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때'라는 글감이 생겼어.
곧바로 이렇게 적었지.
[내가 원할 때가 바로 '때'이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때'가 아닐 뿐.
그럴 때는 원하게 될 그 '때'를 기다려 보는 게
때때로 좋은 방법이다.]
곧 네 생각이 났어.
너의 '때'는 아직 네가 원하지 않아서 찾아오지 않은 것이라고.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어.
'나 이거 안 하면 죽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러니 지금 당장 하지 못한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돌고 또 돌고 참 많이 돌아가더라도 끝내 언젠가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거야.
이것은 내 경험이자,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간절함과 조급함을 만나서 만들어 내는 한바탕의 소동 같은 일이기도 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에 바로 하지 못할 수도 있어. 사람은 살다 보면 환경적인 걸림돌이 많이 생기기도 하니까.
그래도 그 마음을 계속 붙잡고 잊지 않고 자꾸 그 길과 가까워지는 노력을 하다 보면 결국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일을 하고 있게 될 거야.
그래서 그 적절한 때라는 것은 과연 언제일까 보니, 결국에는 의지가 준비가 되어있을 때, 나 자신이 하고 싶을 때가 '적절한 때'라는 것을 알게 됐지.
상황, 시대, 사람 그리고 재정 탓을 하며 어떻게든 안 할 핑계를 찾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못 하게 된 그 일들은 누구의 탓도 아닌 그냥 간절함의 농도가 짙지 못했던 때였으며, 내가 진실로 필요로 해서 원하던 때가 아니었을 거야.
아주 어릴 때 나도 친구 누구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단순히 원하는 것과 달리 나에게선 아무런 재능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에 대해 성적도 성과도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은 늘 한편에 있었어.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자격은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해야 한다는 것을 상황적으로 직접 보고 느끼게 되면서 그 마음을 꾸역꾸역 접게 됐지. 모든 게 결국 대학을 가기 위한 길로 연결이 됐어.
성적, 성과와 관련돼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없는 자격이 나누어졌어.
왜 단순하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갖음으로써 몰입하는 시간을 갖고 창의력을 키우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보며 나아가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료해 주기도 하기에 누구나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 나가야 한다는 교육은 어디에도 없었을까? 왜 수, 우, 미, 양, 가의 평가 기준이 하필이면 그림에도 있었던 걸까.
왜 그림 그리기는 잘 차려진 메인 식사용이 되어야만 하고, 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또는 심심풀이로 요기를 하는 간식거리는 될 수 없었던 걸까?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마음은, 주식이 아닌 간식을 먹고자 하는 마음이었어.
나는 마음의 불안을 떨쳐버릴 돌파구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게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가 품었던 마음이 가짜의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됐어.
어차피 입시는 끝났어.
내가 그림을 그려서 대학교를 들어간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먹고살아보겠다는 게 아니었지. 그런 상황이 전부 정리가 되자 나는 다시 또 그림을 떠올렸어.
내가 진짜 하고 싶었지만, 잘하지 못해서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그 행위.
나는 이 모든 경쟁의 상황이 다 끝나고 난 후에야 겨우 그림의 세계로 다시 발을 들일 수 있었어.
말하자면 내가 그림으로 직업을 갖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절대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자마자
그것을 여유롭게 즐길 자격이 주어졌어.
취미생활이라는 타이틀로.
내가 그림을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이유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겠다는 게 아니었어. 물론 실력이 전혀 되지 않지만.
단지 단순한 몰입의 시간을 갖고, 세상에 주어진 아름다운 색들을 써보면서 안정을 얻고, 온전한 나를 되찾기 위함이었어.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재미보다는 치유의 목적이었지. 치유가 되다 보니 서서히 여유를 되찾게 되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고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수단이야.
앞으로 걸어 나가는 데에 자꾸 방해가 되는 아물지 못한 상처들을 하나씩 꺼내서 잘 말려주고 다시 소독을 하고 약을 덧발라주는 역할을 그림이 해주고 있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게 아니라,
더 나아질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한 거.
쉽게 말해 더 이상 아픈 곳 없이,
(아픔으로부터) ‘나아질 사람'이 되기 위함인 거지.
맞아. 내가 조금 아팠어.
그리고 그림과 쓰기가 나를
많이 '나아진 사람'으로 만들어줬어.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내려고 너무나 애쓴 적이 있었던 네가 떠올랐어.
너는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닌, 주변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내렸던 결정들마저 결국 사회적인 언어로 '실패'라는 것을 하고, 방황 끝에 겨우 네가 원하는 길 까지는 도착 했지만 적당한 때를 찾지 못해서 아직 날개를 펼쳐내지 못한 너의 때는 단지 지금이 아닐 뿐인 거야.
돌고 돌아 결국 온 만큼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또는 부담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라서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라는 생각도 해.
너도 나처럼,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된 만큼,
이제는 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전보다 덜 아프고
지금 보다 더 많이 나아진 사람으로서 네가 서서히 때를 찾아 나왔으면 해.
때라는 것은 네가 원할 때가 바로 때인 거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기다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우리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