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틱 장애를 갖게 된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몰라
"야 너 그 습관 고쳐. 코 찡긋거리는 거, 되게 보기 안 좋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친한 친구가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해준 첫 번째 조언이었다.
내가 코를 자꾸 씰룩거리며 움직이는 게 굉장히 거슬렸는지 언제부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친구가 결국 못 참고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안 좋은 습관은 고치는 게 좋다고, 본인이니까 솔직하게 말해주는 거라고, 마치 인생을 오래 산 사람처럼 내 미래의 사회생활까지 걱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좀 더 심하게 코를 찡긋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멀쩡했던 눈과 이마까지 동시에 찡긋거리며 더욱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갔지만 움직임을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안 좋은 습관'은 이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일이 빨랐던 나는 1년 일찍 초등학교 입학 후 나름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반에서 항상 1번을 도맡을 정도로 키가 작아 툭하면 놀림당하기 일쑤였지만, 어린 마음에 지는 건 죽도록 싫었기 때문에 오히려 악착같이 공부하여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아 하곤 했다. 그땐 나의 치열함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줄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 9살이 된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어디 아프니? 왜 계속 눈을 굴리는 거야?"
하지만 나는 내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엄마는 다음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손을 꼭 잡은 채 안과에 갔다. 그리고 내 상태를 간단하게 검사한 의사 선생님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무래도 '틱'이라는 병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해주었다. 9살, 내가 틱장애를 진단받은 나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항상 불안함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나는, 아주 어렸던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불안했고 슬펐으며 우울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고 우울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나는 같은 또래 아이들이 답답하고 싫었다. 항상 제 멋대로에 남을 위한 이타심은 조금도 없는 이기적인 아이들.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제 멋대로 구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똑같이 이기적으로만 구는 어른들.
나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도 세상을 향한 환멸과 염세적인 감정을 느꼈고, 그 마음을 표현할 곳 없이 쌓아두기만 하니 매일이 슬프고 우울했다.
그래서일까. 예민함의 끝을 달리던 내가 틱이라는 장애를 갖게 된 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틱을 가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거치며 병이 호전되고 성인이 되면 완치되는 반면에, 35살인 지금의 나는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직도 새로운 틱이 끊임없이 발병하며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것을 보면 선천적 예민함과 틱 장애 발병은 어쩌면 필연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뚜렛증후군(음성틱과 운동틱이 동시에 발병하는 것)이 아닌, 운동 틱만 있기 때문에 괴롭고 힘들어도 꾸역꾸역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는 있다는 점이다.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원망도 하지만.
요새는 나처럼 예민한 사람을 Highly Sensitive Person, 즉 HSP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환경적이나 양육방식의 문제로 치부되었던 개인의 예민함이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준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나 혼자 꾸준히 HSP에 관한 공부를 하며 '아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것뿐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내려놓고 잠깐이나마 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