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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Oct 31. 2022

누구나 세상살이가 버거울 때가 있다

에세이 연습 과제 1 - 위로가 필요했던 순간

좋지 않은 기억은 뇌리에 콕 박혀 영원히 나를 뒤쫓는 살인마가 된다.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조각은 살인마의 단도로 변해 내 심장을 쿡쿡 찌른다. 울걱울걱 검은 피를 쏟아내는 심장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을 때 세상살이 참 버겁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들곤 한다.  


내게 좋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기억은 대부분 타인의 말이다. 후, 하고 불면 저만치 날아가버리는 민들레 홀씨만큼 가볍게 살지 못하는 이유도 내 안에 나의 목소리보다 타인의 말이 더 가득해서다. '훌훌 털어버려.'라는 지인의 말에도 그렇지 못했던 것은 나의 비난 수용체가 이미 물먹은 솜뭉치처럼 축 가라앉아 있었던 까닭이다.


'이 선생님 반에서 자살 시도를 두 명이나 했다는 건, 이 선생님의 학급 운영 방식에 문제 있다는 반증 아닙니까?'

'학교장이 <학교폭력 없는 학교, 자살 없는 학교>를 모토로 전국 강연을 다니는 사람인데, 우리 학교에서 자살자가 나오면 내 체면이 뭐가 됩니까?'

'만에 하나 애들이 기숙사에 정말로 죽었으면 이 선생님 어떻게 책임지실 생각이었습니까?'

'이 선생님, 강단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참 실망이네요.'


많이 노력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해온 학생과 우울증 및 연극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학생이 모두 우리 반에 배정되어 안 그래도 많이 신경 쓰던 중이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나 보다. 둘 중 하나는 허리띠로 목을 매려 했고, 나머지는 기숙사에서 약을 털어 넣었다. 한 반에서 두 명의 자살 시도 학생이 나온 이후 담임으로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학생 상담일지, 보호자와의 통화, 위센터 연계, 전문 의료기관 진료 의뢰 및 진료 동행 등의 기록물이 남아 있어서 인지 학교가 피해를 본 것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학교장은 남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했나 보다. 이 일의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묻기 시작한 걸 보면.


근거 없는 비난에 울음이 터졌다. 무너진 멘탈에 내 입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친구, 가족, 동료 할 것 없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내가 소망했던 의미의 위로였다.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바랐던 건 내 욕심이었을까, 귀에 들려오는 위로는 사뭇 다른 성질을 지닌 듯했다.


'아휴, 이 선생님 힘들겠다. 내가 이래서 담임을 안 한다니까.'

'이쌤, 담임이 원래 책임이 큰 자리잖아.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려.'

'교장선생님도 이해해드려야지. 노인이 무슨 일 날까 봐 불안해서 괜히 저러는 거니까.'

'힘내! 무너지면 지는 거 알지?'


폭풍 같은 하루 끝에 오른 퇴근길에서 공황을 겪었다. 운전 중이던 차 안에서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차는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세워두고 택시를 잡아탔다. 나는 무어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서 병원으로 가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가 시작됐다. 처음 마주한 정신과 의사가 몹시도 낯설었다. 낯설디 낯선 타인 앞에서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의사는 말없이 티슈 곽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일 일 하실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학교에서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맞아요. 학교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턱턱 막혀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거예요. 이참에 좀 쉬는 거 어때요? 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실 거예요."

"남들이 뭐라고 하진 않을까요?"

"남들이 뭐라고 할 것 같으세요?"

"... 잘 모르겠어요. 그냥... 책임 회피한다고 욕할 것 같아요."

"선생님 다친 마음을 치료하려고 쉬는 게 왜 책임 회피예요. 오히려 제대로 책임지는 거죠."

"아..."

"요즘, 학교 선생님들 병원에 많이 찾아오세요. 우울증으로 입원도 많이 하시고요. 선생님들이... 직업상, 다들 너무 남한테 애쓰고, 신경 쓰느라 자신은 터질 때까지 내버려 두는 사람이잖아요. 선생님한테 학생, 뭐... 교장, 동료 다 소중한 존재겠지만, 선생님 자신이 이렇게 다쳐가면서까지 그들을 우선으로 위할 필요는 없어요. 선생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학생들도 잘 가르치죠."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희한하게도 쉴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네요."

"선생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 거예요. 갑자기 스트레스 역치가 확 넘어버리면 사고 기능이 뚝 떨어지거든요."

"네..."

"일단, 일주일 동안 약을 먹어보고, 그래도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면, 2주 정도 입원하면서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정신과 병동 입원이라고 하면 폐쇄병동 이런 거 생각하시는 분 많은데, 그런 거 아니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저 집에서 혼자 약 먹고 감정 살피는 걸, 병원에 머물면서 우리 의료진이랑 좀 더 집중적으로 하신다고 생각하면 되세요. 자세한 건 일주일 뒤 내원해서 얘기 나눠 봐요. 약 꼬박꼬박 드시고, 일주일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병가 내고 푹 쉬세요."


일주일 치 약을 처방받고 병원 문을 나섰다. 쏟아낸 울음과 토로가 카타르시스를 일으켜서 일까... 신기하게도 아까는 미처 몰랐던 오후의 따사로움이 팔에서 느껴졌다. 저물어가는 오후의 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사의 마지막 말을 복기했다.


'불안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는 있어요.'


'불안을 피할 수는 없다.'란 말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모종의 불안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동질감이 나를 위로했던 까닭인지... 그렇게 10년 만에 처음으로 병가에 들어갔다.


약을 먹고 입원 중인 와중에도 여전히 살인마의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벅저벅. 익숙한 나의 방, 아주 낯선 병실에까지 예리한 단도를 든 살인마가 찾아왔다. 약을 먹고 치료를 시작하기만 하면 모든 불안이 사라진 텅 빈 속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좋지 않은 기억으로 무장된 이 머릿속 살인마는 악마 같은 구석이 있었다. 생채기 난 마음을 후벼 파는 집요함이 악마 같은 놈이었다.


 "이제 2주 정도 약을 드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무언가 달라진 게 느껴지시나요?"


의사가 물었다.


"불면증은 확실히 많이 사라졌고요. 약을 먹으면 멍한 기분이 지속되는 면도 있는데, 약 기운이 떨어지면 또 불안이 마음속에 돌면서 과거에 힘들었던 일, 비난 투의 말들이 끊임없이 상기돼요. 그때 많이 괴로워요. 갑자기 눈물도 터지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왜 자신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음... 후회스러워서 인 것 같아요. 그때 내가 왜 그랬지? 난 왜 그렇게 밖에 못한 거지? 하는 자책, 자학성 반응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 상처 주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이제 여기 없어요. 과거의 상처를 곱씹고 곱씹어서 또 다른 상처를 내는 사람이 나 자신이 돼버린 거예요. 이제부턴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셔야 돼요. 불안한 기분, 나쁜 기억들이 몰려와서 자책을 할 때, 이렇게 되뇌어 보세요. 내가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자책을 하고 있네? 계속 자기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면서 불안에서 자책으로 연결되는 고리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의사는 감정 알아차리기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내가 내 감정을 알아채고 어루만져 준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참 까마득하기만 하다. 사실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나서부터는 나라는 존재를 돌 본 적이 없는 듯했다. 수많은 학생과 보호자와 상담을 하고 그들의 문제에 공감해 주었지만, 나 자신의 마음은 터 놓을 수는 없는 일방적 청자의 역할을 맡았던 까닭이다.


저녁 약을 먹기 전에 병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살인마의 모습이 보인다.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는 그것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내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했다.


아, 내가 지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니 마음이 불안해지고 자책을 하는구나...


죽을것 같이 불안해도 죽지 않는다. 안 죽는다. 나는 안 죽는다.


눈을 꼭 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세 번을 내뱉은 말이었다. 잠시  천천히 눈을 떴다. 코 앞까지 와있던 살인마의 얼굴이 처음으로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


낯익은 얼굴이었다. 나의 얼굴. 갑자기 한줄기 눈물이 두 뺨 위로 흘렀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것의 정체가 타인의 비난이란 못된 기억의 편린을 온몸에 두른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아 차린 순간이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저녁 약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침대에 털썩 쓰러져 누워 두 눈을 감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 전에 없던 희미한 빛 한줄기가 새어들었다. 빛의 밝음을 느끼며 가만히 가슴에 손을 올려 심장 박동을 세어 보았다. 심장이 생각보다 담담하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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