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애정표현

인내심 그리고 괴롭힘

by 창작몽상가


쥬도는 인내심이 많다.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를 이용한다.


내가 쥬도에게 의젓한 어른, 보호자, 때론 엄마가 돼주기도 하지만 ,

왜 어릴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주변에 맴돌고 일부러 괴롭혀 보고 또 괴롭힘을 당해 본 것처럼

어떤 때는 그에게 나는 철부지 어린아이가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왜 너무 좋다는 마음에서 끝나지 않고, 항상 뭔가를 더 원하게 되는 걸까.

너무 좋아하면 마음이 절제되지 않고, 흘러넘치는 이 무언가를 어떻게든 주워 담아서 돌려주고 이 마음을 어떻게든 알려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게 짓궂은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지만,

그것 또한 (너무 심하게 선을 넘지 않는다면)

관심을 표현을 하는 어떤 방법 중 하나 일 뿐인 것 같다.

물론 조절을 못하고 선을 넘어서 어른들의 제어를 거쳐야 했던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시작은 절대로 악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양 조절에 실패하고 혼이 나고 벌을 받는 슬픈 이야기로 마무리되곤 했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사람은 조금 자극시키고 괴롭혀서라도 그 사람과 어떠한 감정이 또는 말 한마디라도 오가는 것을 선호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도 해 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혼자서 마음 앓이만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그 속상함이 더 컸다.

그래서 이를 기어이 드러내야만 했다.



쥬도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좋아한다고 간식을 주고 쓰다듬고 안아주기를 넘어서서 이 마음을 더 표현하고 싶다 보니

자꾸 살살 건드리고 괴롭히고 싶어졌다.



게다가 착하고 순한 고양이 쥬도는 내가 하는 행동을 늘 인내하며 너그러이 봐준다.


얼굴 부여잡고 뒤로 당기기, 귀를 넙적하게 눌러서 스타워즈의 요다 얼굴로도 만들어보고, 토끼처럼 귀를 세워보기도 한다. 사막여우를 만든다고 얼굴을 조몰락거려도, 쥬도는 고개를 움직이지도, 빼지도 않고 침묵하며 나를 기다려준다.


온갖 방법으로 들어 안고 뽀뽀세례를 하고,

잠을 자는데 깨워도 발톱 한번을 세운 적이 없다.


물론 잠자는 고양이는 절대로 깨우면 안 된다고 들었다. 그 시간에 고양이는 단순히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몸의신진대사를 조절하고, 신체 기능을 회복하는 중이라나. 당연히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렇게 연약한 동물들에게는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이겠지 싶다.


고양이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잠을 자는 데 그 모습은 마치 그 누구보다도 힘든 하루를 보낸 것처럼 지쳐있다. 솔직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피곤에 치인 마치 노동시간 초과에 야간근무까지 한 사람의 모습으로 저렇게 뻗어 잘 수가 있을까 하며 참으로 가짢고 너무 귀여워서 깨우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철딱서니 없는 나는 결국 참지 못한다.


그래서 애칭을 부르고 다가가 여기저기 만져서 결국에는 잠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그런 상태로 자면서도 귀는 얼마나 예민한지, 내가 이름만 불러도 갑자기 그렇게 깊이 자던 애가 몸은 꿈쩍 안 하지만 듣고 있다는 표시로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지상에 나온 물고기처럼 꼬리 끝을 털썩 털썩 힘없이 움직인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게도

건들기만 하면 반응이 바로바로 오는 고양이를 어떻게 안 만지고 배길 수 있나?


나는 결국 가볍게 쓰다듬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과하게 여기저기 긁어주다가 쥬도를 두 발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다.


이것은 참지 못한 내 탓이 아니라

귀여운 고양이의 탓 아닌가.


나는 그의 넙죽한 코에 내 코를 콩콩 찍고 얼굴을 비비고 손으로 얼굴을 찌그러트린다.

고양이들이 싫어한다는 '발 위에 손 올리기'도 자주 하는데 쥬도는 그마저도 약간의 반응만 귀찮다는 듯 살짝 하는 정도이고 그도 결국엔 나에게 져 준다.


발바닥을 조몰락조몰락거리는 것도 허용해 준다.

꼬리를 계속 만지고 쥐어도 이제는 마치 장난을 치자는 것을 인지하는 듯 내 손에 잡힌 꼬리를 팍 내팽겨 쳤다가 다시 잡으면 또 잡혀주고, 몇 초 있다가 다시 내팽개치고를 반복하며 내가 또 잡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꼬리를 살랑살랑한다.


이제는 이런 나의 괴롭힘(?)이 하나의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게 극도록 싫었으면 벌써 가버리거나 나를 물려고 이빨을 내보이고 솜방망이를 날렸을 텐데

단 한 번도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싫을 수도 있지만 꾹 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에 못지않게

어쩌면 그도 나를 너무나 좋아하기에

참 많은 인내를 해주는 듯하다.


아무리 순하다고 해도 나름 경계 대상에게는 하악질도 하고, 전 주인 소니야는 한번 심하게 물려서 피가 철철 난 경험도 있어서 나에게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는 고양이’ 이니까 혹시 모를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조언도 했다.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면 온몸에 털을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세를 낮춰 초집중을 하며, 집에 들어오는 왕파리도 실패율 없이 끝까지 쫓아가 때려잡는, 그리고 그 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본인이 사냥 한 그 생명체의 단백질 섭취까지 야무지게마쳐야 직성이 풀리는,

아무래도 고양이가 맞긴 하다.


싫어하는 것도 확실하게 표현하고

원하지 않는 것도 곧잘 드러낸다.


고양이가 분명하다.





아침 상봉 이후에 바빠서 신경을 못써주면 쥬도는 내 주변 근처에서 맴돌다가 지쳐서 저만치 떨어져서 등을 훽 돌리고 앉아있다.

내가 아는 척을 하고 손을 뻗으면서 오라고 하기 전까지는 시위하듯이 꿈쩍도 안 한다.

동그란 몸을 하고 꼬리는 또 축 늘어트리고 삐진 사람처럼 등 돌리고 있으면 바쁜 와중에도 너무 예쁜 나머지 그 누가 괴롭히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까.

나의 합리화인가.


하지만 정말로 너무 귀여워서 저 동그라미 뒷모습을 어떻게 해버리거나 흐트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바로 이게 나의 애정 표현 방식이다.


내가 이렇게 찔끔찔끔 성질을 돋우면서 괴롭혀도,

전부 참고받아주는 쥬도를 보면

그의 애정표현 방식은 바로

나와는 반대로,

귀찮아도 끝까지 인내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어 '괴롭힌다'는 의미는,

고통스럽게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애정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고, 넘쳐흐르는 좋아하는 마음을 기꺼이 주워 담아낸 후,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표시로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애정으로 쏟아 낸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주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롭히러 간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성가시게 소심한 자극을 해서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다.




쥬도는 인내라는 애정으로 나의 괴롭힘을 기꺼이 받아준다. 지금도 내가 글을 쓰는데 바로 옆에서 소중하고도 하찮은 모습으로 곯아떨어져 있다.

만지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나 누르고,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오늘은 쥬도 처럼 인내하는 방식으로 애정 표현을 해볼까 싶지만 참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약한 나는

결국 또 콧등과 턱밑을 만져버렸다.


내가 하는 어떤 유치한 행동도 모두 견뎌주고 참아주는 인내하는 고양이 쥬도를 보면서,


양으로 굳이 따져보자면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훨씬 더 많이 좋아하는 것 일수도 있다는

행복한 착각을 해버렸다.


그 착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고

나의 애정 어린 괴롭힘도 계속될 예정이다.




괴롭힘은 못 참아.

좋아하니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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