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린 아스퍼거(신경다양성/자폐스펙트럼) 아들을 키우면서 외식, 외출, 여행 등이 힘들어 일탈을 자주 꿈꾸곤 한다.
결혼 전에는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면서도 영화관, 미술관, 전시관, 음악회, 공연장 등에 가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독서와 등산, 산책을 하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했다.
또, 수고하고 고생한 나를 위해 맛집 탐방과 여행이라는 선물도 잊지 않고 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보헤미안처럼 살고 팠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내가 어느 날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신랑의 취미와 생활 패턴은 나와 너무나도 달랐고, 범상치 않은 신랑과의 결혼 생활은 난이도가 매우 높았으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쩌다 보니 집 주변과 집 근처를 맴맴 도는 삶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답답함'과 '갑갑함'과 '숨 막힘'이 주기적으로 내 목구멍을 조여왔다.
그때마다 아내로서의 책임감과 엄마로의 책임감에 집중하며 예전의 나를 지우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자 수없이 채찍질하였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과 지구라는 곳은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벗어날 수 없는'무한굴레의 늪'처럼 생각되는 날엔 우울감이 거세게 몰아쳤다.
나는 개인적으로 태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죽기 전에 그 이유를 찾고 싶고, 이번생에 나의 역할을 다하고 미련 없이 죽고 싶다.
그러려면 괴롭고,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잘 견뎌내야 하니
그에 대한 방편으로 최근에 심리상담소에서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또 '색칠(페인팅)'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리 상담을 몇 회 받으면서 느낀 점은 내가 지난 몇 년간 '눈물'을 잊고 살았음이다.
'너무 놀라면 소리가 안 나오고, 너무 아프면 눈물이 안 나온다.'라고 했던가.
결혼 생활도 평탄치 않았고, 거기에 아들의 발달 장애가 더해지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날보다는 애써 삼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나중에는 슬퍼도, 아파도, 기뻐도, 감동해도 눈에서 눈물이라는 것이 나오지가 않았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숙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 되어서 그렇다고, 약하고 여린 나에서 강하고 꿋꿋한 사람이 되어서 그렇다고 산전수전 겪다 보니 세상살이에 나름 초연해져서 그렇다고 단단히 착각하며 눈물샘 꼭지에서 혹여라도 한 방울의 물이라도 샐까 싶어 꼭지를 꽉꽉 조으고, 칭칭 봉인하는 것에 혈안을 기울이며 지내왔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고, 내 자신마저도 내 마음을
외면해서 마음이 고장 나서 그랬던 것을 거창한 이유들로 나를 꽁꽁 싸매고, 말도 안 되는 자기 주문들로 나를 무장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던 녹슨 눈물샘이 심리 상담으로 보수 작업을 해주니 처음에는 꿈적도 하지 않았던 꼭지가 상담이 거듭 될수록 어느 순간부터 물꼬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콧물처럼 걸쭉한 농축물이 눈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아, 시원해. 맞아. 난 울 수 있는 사람이었지.'
몇 년 만에 눈물샘이 다시금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보면서 상담받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사람을 단단하게도 만들지만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흔적이 사라지거나, 옅어지는 데는 고통의 크기에 비례하는 시간이나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상담사 앞에서 벌거벗겨진 기분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그런 기분과 마주할 '용기'와 '나를 내보이는 용기' 그리고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 없이는 무언가를 얻기란 힘드니 말이다.
상담을 받으면서 '페인팅'을 별도로 시작했는데 미술에 소질이 딱히 없어도 가능하고, 다 끝내고 나면 나만의 작품도 생기는 장점이 있어서 또다시 붓을 들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삶이란 뭘까?'에 대한 고민을 십자수 한 땀 한 땀에 놓았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하던 시기에는 페인팅을 알게 되어 그 무렵부터 페인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힘들었던 시기에도 나는 붓을 들고 색칠을 했다.
인생의 고비마다 색칠을 하며, 색을 잃고 바래버린 내 마음에 다시금 색을 입혀준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갔다.
처음에는 그냥 색깔 채우기에 불과하지만 색칠된 부분이
늘어날수록 점점 형태가 드러나고 끝에는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어 있는 '페인팅'을 통해 나만의 방식대로 인생의 고비를 넘겨왔고, 또 넘겨보고자 시도 중에 있다.
나는 페인팅을 할 때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는 스타일이라 이젤 없이도 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고, 동봉되어 있는 캔버스랑 붓과 미니 물감만 있으면 협소한 장소에서도 가능하니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
(색을 바꿀 때는 물티슈나 미니 물통을 사용하면 된다.)
이번 페인팅은 '부처님과 제자들'로 골랐다.
이제껏 그렸던 페인팅은 산수화나 정물화 위주였으나
아들의 발달장애가 내 인생에 큰 과제이자 도전이라 생각되어 무교이지만 이번에는 문득 '불화'를 색칠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또 아들을 육아하고, 장애 진단을 받고, 어린이집과 치료 센터 등을 다니면서 나 홀로 망망대해에 둥둥 떠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가족들, 선생님들, 치료사분들, 작가분들, 독자분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선배님들 등이 나를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음을, 고로 나는 혼자가 아님을 이 페인팅을 통해 상기시키고 싶었다.
완성되면 벽에 걸어두고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내 곁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을 부처님과 제자들에 대입해서 생각하고자 선택했다.
나는 또 페인팅과 별개로 문화생활에 대한 나의 갈망과 일상에서의 일탈을 도와줄 그림을 화장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았는데(그림 참고),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몇 천 원이면 누릴 수 있는 호화로움을 우리 집 화장실 한편에 옮겨놓고, 그림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보고자 함이었다.
마지막은 하프문 베타라는 열대어 사육을 통해 느낀 점이다.
베타는 수컷이 암컷보다 지느러미가 더 크고 화려하다. 그래서 나는 베타 중에서도 지느러미와 꼬리가 특히나 아름다운 하프문 수컷을 입양해서 3년째 기르고 있는 중인데 예쁜 만큼 손이 많이 간다.
싸움 물고기라는 이름답게 단독 어항에서 사육하는 것이 권장되고, 지느러미가 붙어버리거나 말리지 않도록 관리해주어야 하며, 배설물 청소 및 환수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또 쉬고 잠잘 때 침대가 필요한 재밌는 물고기이자 사람 친화적이고 주인을 알아보는 똑똑한 물고기이다.
(여름 빼고는 물고기 히터도 필수!)
수많은 열대어들 중 신랑과 아들과 닮은 점이 많은 물고기라 생각되어 정성으로 기르고 있는데 3년 동안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 감동했고, 감탄했다.
우리 집 어항 속에서 '기적'이 여러 차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얻었고, 한 생명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감이 일상의 무기력감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위의 재료들과 더불어 글쓰기를 나의 일탈과 견딤의 중요한 재료로 삼고, 소중히 여겨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