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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Dec 16. 2022

영모야, 학교 가자!

소설 연습 5 - 인물의 감정 공감하기

두 번째 레터: 새로운 명함이 왔네?


To. 이십이 년 십이월 십육일 열다섯 시 사십 분의 영모


안녕? 벌써 영모가 영모에게 쓰는 두 번째 서신이라니, 감회가 새롭구나. 얼마나 진정으로,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꾸준히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란다. 그런데 벌써 시작이 반인 처음을 넘어서 두 번째 펜을 든 것이니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오늘은 너에게도 몹시 새로운 기분의 하루였지? 새로운 타이틀이 새겨진 명함을 무려 천 장이나 받았잖니. 교원 노조 다움 지부 아름 지회 연수부장 이 영 모. 익숙하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과 호기심도 느꼈지만, 한편으론 네 어깨에 내려앉은 책임감과 그 무게가 부담스럽기도 하겠다. 그래도 새로운 길을 걸어 보기로 결심한 네가 대견하다. 스물셋의 코흘리개 초임 교사 시절, 벌벌 떨면서도 할 말은 다 하던 너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보니 말이야.  


십 년 전 처음 교직에 들어온 해, 그때 느꼈던 섭섭함을 아직도 너는 마음속에 품고 있구나. 참 교사의 꿈을 품고 시작한 직장에서 환영 회식이 열린 날, 너는 술 좀 따라 보라는 관리자의 요구를 거부했었어. 그때부터 눈에 띄지 않는 갑질이 시작되더구나. 모 대학에서 진행하는 학생 상담을 위한 연수에 참석하고자 하는 너를 불러 출장비 받으려는 거냐고 닦달하며 출장을 불허하던 그였지. 너는 억울함에 눈물이 났어.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모두 너에게 잊어버리라는 등, 앞으로의 교직 생활을 위해 눈 딱 감고 사과하고 치우라는 등,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말들만 해댔지.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지, 원. 그들 중에는 승진을 앞둔 사람도 있었고, 또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자기 일이 아닌 일에 대신 나서 주려 하지 않았던 것도 뭐, 어느 정도 이해는 갔지. 하지만, 동료들에게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던 너는 오롯이 모든 감당을 스스로 해내야 했기에 많은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


참, 아이러니했지. 그 어떤 분야보다 가장 개방적이고,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민주적이고 공정해야 할 시스템인 교육계가 실은 아예 반대였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 말이야. 갑질 따위가 흔했던 배타적인 조직에서 눈치코치 보느라 수동적인 교사들,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종점과 종점 사이에서 왔다 갔다 변색하는 정치판 같은 이곳을 떠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잠깐 했었지. 그래도 너는 다시 한번 용기 내어 보기로 했어. 임용고시에서 수석 하던 날 느꼈던 그 기쁨과 그런 너를 아주 자랑스러워하던 권 여사, 첫 담임을 맡은 교실 안에서 느낀 소속감과 너의 첫 제자들, 너에겐 모두 소중한 순간과 존재들이었으니 말이야.


너의 용기가 다시금 시작된 그 순간 아마, 너는 이런 결심을 했을 테야. 앞으로 교직에서 너 같이 억울한 사람을 본다면 적어도 너만은 그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겠다고. 그들이 바른 목소리를 내는데 힘을 보테겠다고. 너만의 그 다짐이 지금 이 새로운 명함의 바탕이 된 것일 거야. 이 명함 한 장으로 앞으로 너는, 서민 경제 수호 영웅 같은 거나한 직책은 아니더라도, 학생과 동료 교사의 어려움에 분명 도움이 되는 용병 같은 존재로 거듭날 거야. 그렇게 타인의 곤란과 곤경에 공감할 수 있는 너로 한층 성장해 보는 거야. I’m always on your side, seeing you be a better you.


From. 이십이 년 십이월 십육일십구 시 육분의 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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