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엄마

by 유연

이틀 전, 엄마가 활동하는 시립 여성 합창단의 정기 공연날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진행되는 정기 공연을 위해 엄마를 비롯한 많은 단원분들이 매주 열심히 준비하는데, 심지어 이번에는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하는 특별한 공연을 준비했다고, 엄마는 몇 달 내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거기다 배우로 뽑힌 단원 3인방 중 한 명이 우리 엄마라니, 그 소식을 듣자마자 평소에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상상되어 괜스레 웃음이 났다.


공연 당일 날, 남편의 일이 살짝 늦게 끝나서 부랴부랴 공연장으로 출발했지만 약간 촉박하게 도착하고 말았다. 엄마는 본인이 주인공인데 우리가 늦게 왔다고 투덜거리시고는 이내 백스테이지로 휙 하고 사라졌다.


공황장애 때문에 극장 같은 곳은 일체 가지 않는 나에게는 이런 공연장을 들어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역이었다. 공연 시작 전까지도 갈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한 것을 엄마는 알까.


순전히 엄마가 주인공인 공연이라서 마음먹고 왔는데 돌아오는 것은 결국 타박이라니 괜히 서운해졌다. 평소에는 내색 없이 혼자서 뭐든지 잘하는 엄마였는데 공연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저렇게 타박을 하시다니.. 하다 문득 깨달았다.

아, 엄마에게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공연이구나.





공연이 시작되고 엄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 식구는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족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어색하고 자꾸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내 엄마의 연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라니, 내가 다 즐거운 기분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나와 동생을 바리바리 업고 에어로빅을 다니셨고, 나중에 우리가 사춘기였을 때는 온갖 악기 연주와 사물놀이까지 배우러 다니셨다. 나중에 다 커서 엄마한테 왜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그런 활동으로 우울감을 떨친다고 하셨다. 그땐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똑똑하지만 가난했던 엄마는 으레 그렇듯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서 일하다가 나이에 맞춰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다. 하지만 남들이 볼 땐 무난한 그 삶 자체가 본인과는 맞지 않으셨던 것이다.


좀 더 자유롭고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엄마는 결혼 후에도 나름대로 본인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고, 결국 환갑이 다 돼서 방송대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하며 드디어 스스로를 위한 삶을 시작하셨다. 거기다 이제는 합창단 뮤지컬 배우로 데뷔라니!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을 꺼냈다.

어머니 정말 노력하고 고생하셨겠다. 뭔가 마음이 짠하네.


그 말을 들으니 자식이라 너무 가까워서 못 느꼈던 엄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픈 나를 보살피느라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우리 엄마.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출 때가 제일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난 전생에 황진이가 아니었을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농담하던 엄마는 사실 본인의 '진짜 인생'도 살고 싶으셨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도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공황장애를 이겨내고 직접 엄마의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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