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장님이라면 너는 죄가 없으리라.
전원 교향악은 맹인 소녀, 제르트뤼드와 유부남 목사 사이의 사랑을 그린, 하지만 종교적 향이 물씬 묻어나는 몹시 역설적인 소설이다.
제르트뤼드가 개안 수술을 통해 물리적 세상을 직접 바라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녀는 자신의 죄 – 아내가 있는 남자를 탐한 – 를 깨닫게 된다. 그러고는 목사에게 목사가 아닌 그의 아들, 자크를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원망을 끝으로 헤어짐을 고한다. 이들의 이성적이자 동시에 불륜적 사랑의 말로는 제르트뤼드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장님인 제르트뤼드를 만난 아주 초반, 목사가 베푼 것은 분명 선교적 사랑이었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어둠 속의 그녀에게는 목사의 말이 곧 세상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목사의 사랑이 이성적 사랑으로 변모하면서 신이 선사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 변화의 양상은 목사가 철저히 구교를 배척하면서 그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목사의 아들인 자크가 아버지를 배신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으로 그 갈등의 결과를 제시한다. 더불어, 제르트뤼드까지 자크에 의해 개종하였지만, 목사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제르트뤼드는 육체적으로 맹인이었지만, 목사는 정신적 맹인인 셈임을 알 수 있다.
제르트뤼드는 현실과 종교의 영역에서 개안과 개종을 동시에 진행한 인물이다. 그녀는 개종을 통해 자신의 죄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죗값을 죽음으로 갚았다. 다시 말하면,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눈을 뜸과 동시에 죽은 것이 된다. 장님일 적 무구했던 그녀 대신, 뜬 눈을 통해 그녀의 어둔 죄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세상을 한 번이라도 육안으로 바라본 사람이라면
과연 무결하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을 해석하는 데 주관적 인식이 개입되는 이상, 세상 그 누구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 역시 제르트뤼드와 동일한 죄인이 아닐까? 모든 인간에게는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만의 인식에 갇혀 그것을 명징히 깨닫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책을 덮고서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전원교향악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목사가 자기도 모르게 불륜의 사랑을 마음에 품으며 제르트뤼드에게 읊어주는 성경 구절이 목사 본인에게는 마치 목가적 선율처럼 들려서가 아닐는지, 그것이 죄임을 애써 부정하면서 말이다.
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좁은 문>보다 이해하기 훨씬 어려운 소설이었다. 싼 값의 종이책이지만 절대 가벼이 읽을 수 없는 묵직함이 서려있다. 클래식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생각의 깊이가 얄팍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문학이, 소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