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여행자의 아침 산책
체코에서 집을 사다니, 세상에!
와아~ 드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체코에서 (친구) 집을 사다니, 세상에!
유구한 역사가 있는 광장 위에 지은 지 20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체코 건물, 거기에 뒤편으로 딸린 반지하 와이너리를 개조해 동네 카페를 운영하면서 또 그 안쪽으로 딸린 방에서 고양이들과 투닥투닥 지내던 지난 2년 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이 주마등같이 흘러갔다. 그중의 8할은 코로나와 함께였다는 사실은 슬프고도 슬픈 역사이다.
넓으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아늑한 방이었지만 창문이 없었다. 그게 항상 아쉬워 언제든 창문이 있는 지상층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는데, 2년 반의 반지하 생활 그 끝에 드디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드넓은 정원이 딸린 집이라니...
여름 동안 후다닥 가게와 (친구) 집 이사를 마쳤고, 새로 지어진 집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자잘한 문제가 보여서 이것저것 해결하느라 정신없는 가을 보냈다.
가령 차고의 깨진 유리창이라던지, 샤워부스에서 스며 나오는 물이라던지, 세탁기와 건조기 설치, 침대와 소파 조립 설치 등 한국에서는 사람을 불러 금방 끝낼 수 있는 일들이지만 이곳에서는 몇 달이나 걸리는 일들이다.
계절이 늦가을로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드넓은 뒷마당의 실체를 마주 할 수 있었다.
집 앞 정원이 딸린 한국의 주택 스타일과는 달리 체코는 뒷마당에 정원이 크게 딸려있는 경우가 많다.
대신 현관 쪽에서는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 않아 안쪽이 비밀스러운 느낌이고, 1층에서 안쪽 윈터가든으로 통해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라 좀 더 프라이빗한 느낌이 안정적이면서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프라이빗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정원이 딸린 주택가를 산책하다 보면 뒷마당의 썬베드 위에 누워 수영복만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날이 따뜻해지는 늦봄부터는 팬티만 걸친 호호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육중한 몸을 필터링 없이 만나기도 한다(오- 마이 아이즈!!)
몸과 마음으로 정신없는 여름을 보내고 방치한 채 무성하게 자란 잔디와 잡초들을 늦가을이 되어서야 시원하게 깎아냈다.
그제야 뒷마당 한편에 있는 볼품없는 사과나무 한그루가 눈에 보였다.
이미 익어서 무거워져 땅에 곤두박질치면서 생긴 멍으로 가득한 사과 열매들이 바닥에 지천이었다.
날이 좋아 동네 산책을 나가면 가로수로 심어진 사과나무들이 열심히 열매를 맺고 땅에 떨구어 주고 있었지만 아무도 주워가지 않아 썩어가고 있었다.
세상에나 아까워라, 한국이었으면 이미 사람들이 다 주워가고 없을 텐데... 아까운 마음이 들어 떨어지면서 상처가 덜 난 사과들을 골라 집으로 가져왔다.
단맛은 적었지만 아삭하고 시원하게 씹히는 식감이 영락없는 사과였다.
내년에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사과들을 수확해 사과잼이나 애플파이라도 만들어야지.
집 뒷마당에서 숲으로 조금 더 들어가다 보면 작은 강줄기가 흐르고 있다.
비밀스러운 숲을 지나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면 이름도 예쁜 루치나 강이 시작되는 아주 작은 강줄기가 흐르고 있는데, 이곳에 작은 테이블을 두고 우리만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도 얼마 전에 본 '빨강머리 앤'의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