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아마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는 단순히 귀엽고 좋은 게 아니라 그들을 향한 연민이 내 마음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는 포악한 포식자에게 지배당하는 연약한 존재.
길거리의 비둘기들, 버려진 강아지들, 놀이공원에 묶여있는 당나귀들.. 하나같이 불쌍했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동물권에 관심이 생긴 나는 현재 유기견 네 마리와 함께 사는 중이다. 그중 한 마리는 한 살 때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린 채로 구조해서 벌써 여덟 살이 되었고, 나머지 아이들도 저 마다 사연이 있는 친구들이다.
한국에 살면서 느낀 나의 주관적인 견해는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으로 가기는 멀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결과만 봐서는 한국은 이미 ‘잘 사는 나라’가 맞다.
하지만 그에 반해 삶의 질은 어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은 약자에 대한 ‘연민’ 이 있는 반면, 한국은 약자는 밟고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이 아직도 강해 보인다. 그런 사상은 자연스럽게 동물에게도 가해지는 게 현실이고 심지어 약자나 동물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여론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동물권은 단순히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가져야 할 정서적 유대를 키울 수 있는 것은 다른 생명을 향한 ‘연민’이 기본인데 동물을 하대하는 사회는 이미 그 도의가 결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사회는 인간들 사이의 최소한의 배려조차 결여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 ‘타인’ 은 과연 배려할까?
나는 현재 두 군데의 동물구조단체에 후원을 하고 있다. 하나는 쓸개곰으로 사육당하는 반달가슴곰을 구조하는 단체에게, 다른 하나는 유기동물이나 구조가 필요한 동물들을 케어하는 곳에게.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겐 한국 살이가 썩 녹록지는 않다. 아직도 너무 많은 동물 학대가 가해지는 게 현실이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돈벌이를 위해 동물을 장사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그 행위를 정당화한다.
단순히 본인의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이쁘다고 인형처럼 꾸며놓고 키우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한국의 동물권이 나아지지 않는다.
어느 한 편에서는 아직도 짧은 줄에 묶여서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주식 삼아 살아가는 시골개들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아무렇지 않게 놀러 가는 동물원의 사자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든 동물을 사랑하진 않더라도 자신보다 약한 그 무엇에 대해 ‘연민’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