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시작하고 처음 만나는 숙소에는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이 가득하다. 미처 내려놓지 못한 욕심들이다. 하루에 20~30km를 배낭을 메고 걷기에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10kg 내외로 패킹을 하는 편이다) 내 배낭은 15kg이었다. 무게를 줄이겠다고 침낭 대신 라이너를 챙기고, 옷도 두 벌밖에 챙기지 않았지만 짐벌, 삼각대, 각종 전자기기들이 가득했다. 가방을 몸에 최대한 붙여서 걷는다 하더라도 몇 시간쯤 지나면 어깨가 무거워지고 속도가 느려진다. 친구들은 매번 내게 배낭 무게를 줄이라고 조언했다. 쓸모없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까미노 프랑스길을 걷게 된다면, 처음 묵는 숙소는 아마도 론세스바예스일 것이다. 출발지인 생장피에드포트에서부터 가파른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몸을 쉬일 수 있는 숙소가 등장한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숙소 앞마당에서 내리쬐는 햇볕에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그들이 걸어 들어왔다. 화려한 나무 스틱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며칠 뒤 우연히 어느 공터에서 마주친 그들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차 한 잔 마실래?"라고 묻는다. 아니, 차라니! 길 위에서 차를 끓여마시기 위해서는 가스버너와 주전자 그리고 찻잎과 컵을 챙겨 다녀야 한다. 나는 그 뒤로도 차 마시는 그들을 몇 번이나 마주쳤고 몇 번이나 차를 얻어마셨다.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은 마치 내게 이렇게 되묻는 것 같았다.
남들은 모두 쓸모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