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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Oct 28. 2022

교육과 폭력 사이

요즘에도 이런 학원이?


나는 읍/면/리 중 하나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 이런 시골이 있어? 할 정도로 깡촌인 곳이다. 대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 눈에는 더더욱 시골스러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가 참 좋다. 동네에 몇 없는 아주 젊은 사람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나이 지긋한 동네 유지들의 관심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받는 편이긴 하지만 도시보다 확실히 속은 덜 시끄럽다.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지역과 공간이 광역망으로 연결된 이 시대에도 이곳은 배달의 민족도 요기요도 없다. 배달 자체가 되는 식당도 많이 없다. 뭔가를 사 먹고 싶은 날은 어슬렁어슬렁 나갈 채비를 하여 아날로그 방식으로 주인과의 면담 끝에 직접 주문을 해야 한다. 굉장히 귀찮긴 하지만 집을 나서서 식당까지 나가는 그 길에서 코스모스도 보고, 이름 모를 풀꽃도 보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지렁이 같은 평소에는 대부분 무시하고 살았던 세상의 작은 것들을 만나는 재미로 외식하러 나가는 날이 대부분이다.


나는 주중에는 대부분 초근을 하는 편이다. 딱 수요일 하루만 정시 퇴근을 하는데 오후 5시 이후가 되면 이 시골 of 시골에서 할 일이 없어 굉장히 무료해진다. 단 하루 주어진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좀 더 큰 이웃 동네까지 기웃거리며 할 거리들을 찾아본다. 여기서 차로 1시간 정도 가면 좀 더 큰 행정구역인 시가 나온다. 도장이 하나 있었다. 오~ 구미가 좀 당기는 걸? 처음 방문한 도장의 사범님은 아주 다부져 보이는 아저씨였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원이라 실내도 깨끗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의 사물함에 정리된 도복들이 채 10개가 안되어 보였다. 사범님은 오래간만에 사람을 만난 듯 자기의 교육 철학에 대해 이런 말 저런 말을 쏟아냈다. 어릴 때부터 신체를 단련하여 정신력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둥 예의의 무술이라 자기는 수강생들의 진정한 스승이 되기 위해 가슴이 아파도 엄격한 사범이 되려 한다는 둥 들어보니 자기 하는 일에 뚝심도 고집도 있어 보여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하루 딱 다니고 괜찮은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도복과 등등을 바로 맞췄다.


도구를 풀 세팅 하여 도장에 출근한 지 한 달째, 내가 다니는 저녁 반의 유일한 청소년이었던 B 와도 꽤 친해졌다. B는 제발 도장에서 까지는 선생님이고 싶지 않다는 나를 꾸준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애였다. ‘얘야, 내가 왜 너의 선생님이니. 되려 네가 내 선배님이지 않니. 제발 이모 또는 네 양심이 허락한다면 나를 누나라고 불러 주겠니?’라고 애원해도  예의의 무술을 하는 도인으로서 예의를 지키고 싶다며 나를 깎듯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그였다. 굉장히 신선한 FM 스러운 학생이었다. B는 6시 30분까지는 영어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밥도 못 먹은 채 7시 성인 반에 출석해 몇 달째 배우는 정말 대단한 학생이었다. 웬만한 어른보다 나았다. 하지만 애는 애였다. 성장기라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자도 자도 잠이 오는 중학생. B는 빈속에 쏟아지는 잠을 이길 길이 없어 거의 매일을 학원 소파 위에서 쪽잠을 자고 나서 수업에 참여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7시 조금 안돼서 도장에 들렀다. 사무실 겸 상담실에서는 사범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듯했다. 그 앞에는 B가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됐다. 원래 50분 수업인데 20분 정도 까칠하게 수업을 이끌던 사범님이 우리를 모두 꿇어 앉혔다. 그때 수강생은 5명이었다. 갑자기 수업을 못하시겠다니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바닥에 꿇어앉았다. 사범님은 10분쯤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설교를 쏟아 내더니 별안간 B를 앞으로 불러냈다. 경력 몇십 년의 사범과 입문 겨우 몇 달 차 중학생 B의 대련이 시작됐다. 후자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범의 발에 뻥 차인 B가 도장 한 구석까지 날아간 순간 그것은 이미 예의의 무술이 아니었다.


‘일어나, 이 새끼야. 이 정도로 맞아서 안 죽어. 엄살 피지 마. 숨 쉬어. 숨 쉬고 일어나. 울지 말고 싸워. 끝까지 때려. 안 그럼 네가 처 맞아. 이렇게 처 맞으면 안 아프지? 어? 안 아파서 지금 땅바닥에서 안 일어나는 거지? 아오. 진짜 안 일어나?’


이 것은 그날 나머지 20분 동안의 수업에서 내가 들은 사범의 말이다.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봤던 나머지 4명은 모두 성인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무서워서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났다. 수업 시간 도중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것이 대련인지 폭력인지 가늠도 안 될 정도로 순식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마지못해 일어난 B의 몸도 덜덜 떨렸다. 이미 그의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과호흡 증세로 헐 떡 헐 떡 거리고 나서야 사범은 대련이어야 했던 것을 멈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수건에 찬물을 묻혀 그의 얼굴을 닦아 줄 뿐이었다. 하나도 안 괜찮은 애한테 괜찮니 괜찮니 하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사범은 마저 울고 있는 B를 상담실로 호출했다. 상담을 마친 사범은 후련한 얼굴로 문 밖으로 나오며 내가 오늘 본 게 도대체 뭔지 영문을 몰라 여전히 멍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미 씨는 교사니까 내 맘 알 거야 그렇지? 아 오늘 나 진짜 열받았었어. 소파에 누워서 자는 저 놈 얼굴을 보는데 얼마나 열받던지. 저 정도로 정신과 의지가 약해서 어떻게 하나 싶은 거야. 그래서 오늘날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지. 오늘 저거 교육 좀 확실히 시켜야겠다~. 안 그래도 내가 쟤 부모한테 전화해서 오늘 좀 때린다고 했더니 허락하더라고.”


나는 사범의 마음을 하나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날 그가 보여준 것은 절대 교육이 아니다. 폭력이다. B는 순수하게 배우는 게 좋아 저녁밥도 먹지 않고 도장으로 뛰어 오던 아이였다. 그 자체만 보더라도 충분히 칭찬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다.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아마 사범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은 어떤 교육도 할 수 있는 스승이라는 자만심으로 그날 한 아이의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관심을 무참히 짓밟았을지도 모른다. 정신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말이다. 그리고 더더욱 슬픈 것은 자신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모른 채 뿌듯해하는 그의 얼굴이었다. 체벌로는 절대 아이의 정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하지 못한다. 체벌은 아이에게 나는 가치 없고, 무소용하며 달갑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내재화시키는 끊임없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줄 뿐이다. 아이의 몸을 공격하여 박약한 정신을 개조하고자 했던 사범의 의도는 아마 아이의 마음에 심어진 트라우마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과 유사한 것이 사범 본인이 자랑스레 말했던 엄격한 스승으로서 예의를 가르치는 방법이라면 나는 그 도장에 다닐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날로 남은 수강료를 환불받고 그만뒀기 때문에 그 뒤로 B가 계속해서 그 도장을 다녔는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B의 마음속에 큰 트라우마가 상처로 자리 잡혔을 거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아마 B는 이제 그 무술과 비슷한 단어만 들어도 그때 사범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던 순간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일렬로 앉아 자기가 일방적으로 당하던 그 순간을 지켜만 보고 있던 방임자 4명의 어른을 함께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생눈으로 보고 또 충분히 잘못됐다고 인식까지 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는 B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을 자격도 없는 부끄러운 어른이었다. 이 글을 계기로 그에게 닿기까진 요원할 사과를 건네 본다. 얘야, 그날 너를 돕지 못한 무능한 어른으로서 참 미안했다.


오랜만의 배움을 그렇게 트라우마 틱 하게 그만둔 뒤로 딱히 새로운 취미 거리를 찾지 못하던 나는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술학원을 발견해 다니기 시작했다. 미술학원에는 나름 귀엽기도 또 굉장히 분잡 하기도 한 초등학생들이 바글거린다. 파란색을 보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9살짜리 아이에게 미술 선생님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OO이 어릴 때 바다 가봤어? 누구랑 갔어? 어디 바다였는지 기억나? 바다 가보니까 기분이 어땠어? 바다에서 뭘 봤어? 선생님한테 얘기해줄래? 바다 가서 수영도 해봤어? 수영할 때 기분 어땠어? 바다에 또 가보고 싶어? 그때 그 바다색이 어땠어? 이 파란색 하고 비슷하지 않아?” 미술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아이는 드디어 결심한 듯 파란 색종이 밑에 ‘바다’라는 두 글자와 ‘시원함’이라는 감촉을 적으면서 자기 나름의 파란색을 정의했다. 아이는 아마 자기만의 빨간색도 노란색도 선생님의 도움으로 스스로 잘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도록 도와주는 어른의 방법,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해줄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은 이처럼 부드러워도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펄럭이는 광고 현수막이 보인다. 경력 xx 년의 사범이 아이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해 드린다. 공경과 예의를 교육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 씁쓸한 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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