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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Sep 29. 2022

가짜와 진짜

또 쉬어가는 코너

제목: 가짜와 진짜


등장인물 : 가짜 - 지금의 나, 진짜 - 과거의 나


무대 중앙에 가짜와 진짜가 마주 보고 서 있다. 그들의 중간에는 거울 같은 유리막이 세워져 있다.


밝아 보이는 진짜의 얼굴과 다르게 가짜는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진짜: (가짜를 바라보며, 가만한 미소를 보내며) 어때, 행복하니?


가짜: (시무룩하게) 전혀...


진짜: 왜? 다 너의 선택이었잖아.


가짜: (머리를 흔들며, 괴로운 듯) 아니야.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어.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진짜: 결국 마지막 결정은 네가 내린 거야.


가짜: (머리를 감싸며)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


진짜: 네가 원한 건 뭐였는데?


가짜: (관객 쪽으로 손을 뻗으며 무언가를 잡으려 하듯) 나는...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어.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자유로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


진짜: 그런데 왜 미대를 가지 않았어?


가짜: (원망의 눈초리로) 엄마가... 아빠가...


진짜: 부모님이 뭐라고 말했는데?


가짜: 화가는 밥 빌어 먹는 직업이라고...


진짜: 그 말 한마디에 꿈을 포기했다고?


가짜: (괴로운 듯)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어. 등록금을 내주는 건 부모님이었고, 난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했어. 그게 내가 잘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진짜: 그렇게 살아 보니 어때?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보니까 어떠냐고.


가짜: (덜덜 떨며) 불안하고 무서워...


진짜: 뭐가?


가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보호자를 만나는 거... 우리 반 아이가 자살 시도를 했을 땐 정말이지 끔찍했어.(몸을 떤다) 항상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엄격한 도덕 잣대에 나 자신을 욱여넣어야 하는 것까지... 다 불안하고 무서워.


진짜: 그래서 일을 그만둔 거야?


가짜: (말없이 끄덕끄덕)... 그런데... (말을 잠깐 멈추고) 그런데 너는 누구야?


진짜: (환하게 웃으며) 나는 너야.


진짜가 가짜에게 스케치북 한 권을 건넨다. 가짜는 스케치북을 펼쳐 한 장 한 장 그림을 살핀다.


가짜: (놀라운 듯) 이... 이것은...?


진짜: (인자한 미소로) 이것도 바로 너야. 네가 과거의 나일 때 그린 그림들.


가짜: (눈물을 흘리며) 내가... 내가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지? 내가 무얼 해야 할까...?


진짜: (가짜의 손을 꼭 잡으며) 나로 돌아오는 거.


가짜: (눈물을 멈추고) 나로... 돌아간다...?


마지막 미소를 건네고 돌아서 무대를 벗어나는 진짜.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가짜는 주머니에서 색연필을 꺼내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린다.


밝고, 즐겁고, 행복하고, 아이 같은 모습으로...


가짜를 비추던 핀 조명이 환히 밝아지며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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