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ㅡ자고 일어났더니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로 시작하기
나의 방. 자고 일어나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나: (담담한 듯) 올 것이 왔구나...
나는 과거의 한 장면을 회상한다. 안과 병동에 나와 의사가 독대 중이다.
의사: (차트를 뒤적이며) 언제부터 눈앞이 커튼 치듯 시야가 가려졌죠?
나: (우물쭈물하며) 좀 됐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의사: (안타까운 듯) 왜 빨리 병원 안 오셨어요...
나: (고개를 숙이며) 일하느라 바빠서...
의사: (심각한 투로) 망막박리증입니다. 견인성 망막박리라고... (눈 모형으로 설명하며) 망막과 유리체 사이 증식 섬유혈관 조직이 생겨서 신경망막을 유리체강 쪽으로 끌어당겨서 떨어지는 거예요. (모니터를 나 쪽으로 돌리며) 여기 사진을 한 번 보시면, 아래쪽에 흰색 주름 같은 게 보이죠? 이게 망막이 박리된 거예요. 문제는 두 눈 다 망막박리가 일어났다는 건데... (단호하게)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수술하셔야 돼요.
나: (떨리는 목소리로) 수술은 언제쯤...
의사: (한숨을 내쉬며) 어... 언제라고 할 게 없어요. 바로 입원하셔야 돼요. 시간 싸움입니다.
나: (떨리는 목소리로) 수술을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의사: (건조한 투로) 수술 안 하면 실명이에요.
나의 회상이 끝나고, 다시 나의 방. 침대 위에 멍하게 앉아 있는 나가 보인다.
나: 내 나이 스물다섯. 짧은 인생 참 모질었다. (눈물) 열 밤만 자면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는데... 지금 내 옆엔 아무도 없네. (눈물을 닦는다, 코를 훌쩍인다) 아홉 살 때부터 십 년을 보육원에서 살며 겨우겨우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정착지원금 팔백만 원 받고서 쫓겨나다시피 나왔는데... (쓴웃음) 부모가 남긴 빚을 갚고 나니, 남은 돈으로는 반지하 월세방 보증금 밖에 안 됐었지... 단칸방이지만 그래도 집 같은 집에 한 번 살아보자고 알바를 몇 개씩 뛰어서 방세를 마련했는지... 그때가 까마득하네 벌써... (두 눈을 마구 비비며) 이래도 아무것도 안 보이네... 눈이 안 보이니 미래를 꿈꿀 수도 없구나... 자꾸 과거만 생각이 나네. (쓴웃음) 눈이 보일 땐 미래를 꿈꿀 수 있었나, 뭐... (쓴웃음, 눈물) 고졸로 알바만 하며 살다가, 나도 남들처럼 번듯한 직업 하나 갖고 싶어서 물리치료과 야간대학까지 다니고 있었는데... 이제 한 학기만 더 하면 졸업이었는데... (눈물을 닦으며) 내 팔자가 왜 이러냐... 그저 한번 잘 살아보고 싶었을 뿐인데, 참... (빛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의사 말대로 수술을 할 걸 그랬나...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병원비며 간병인 고용비를 어떻게 충당했겠어 내가... 일을 쉬면 당장 먹고 살 수도 없었는데... 수술 성공률도 희박했었고... (눈물을 닦으며) 이제 와서 무슨 미련이야. (허공을 더듬으며)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가 허공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찾는다. 드디어 나의 손에 걸린 무언가.
나: (기쁜 듯) 아! 찾았다. 자유...
나는 그렇게 아무런 유서도 마지막 말도 남기지 않고 밧줄에 목을 맨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