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21-27
팀 플레이 (고전 12:21-27)
결혼 전에는 몰랐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혼자 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 손을 다치면, 다른 한 손을 쓰면 되는데, 두 손을 다치면 내 대신 손을 써 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아이를 양육할 때도 팀 플레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저희는 아이가 넷이기 때문에, 조금만 손발이 안 맞아도 많은 일들이 어긋나곤 합니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셋째를 태우지 않은 적도 있고, 카시트에 잠든 막내를 두고 쇼핑센터에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모두 금방 알아채서 별 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서로 아이를 데리고 있다고 착각해서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문제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가지는 부모는 어긋난 팀 플레이의 화살을 서로에게 쏘아붙입니다. ‘당신이 똑바로 챙겼어야지’,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당신도 노력을 좀 해야지!’하는 식의 대화가 이어지곤 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종종 선수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곤 합니다. 상대방의 비신사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그러나 같은 팀에 소속된 선수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팀의 선수가 잘못한 것을 안다 할지라도, 해당 팀의 선수들은 그 선수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같은 팀은 경기에서 항상 우승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팀은 비난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팀 플레이에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수들 몸값이 비싸고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경기에서 지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많은 능력과 행실과 노력을 다해 섬긴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허공에 울리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며 살도록 짓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고,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을 주셨고, 제자들에게는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범위에서는 부부가 한 팀이고, 더 큰 범위에서는 교회 성도들이 한 팀이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팀입니다. (본문 26절 읽기)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 지체의 영광이 우리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성만찬을 통해 구분이 되었고, 계파가 나누어져 서로 간에 분쟁이 많았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명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고, 많은 은사가 있을 뿐 아니라, 부흥이 있는 교회임은 틀림없으나, 궁극적인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 팀은 되지 못했습니다. 본질은 잊고 껍데기를 치장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초대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백성을 지혜롭게 통치하는 사랑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사울은 서서히 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일을 처리할 뿐 아니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다윗을 향해 비정상적인 질투심을 품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삼상 15:35)’ 하나님은 열매 없는 풍성한 무화과나무 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겨자씨만 한 믿음을 보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것을 가졌으나, 그 중심을 잃어버린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이렇게 씁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모든 것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름답고 단정된 무덤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율법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바리새인들은 정작 그 율법이 사랑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다양한 악기를 모아 놓아도 악보와 지휘자가 없으면 소음만 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악보, 한 명의 지휘자가 있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악기가 모인다 할지라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쁘게 피아노를 연주하든, 곡이 끝날 때까지 몇 번 징을 울리든 그들의 상급은 모두 같다고 합니다. 이처럼 각자의 역할이 어떻든지, 은사가 무엇이든지 하나의 목표와 한 명의 감독 아래서 일한다면 너의 상급은 나의 상급이 되고, 나의 상급은 너의 상급이 됩니다.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한 지체들을 도우며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하여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이 것만 없으면 좀 더 잘 될 텐데, 저 사람만 나가면 우리 교회가 더 반듯해질 텐데 하는 ‘~할 텐데’하는 마음이 얼마나 교만한 마음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그러한 고백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두 번째로 팀플레이에서 중요한 것은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래 다리에 털이 별로 없었는데, 학창 시절에 장난으로 옆에서 누나가 다리털을 일자로 밀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다리의 온 털을 밀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다리에 털이 너무 두껍고 많아져서 지속적으로 면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도를 할 때마다 다리에 난 털은 정말 보기 싫고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고 더 이상 다리 모습에 관심이 없어지게 되었을 때, 어느 날 피를 빨아먹으려고 다리에 붙었다가 털에 엉켜 물지도 못하고 죽어있는 모기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좀 웃긴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필요 없다고 털을 밀어버린 죄를 용서해 주소서. 자신의 약점을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울해지지 마십시오. SNS가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오로지 연봉이라는 수치를 대입하여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것은 이제 보편적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직업의 정체성보다, 직업의 평판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업을 묻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거기서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를 물으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그가 양치기를 할 때, 사자와 곰을 상대해 봤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을 잃지 않기 위해 양치기로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골리앗 앞에 세운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형제들과 달리 자신만 집 밖에서 위험한 일을 한다고 이를 약점으로 여겨 불평하고 양의 생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다윗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어봐야 목숨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인생을 걸어봐야 인생의 길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원수가 있어 봐야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수이지 감독이 아닙니다. 경기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같은 동료가 실수를 저질러도 우승을 보증한 감독을 의지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믿음보다 그들의 판단이 더 앞섰기 때문에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매번 불평했습니다. 불평하지 않았던 모세는 무슨 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을까요? 모세 역시 므리바에서 불평하는 물을 낼 때, 그들을 향해 입술로 원망을 섞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 시계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 106:32-33)’ 아무리 말씀을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려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불평과 원망을 담아내면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