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야, 학교 가자!
소설 연습 3 - 전형적 인물과 비전형적 인물
젊은 시절 사격 선수로 활동했던 권 여사의 현재 직업은 주 5일제 시니어 은행 경비원이다. 10년의 사격 국대 상비군 경력이 있었지만 경비원이란 직업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생물학적 성과 땅딸막한 외양의 소유자였기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지금 다니는 은행에서는 이사장의 머리 위에 사과 하나를 올려 두고 10미터 밖에서 비비탄 총알 3개를 과육에 연달아 박아 넣고 나서야 합격점을 받을 수 있었다.
매일이 고객으로 북적북적한 은행의 시니어 경비원인 권 여사에게도 점심시간만큼은 조용하고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으로 주어졌다. 권 여사는 식사 후에 꼭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고객 관찰 일기를 쓰며 남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은행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손에 들린 돈 봉투를 꼭 붙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안한 상태로 보인다. 봉투 두께로 보면 만 원 권으로 백만 원쯤 들어 있을 듯하다. 통장에 입금하려는 모양인데 막상 계좌번호가 생각나지 않는지 전표 용지 앞에서 한참 발을 동동거린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나 보다.’
- 저, 어르신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 아이고, 새댁. 나 좀 도와줘요. 내가 아들한테 백만 원을 보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어.
- 제가 대신 입금 전표 써드릴게요. 아드님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 아... 그게, 우리 아들에게 돈을 주긴 줘야 하는데 휴대폰이 고장 났다나 뭐라나 그래서 자기 친구 계좌로 보내라던데... 여기 어디 문자가 남아 있을 텐데.
권 여사는 요란스럽게 휴대폰 화면을 넘기는 노인의 손길에 직감적으로 심상찮음을 느끼고,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이미 시니어인 자신을 새댁이라 불러 주는 더 시니어인 이 여인이 왠지 보이스 피싱의 덫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 할머니, 아들이랑 직접 통화하신 거예요? 아들이 할머니한테 자기 친구 계좌로 돈 붙여 달라고 직접 전화를 걸었나요?
- 아니, 문자로 왔어. 자기 휴대폰이 고장 나서 당장 통화가 안 된대. 공짜폰 인가? 그걸 급하게 빌려하는 거라 문자만 된데.
- 할머니, 그 문자 어디 한 번 봐 봐요.
권 여사는 노인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들고 문자를 훑어 내려갔다. ‘엄마, 난데, 폰이 고장 나서 AS 맡기고 지금 공짜폰 대여해서 연락했어. 혹시 지금 바빠?’로 시작되는 전형적인 보이스 피싱 문자였다.
- 할머니, 혹시 아드님이랑 평소에도 문자로 연락하세요?
- 그럼, 하지.
- 원래 아들 번호로 주고받은 문자 좀 봐도 될까요?
노인이 권 여사에게 평소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 주자 권 여사의 오른쪽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갔다.
‘어머니, 진지 챙겨 드세요.’
‘어머니, 오늘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데요. 추우니 밖에 나가지 마셔요.’
‘어머니, 오늘 저녁 6시에 영훈 엄마랑 들를게요. 보일러 봐드리려고요.’
진짜 아들과 보이스 피셔의 말투가 아주 판이한 까닭이었다.
- 할머니 아들이 올해 몇 살이에요?
- 우리 아들? 내년에 육십이지.
- 근데 지금 이 문자는 무슨 6살이 보낸 것 같잖아요. 이것 좀 봐 보세요. 말투가 아주 다르죠? 이거 보이스피싱이에요. 할머니, 이쪽으로 돈 보내면 정말 사기당하는 거예요. 이 새끼들 순진한 노인 꼬드겨서 돈 뜯어내는 순 악질들이에요.
- 뭐, 뭐시여? 그게 참말인가? 이게 내가 갖고 있는 현금 전부였는데, 새댁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먼.
권 여사는 그 길로 보이스 피싱 번호와 계좌를 경찰에 신고하고, 노인의 손에 들린 현금 백만 원은 안전하게 그녀의 은행 계좌에 입금해 주었다.
며칠 뒤, 경찰 두 명과 지역 신문 기자가 권 여사의 일터로 찾아왔다.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검거를 도운 사례로 권 여사가 서민경제 수호 영웅으로 선정된 것이다.
- 이야, 기깔난다, 기깔나. 내가 사진 빨은 아주 잘 받는 다니까. 얘, 이것 좀 봐 봐라.
- 아까 봤잖아. 귀찮게 뭘 자꾸 보여줘.
- 엄마가 아름 신문에 서민경제 수호 영웅으로 대서특필이 됐는데, 열 번도 못 봐주니? 백 번을 봐도 모자라겠구먼.
- 축하해요. 아름 동 수호 영웅 님. 됐지?
- 되기는 뭐가 돼. 얘, 너도 한칼 하려면 어? 지역 신문에 이름 석자 날 정도는 돼야지. 맨날 손바닥만 한 학교에서 심 교장이랑 지지고 볶는다고 누가 알아 주니?
- 꼭 누가 알아줘야 해? 내가, 내가 떳떳하면 되지!
-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데 열 내면 너만 손해란 거지. 어디 첩첩 산골에 쳐 박혀 혼자서 바위에다 머리 찧는 꼴 아니냐고.
- 그럼, 뭐 어떻게 할까? 그 능구렁이 같은 심 교장이 시키는 대로 기숙사 사감 근태나 체크하면 돼? 솔직히 심 교장이 그러는 게 한두 번이야? 아무 이유도 없이 연가 불허하고, 심지어 아파서 낸 병가까지 담임이 조종례도 안 하고 어딜 가냐며 반려했던 사람이야. 권력 남용이 심 교장의 미들 네임이라고. 풀네임은 심 권력 남용 훈계, Got it, mom? 심 교장 똥 닦아줄 시간에 학생 한 명 더 상담하고 교재 연구를 해야지, 어? 교사로서 내 신념과, 철학이, 그리고 이 양심이 허락을 안 하는데 그럼 어떡해!
- 그렇게 혼자서 악쓰지 말고, 노조 지부장 한 번 해보던지.
- 어? 노조 지부장?
- 그래, 노조 지부장. 참, 잘할 것 같단 말이야. 너 정도 똘끼에 그 신념과 철학과 양심이면?
- 요즘 안 그래도 부캐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좀 구미가 당기네?
- 얘, 너는 그 성질머리에 노조 지부장이 네 부캐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 뭐야? 엄마가 추천해줬잖아!
- 본캐로 해. 본캐. 그래야 그나마 너 성질대로 살 수 있어. 아니면 화병 난다.
- 본캐?
- 한 번 잘 알아봐. 기왕이면 단단한 돌머리로 쳐 박아야 네가 안 깨지지, 이 숨구멍도 아직 안 닫힌 야들야들한 두개골로 뭘 하겠다고.
권 여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영모의 정수리를 마구 흥크렸다. 영모는 권 여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마구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권 여사는 사격 국대 상비군 10년의 경력을 가진 시니어 은행 경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