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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Aug 25. 2024

매주 토요일엔 꽃을 배운다

운명과 모순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매주 토요일 꽃을 배운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을 만나고

계절마다 다른 꽃의 태도를 배운다.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는 “꽃은 모두다른 계절에 핀다.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각자 그 계절을 준비하자”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무얼 하기로 태어난 걸까.

나는 왜 아직 살아있을까.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나를 만나고

계절마다 다른 나의 태도를 배운다.


여름 꽃이지만 여름에 약한 수국, 꿩의다리, 해바라기, 루드베키아, 미니바베나와 숙근해바라기를 다듬으며 여름에 약한데 왜 여름에 태어난 걸까 궁리한다. 역경을 겪은 생만큼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다른 계절의 꽃보다 더 빠르게 소멸할 운명을 타고난 여름 꽃에게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꽃을 배우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는지 깨닫는다.


이쪽저쪽에 마음 뺏기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에 집중하며 여기저기 흩어진 내가 하나의 다발로 뭉치는 듯한 몰입의 기쁨이 헛되지 않다.


꿩의다리였다가, 수국이었다가, 해바라기 었다가, 매 순간마다 달라지는 내가 한 다발 꽃다발이 되는 기분은 평안하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애잔하다.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한 세상 앞에서 허송세월로 보일 수 있는 시간들이 나의 마음에 윤슬로 일렁인다.


김훈은 허송세월 산문집에서 꽃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피지 않는다 했다. 저자신의 운명을 펼쳐 보이려고 핀다. 꽃들의 운명은 언제나 완성되어 있고, 이것이 꽃들이 누리는 자유의 발현이다.


박경리는 토지 서문에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다 했다. 치열하게 살지 않는 목숨은 없고 어떠한 미물의 목숨이라도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프다. 죽음과 탄생, 만남과 이별,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 이 모든 모순을 껴안으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꽃을 배우며 운명과 모순을 껴안는 법을 배운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의 운명과 모순을 돌본다.

나를 돌봐야 소중한 사람도 잘 돌볼 수 있지 않을까.


5월부터 이어진 92시간의 꽃수업.

92시간 후 어떤 내가 되어 있을까.

난 어떤 계절에 피어날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계절을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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