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를 마친 뒤 엄마와 대구미술관에 가서 유근택 작가의 전시회를 보았다.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인간이 소유한 기억과 시대의 현상과 상징 사이의 접점을 어질어질한 선율로 연주해 낸 듯한 화풍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 중에는 캔버스 폭이 무려 40미터나 되는 것도 있었다. 커서도 지워지지 않은 누군가의 옛이야기를 되살려 벽면을 한가득 붓칠 하기까지, 그는 그때 그 시절과 지금을 잇고 있는 시간들에게 얼마나 많은 대화를 청했을까?
유근택 작 <대화>
저 텅 빈 잿빛의 배경에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든 공중전화박스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그려두고 <대화>란 제목을 붙이다니... 혼자 세상에 왔다 홀로 간다는 인간의 절대 진리적 모토인 고독 속에서도, 언어로 구성된 음성의 위로를 받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의 틈새를 엿보는 것만 같았다.
세상의 어느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려 밖에선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검은 유리를 끼운 것일까?
저 공중전화박스 속에서 그는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처 내비치지 못한 비밀로 점철된 속내를 몰래 털어놓은 것일까?
과연, 어떤 마음과 자세로 우울한 회색의 날에 공중전화박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무거운 수화기를 들어 올린 채 차가운 동전 한 닢을 떨어 뜨리고 대화를 풀어냈을까?
시공간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덜컥 수화기를 들어 올리기 전까지 뚜르르르 하고 울리는 신호음이 얼마나 세게 그의 심장을 내리쳤으며, 그러는 동안 그는 얼마나 오래 그 고통을 인내했을까? 끝끝내 여보세요?라고 내뱉기는, 때론 단순 건조하고 때론 기다림에 상기된, 나 아닌 어떤 이의 한 마디를듣기 위한 일념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