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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Oct 13. 2022

아디오스

희곡 연습

과제: 한 사람의 삶이란 주제로 가상 이야기 만들기. 탄생부터 죽음까지 포함되어야 함.


<제목: 아디오스>


등장인물: 나 – 인간에서 바람으로 환생한 존재(독백)


나: 안녕하세요. 나는 바람입니다. 무형의 존재가 되고 싶다고 빌었더니 이렇게 바람으로 태어났지 뭡니까. 이전에는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이요? 글쎄요... 저는 그냥 그저 그랬습니다. 일단, 인간은 시끄러워요. 언어라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 수단이 너무나도 잘 발달된 까닭이지요. 그리고 인간은 욕심을 냅니다. 열 개를 갖고 있어도 하나 더 가지려고 싸움을 하거든요. 또, 인간은 이기적이에요. 어찌나 저만 생각하는지... 쯧쯧. 한 예로, 제가 인간일 적, 미국이란 커다란 나라에서 살았는데 글쎄, 멕시코 국경에다 장벽을 세운다지 뭡니까... 불법 이민을 막겠다고요. 그리고 또 어디더라... 아, 한국이란 나라에서도 살았었네요. 거기서도 참 못 볼 꼴 많이 봤지요. 장소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였습니다. 노동 교육이 필수다라고 주장하는 교사들 옆에서, 아마, 보수단체였을 거예요, 노동교육을 주장하는 자는 좌파다! 라며 보이콧을 하더군요. 빨갱이란 단어를 어찌나 많이 쏟아내던지... 또 성인지,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교사에게는, 모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거라고 난리 법석을 떨더라고요. 아... 치가 떨렸습니다. (양팔을 벌리며) 보세요. 아직도 몸이 떨고 있지 않습니까, 어휴... 인간사에서 정말이지 별꼴을 다 보다 보니 저는 더 이상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매일 빌었습니다. 조물주가 계신다면 다음 생에는 육신도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 무형, 무아의 무언가로 환생시켜 달라고요. 그랬더니 짠! 바람이 되었네요. 저는 바람이 된 것에 아주 만족합니다. 입을 옷도, 머물 집도, 먹을 음식도 그 어 떤 것도 필요 없거든요. 그저 누군가에게 홀연히 느껴지는 무언가일 뿐입니다. 제가 불면 누군가는 ‘바람이 부는구나...’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려나 봅니다. 햇볕도 전에 없이 쨍쨍하고, 쌩쌩 불던 공기의 흐름도 더 이상 원활하지 않네요. 이제 제가 사라질 시간인가 봅니다. 그럼 저는 죽는 거냐고요? 아니요. 바람은 죽지 않습니다. 그저 멈출 뿐이지요. 곧이어 꽃샘추위가 찾아올 겁니다. 그때 다시 만납시다. 제가 다시 불어오면 가만히 느껴주십시오. ‘아, 바람이 부는구나.‘하고요.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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