가.


사랑을 노력해야 한다는 자체가 조금 서글퍼지기까지 해. 그래서 글을 쓰다가 또 지우다가를 반복했어. 그냥 나도 대충 동의하고 모두처럼 사랑을 가장 큰 가치로 두고 사는 척이라도 하면 이 얼마나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일까.

이렇게 골치 아플 일도 없을 텐데.


아무튼 내가 최근에 느낀 건 자유로운 새들은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러니 그들이 더 마음껏 하늘을 누비고 다녔으면 좋겠어.

새들처럼 자유를 갖으려면 어떠한 한 가지를 희생해야만 해. 그런데 반면에 사랑을 주고받는 건 희생이 꼭 필요한 건 아닌데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굳이 희생을 기꺼이 하려고 해. 그게 자유와 사랑의 다른 점이겠지.


정말 사랑 안에는 무언가 있다는 건 확실한가 봐.



난 아직은 그래.

사랑으로서 자유로워지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맘껏 사랑해 보는 마음을 갖고 싶다고 생각 중이야. 왜냐면 사실 제대로 사랑해 본 적 조차도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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