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당신의 관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정용준 소설 ‘굿나잇 오블로’에서 인용)
위의 타이틀과 함께 권 여사가 서민 경제 수호 영웅 상장을 들고 다수의 관계자와 찍은 사진이 아름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영모는 교무실 테이블 구석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었다. 권 여사의 환한 미소가 유독 돋보이는 지면이었다. 모친의 얼굴이 신문에 실린 것도 모자라 그 신문이 학교까지 배달된 것에 영모도 남다른 감흥을 느꼈다. 권 여사는 핏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확실히 멋지고 닮고 싶은 구석이 있는 여인이었다. 권 여사의 관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니, 이 얼마나 고무적이고 영광스러운 찬사인가. 꼼꼼히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영모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굳건한 얼굴로 교무실을 나섰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2층에 자리한 진로 교육실 앞에서 침을 꿀꺽 삼키고 노크를 했다. 똑똑.
- 네, 들어오세요.
- 강석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되시나요?
영모는 교원 노조의 아름 지회장인 아름고 진로교사 석희를 찾아갔다. 50대 초반쯤 되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여성이 영모를 반겨 주었다.
- 아, 영모 쌤. 어서 들어와요. 무슨 일이에요?
- 다름이 아니라, 교원노조 지부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한 마디였는지 영모를 쳐다보는 석희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다. 석희는 한층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사뭇 신기하다는 듯 영모를 쳐다보았다.
- 영모 쌤이 조합원이긴 하지만, 아직 활동 경험이 없어서 바로 지부에서 일하긴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지부 전임자들은 휴직 신청을 해야 하기도 하고요. 지금 우리가 법외 노조 신세라 휴직이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대신, 나랑 지회 활동부터 해보면 어때요?
- 지회에서 제가 할 일이 있나요?
- 그럼요! 안 그래도 지금, 참교육 연수부 자리가 하나 비어서 누굴 영입하면 좋을까, 궁리 중이었거든요.
- 연수부는 어떤 일을 하나요?
- 우리 지회 이름으로 연수나 워크숍 같은 교사학습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연구 주제와 연수 방법을 정하고, 장소와 강사 섭외도 하고. 그런 일이죠. 해볼 만하지 않아요?
- 네. 뭐... 괜찮네요. 수업 연구 모임 같은 거죠?
- 당연히 수업 연구 모임도 하나의 안이될 수 있죠. 안 그래도 애들이 영모 쌤, 아주 카리스마 있고 수업도 재미있다고 난리던데, 영모 쌤이라면 연수부 일에 딱 맞을 것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영모 쌤 작년에 한국 대표로 스코틀랜드에 가서 학습자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영어 수업 사례를 발표하고 오지 않았어요?
- 네, 그랬긴 한데, 운이 좋았던 거죠.
- 운도 좋았고, 실력도 좋았던 거죠. 그 정도 경험이면 연수부는 충분히 이끌 것 같은데, 어때요, 나랑 같이 일해 볼래요?
- 좋습니다.
영모의 씩씩한 한 마디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석희였다.
-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영모 쌤한테 차도 한 잔 안 내드렸네요. 뭐 마실래요?
- 그냥, 물이면 됩니다.
석희는 머그 컵에 찬물과 따뜻한 물을 섞어 영모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그런데, 갑자기 지부 일은 왜 하고 싶어 졌어요?
- 같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요. 혼자서 옳은 소리만 한다고 사회나 체제가 단박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지 않는단 걸 알았거든요. 나만 올바르면, 나만 떳떳하면 언젠간 세상이 알아주겠지, 했던 게 다 제 착각이었다는 것도요. 같은 목소리를 내는 동료와 함께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으로 걸어가야 변화의 물고 가 쉬이 터진다는 걸 깨달았달까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더 크게 외칠 수 있는 힘을 더해줘야지. 세상이 아름다워지는데 제 관심이 적으나마 도움이 된다면 저도 보태고 싶어 졌어요. 저같이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에겐 어마어마하게 큰 용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영모는 말을 마치고 소리 없이 신문 한 부를 석희에게 내밀었다.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당신의 관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라는 헤드라인이 석희의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