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교감

by 창작몽상가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과 비슷하게 코를 고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신기하다.





어릴 적 , 나의 세대의 많은 어린이들이 그랬듯이, 학교 앞 노랗고 작은 병아리에 매료되어 부모님을 졸라 데려 와서 상자를 만들어 줬고, 햄스터 붐이 불어서 플라스틱 집까지 사서 데려 왔었는데 역시나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늘 허무하게 이별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병아리가 죽었으니 일단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데려온 지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도 내가 그런 것을 보기 힘들어했는지 아빠는 미리고지를 해주고 한참 후에 방에서 나와, 어떻게 됐냐고 물으면 오빠랑 같이 아파트 화단에 묻고 왔다고 했다.


그럼 나는 아빠에게 정말로 그 아이가 눈을 감고 쓰러져 있었는지, 죽은 게 확실한지, 정말로 깨워도 움직이지 않았던 게 맞는 건지를 되물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어디쯤에 묻었는지 물어 보고서 괜히 집 창문으로 화단 아래의 그곳을 바라봤던 게 병아리와의 마지막 기억의 전부다.


그나마 병아리는 잠깐은 거실 바닥에 꺼냈던 것 같은데삐약삐약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래서 약간의 애착이 생기기 시작하려니 그는 하늘로 떠났다.

반면 햄스터는 정말 케이지 안에서 꺼내 본 적도 없어서, 톱밥 속에 갇혀 지내는 햄스터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찾아다녀서 그나마 고개를 보여주면 잠시 바라보는 것이 전부여서 그랬던지 내겐 흥미가 조금 덜 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햄스터가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떠났을 때는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이미 병아리들을 떠나보낸 경력이 있기 때문에 침착하게 ‘벌써?‘라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의 끝이다.


빨간 금붕어와 검은색 툭눈붕어들은 꽤나 오랫동안 여러 번 키웠었는데 그들은 물속에만 있는 탓에 어느 순간에는 단순한 장식용으로 여겼던 것 같다.

다만 심심할 때마다 수족관 앞에 가서 툭툭 치면 내 쪽으로 몰리고 또 끝 편으로 가서 툭툭 치면 그쪽으로 헤엄쳐 따라오기에 밥을 주면서 ‘물고기 몰이 놀이'를 조금 하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금붕어가 배를 위로 둥둥 띄우고 뒤집어져서숨을 쉬지 않는 때가 올 때마다 평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서 내 삶의 반쪽이 사라진냥 슬퍼했지고 아빠가 그들을 물에서 건져낼 때는 조금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오빠에게 상황보고를 음성으로만 들었다.


“지금 아빠가 금붕어 떴어! “ , ”이제 상자에 넣었어! “, ”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지금! “


중대한 미션을 진행하는 듯하게 흥분한 오빠가 아빠와 함께 금붕어를 화단에 묻으러 가고 나서야 조용해지면 수족관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남은 것들의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어차피 다 똑같이 생긴 데다가 집에 한 10마리가 넘게 있다 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똑같이 생긴 남은 다른 아이를 보며, 그래도 얘가 남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병아리와는 다르게 금붕어는 자고 일어나서 직접 죽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곧바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도망친 후에 아빠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그런 것들을 꽤나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서오빠는 괜히 물고기를 묻으려고 하니까 갑자기 펄떡펄떡 살아나서 다시 데려왔다는 둥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나의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이제 막 우리의 곁을 떠나버린 불쌍한 금붕어는 어느새 잊고 오빠와의 티격태격 전쟁이 시작된다.

직접 키워봤다고 할 수 있는 동물은 그게 다였다.

할머니집에서 강아지를 마당에서 키웠지만 엄마한테 혼날까 봐 만지지도 못하다 보니 아무런 정도 없었고 물릴까 봐 무서워서 근처만 맴돌았다.


나는 자라온 환경 상 동물과의 직접적인 교감은 사실상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는 인간이 아닌 숨을 쉬는 다른 것이,

내 말도 곧잘 알아듣고 심리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어떤 동물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거의 비현실에 가까울 정도로 꿈같다.


불과 일 년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단순히 '어릴 적 물고기, 병아리, 햄스터만 키워본 사람' 일 뿐이었으니.





외출을 하고 집에 들어올 때는 입구부터 미소가 머금어진다.


문을 겨우 한뼘열었는데 이미 머리가 나와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날은 복도에 잠시 나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많은 날로서, 내가 볼 때는 본인도 아주 작정을 하고 나온다.

반드시 나가리라고. 반드시 나가서 이 구역의 냄새를 제대로 맡고 주변을 살피리라고.


그래서 그런 날에는 그냥 '귀여워서 봐준다'는 의미로 잠시 복도로 나가게 두면 이웃집의 발판에 가서 냄새를 맡고 그 위에서 기지개를 펴보기도 하고 발톱으로 긁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살피다가 바로 들어오거나, 제대로 더 큰 작정을 하는 날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큰일 나는 줄 알고 나오자마자 얼른 데리고 들어왔는데 고양이들은 호기심이 많기로 소문난 만큼

'그래 너도 얼마나 궁금하겠니' 싶어서 '그래 한번 갈 때까지 가 봐라' 하고 어디까지 가는지 봤더니 기껏 많이 내려가봐야 2층 정도였다.


쥬도가 원래 겁도, 나이도 많고 경계심까지 많아서 끝까지 내려갈 용기도 사실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내버려 두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혹시 이웃들을 마주치면 실례가 될까 불쑥 들어 올린다.

내 손바닥에서 이제 막 갓 들어 올려진 쥬도의 심장이 느껴지는데 얼마나 신이 나고 설렜었는지 심장 박동이 쿵쿵쿵 굉장히 빨라져 있다.

나는 그 귀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래 너도 그럴 때가 있어야지. 그래도 웬만하면 안전한 우리의 집에서 같이 살자!'라고 중얼거리며 쥬도를 집안에 데려와 현관 복도에 내려놓으면,

또 언제 나가고 싶어 했냐는 듯이 '난 아무래도 여기가 좋아'라고 말하는 듯 새침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간다.


귀갓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혼자 상상하며 미리 웃기 시작한다.

과연 얘가 후다닥 바로 나오려나, 자다가 깨서 비몽사몽 허겁지겁 뛰어 오려나, 너무 깊은 잠에 빠져서 조금 늦게 엉거주춤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나오려나.


쥬도가 늦게 나온다는 것은, 내가 들어와서 신발을 벗으려고 하는데 그때도 나오지 않는 다면 그를 정말 '늦는다'라고 말한다.

그 정도로 빠르게 원래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만 나도 순식간에 달려 나오는데, 어쩔 때 자다가 막 깨서 허겁지겁 오는데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다.

평소의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달려서 급하게 나오는데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으면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걸까.


이제는 마중이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들어와서 신발을 벗으려고 하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면 이건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라 걱정이 덜컥 밀려온다.

그리고 신발을 재빠르게 다 벗으면 그때서야 눈은 반쯤 감겨서 느릿한 걸음으로 빼꼼 나타나면 어찌나 서운한지. 그러나 서운함도 잠시 곧바로 나는 쥬도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라는 점을 자각함과 동시에 내가 바로 모든 집사의 소원인 '전설의 고양이'를 데리고 있음에 다시금 감사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니 고양이 집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강아지 같은 마중 고양이, 무릎에서 자는 고양이, 잘 안기고 애정표현을 맘껏 할 수 있는 고양이, 애교가 많은 고양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그를 '전설의' 고양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모든 항목에 포함되는 쥬도를 보면서 정말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널 만났을까 하며, 정말인지 발견하기 힘들다는 흔하지 않은 전설의 원석이라도 캐낸 것처럼 신이 났었다.


다른 고양이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왜냐면 내가 봤던 친구네 고양이들은 내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쥬도는 집에 손님이 와도 무조건 먼저 선수를 친다.

그래서 집주인인 나보다 더 먼저 튀어나가 사람을 맞아주고 냄새를 한번 쓱 훑고 나야 직성이 풀리기에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최고다.


문제는 낯선 자가 벨을 울려도 귀를 바짝 세우고 굳이 문 앞으로 나가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받을 택배가 없는 이상 대꾸를 안 하고 집에 없는 척을 하려고 계획하는데 쇼파에서 점프해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이 못 말리는 전설 고양이의 작은 솜방망이 소리가 혹시나 문밖에서 들릴까 봐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괜히 조마조마한다.

이렇게 우리집 고양이는 몸은 매우 작지만 아주 커다란존재감을 풍기면서 이 집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한가지 알게됐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를 반기러 마중 나오는 동물이 아닌 병아리, 햄스터 그리고 어류인 물고기에게 내가 애정을 많이 주지 못했다.


왜냐면

내가 어릴 때부터 그토록 원했던 건

다른 것도 아닌,

그 어떤 것도 아닌,

이런 살가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살가움 속에서 누군가와 진실된 교감을 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그런 아이였겠지.




평소 아주 조용한 집에서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혹시 잘못 들은 건지, 바깥에서 나는 도시 소음인지, 이웃의 소리인지 숨을 참고 들어보면 쥬도가 코를 곤다.

코를 고는 소리도 잠을 자는 자세만큼이나 워낙 다양하다 보니 알면서도 매번 외부소음의 의심을 먼저 하느라잠시 귀를 기울여본다.


나는 동물이 코를 곤다는 것도 몰랐다. 물론 당연한 생리 현상인데도, 한 번도 코골이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잠을 자는 동물을 내 가까이에 둬본 적은 아예 없기에.


그래서 정말 인간이 아닌 것이 내 옆에서 코를 쌕쌕 골아대면 신기함을 넘어서서 이제는 왠지 감격스럽다.

인형 같은 외모를 하고 드러누워서 어울리지 않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는 쥬도를 바라본다.



'너 정말 살아 있구나! 숨도 쉬고, 잠자면서 코도 골아대는, 진짜로 현실에, 내 옆에 살아있는 생명이구나!'




나는 쥬도의 콧구멍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강낭콩같이 작은 갈색 코에 두 개의 콧구멍이 야무지게 퐁퐁 뚫려 있다. 애정표현을 할 때 쥬도 얼굴을 부여잡고 내 코끝을 그의 흥건히 젖은 코에 콩콩 찍어본다.

그리고 가까이에서는 그 두 개의 바늘구멍 같은 두 개의 콧구멍에서 바람이 픽픽 나올 때마다, 정말 정확한 두 갈래의 바람이 균등하게 느껴지는데, 그 느낌이 설명할 수도 없이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어쩔 땐 콧구멍이 우리처럼 두 개 있다는 것도 정말로 신기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와 강아지 같이 지능이 비교적 높은 생명체와 직접적으로 교감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고양이들은 소리가 다양한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 고는 소리, 야옹 하는 소리, 골골 송 모든 것이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음으로 다르게 나는 것을 보니.




얼마 전엔 쥬도의 몸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살폈다. 정말 보고 또 봐도 아무래도 신기해서.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 만지면서 지금 이 시간이 정말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혹시 아이가 생긴다면 이런 기쁨일까, 갓난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이런 기분일까. 아기와 고양이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보호자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비슷한 류의 기분이 드는 건 공통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담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아기든 고양이든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입 하나, 귀 두 개인 것이 당연하면서도(보통의 경우엔, 감사히도) 그것들 하나하나가 자꾸 새롭게 보이면서 소중하고 신비해 보이는 이유라면, 그만큼의 애착, 애정이 있기 때문이겠지.


집에 있을 때 잠시라도 안 보이면 어디로 갔는지 부르고 벌떡 일어나서 찾으러 다니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런데 쥬도도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근처에 계속 있다가 잠시라도 어디로 가면, 설마 지금 저렇게 깊게 자는데 안 오겠지 하고 슬금슬금 빠져나갔다가 발밑을 보면 순간이동을 하는 건가 싶을 만큼 어느새 따라와 있는 걸 보면,

어쩔 때는 사실 얘가 나를 처량한, 보호해줘야 하는 새끼 고양이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쥬도를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보니 아이처럼 여기고 또 그렇게 대하고 있지만,


반대로 혹시 쥬도 생각 속에서는 본인이 엄마인 입장에서 자식인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얘가 어디서 다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보호자 입장'으로서 이렇게 밀착해서 따라오는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보았는데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모든 행동과 상황이 웃기게도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내가 정말 아낌을 받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더욱더 고마워졌다.


나를 멀찍이서 지긋하게 쳐다보면서 조금 못마땅한 가재 눈으로 인상을 쓰고 눈을 껌벅껌벅 일 때는,

강한 척 하지만 한편에서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이 나를 항상 보는 엄마가 자주 하던 표정이 생각이 났었는데.


'으이그.. 저거 저렇게 어설퍼서 걱정인데 증말.. 쯧.. '

별로 그렇지 않은 뾰로통 내뱉는 말에 담긴, 속내는 애정이 담긴 우리네 엄마들의 표현처럼.


쥬도와 나, 둘 중에 누가 어떤 역할이고, 어떤 입장에서 서로를 보든지 간에

결론적으로 아마 우리는 서로 같은 마음 일 것 같다.

애정하고 애착하는.


그래서 나는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공존이 진심으로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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