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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설유치원 특교자 '합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

장애 아동 부모들과 미래 세대는 '멘토'가 절실히 필요하다.

by 오뚝


특수교육청으로부터 특수교육대상자(특교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 장애통합 어린이집과 장애전담 어린이집 그리고 병설유치원 특수반 세 곳이라는 선택지에서 나는 특수반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특수교육청에서 검사를 했을 때 담당자님으로부터 특교자는 경쟁률이 높고, (현재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특수교육대상자는 5,6,7세를 다 합하여 총 4명으로 정해져 있다.) 아이가 말을 할 줄 알고, 지능이 높은 편이라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또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에 참고나 가산점이 될만한 병원 발달 검사 결과지나 장애인 등록증 역시 없어서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정이 된 것은 하늘의 뜻이자 '기회'라고 생각했다.


2. 집에서 병설 유치원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초등학교와 붙어있다 보니 운동장, 급식실, 강당 및 기타 장소 등을 공유하기 때문에 아이가 오며 가며 초등학교 분위기에 미리 적응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었다. 또 넓은 놀이터와 교실, 긴 복도, 층고가 높은 천장은 좁은 공간에 불편함과 답답함을 잘 느끼는 우리 아이에게 좋을 거 같았다.


3. 병설유치원 특수반은 담임 선생님 외 특수 교육을 전공한 특수 교사와 특수 교사를 돕는 교육직 공무원인 특수교육 실무사가 있는데, 이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보니 아주 심한 장애가 아닐지라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지도하고 케어하는 데는 제약과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아스퍼거는 외모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봐서는 장애를 알 수 없고, 대화를 해보고, 행동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를 처음 본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말을 참 잘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5분~10분이 지나면 뭔가 말은 잘하지만 묻는 말에는 대답을 잘 못하고, 눈 맞춤이 잘 안 되며 일반 또래 아이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행동들을 보인다.(예 : 제한된 관심사, 혼잣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는 상동행동 등)


또 뇌기능 이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향(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감각 이상, 주의력 부족, 작업 기억력 부족, 소근육 및 대근육 이상 등)을 받기 때문에 겉으로 잠깐 봤을 때는 장애 정도가 가벼워 보이나 장시간 함께 있는 교사나 친구들 그리고 같이 생활하는 가족과 장애 당사자인 아동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장애이다.


그래서 장애 아동을 지도하고 케어하기 위해서는 장애 아동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과 그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스킬 없이는 장애 아동을 가르치고 케어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통해 겪고 나니 우리 아이에게는 '특수교육'이 필요함을 느꼈다.


유치원 특수교육은 부분 통합(특수반과 일반반을 왔다 갔다 하며 수업을 받는 것)과 완전 통합(일반반에서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받는 것)이 있는데 특교자가 되면 특수 선생님이 도움과 교육이 필요한 상황에 바로바로 개입을 하여 집중 교육 및 맞춤 교육을 해줄 수가 있어서 좋다.


4. 특교자가 되면 치료 바우처카드가 나오는데 이 카드 하나로 여러 가지 치료를 받을 수는 없지만 여기에 자부담금을 좀 더 보태서 한 과목정도 아이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 고려해 봤을 때 '특교자'는 우리에게 선정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당첨'이자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아이가 신경다양성 자폐스펙트럼(아스퍼거)을 진단받고 나서, 여러 서적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아이의 장애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이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은 1년 동안 우리 아이를 지도하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다.


하지만 그곳은 일반 어린이집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우리 아이처럼 특수한 아이를 지도해 본 경험이 없으셨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은 일반 지도법으로 지도를 하면 잘 따라오는데 우리 아이는 겉으로는 일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일반적인 지도법으로는 지시수행과 동기부여가 안되었고, 단체 놀이나 활동이 안되어서 선생님께서 곤란해하시고 답답해하셨다.


오죽하면 학부모인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고 되묻거나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우리 아들의 경우 다행히 수업을 방해하거나 폭력성 같은 건 아직까지는 없어서 어린이 집을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육아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수업 방해나 자해 행동이나 폭력성 등이 심한 아동들의 경우 다니던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학원, 학교 등에서 퇴출을 당해 받아주는 기관을 찾아 이리 떠돌고, 저리 떠돌아야 하는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례들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어떤 문제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는 한 가정의 문제로만 볼 것 아니라 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문제로 보아야 한다.


아직까지 적절한 해결방안이 없다 보니 일단 이들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데 밀려난 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가 않거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학기 초중반에는 진단을 받기 전이라 아이 자폐에 대한 공부가 되어있지 않아서 선생님께서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실 때마다 " 죄송합니다." "너무 고생이 많으시죠." "항상 감사드립니다."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몰랐으니까...


아들의 자폐에 대해 모르는 게 '죄'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발생되는데 선생님도 나도 그에 따른 적절한 방안이나 대책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방황하던 시간이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등원을 거부하고,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 지도에 힘들어하셔서 동네 장애 어린이집에 중간 입소가 가능한지 알아보았지만 자리가 없어서 졸업할 때까지는 현재 어린이집을 계속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그러다 학기 후반쯤에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그때가 돼서야 선생님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에 대해 의사 선생님과 치료사 선생님의 피드백과 내가 공부한 부분을 하나하나 알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


또 아이를 지도하는 팁에 대해 어린이집 선생님께 알려드리니 고마워하셨다.


하지만 어린이 집 선생님께서는 혼자서 10명 남짓의 아이를 케어하셔야 했고, 시간적으로나 인력적으로나 우리 아이에게 할애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보였다.

현재 어린이집 업무나 행사만으로도 늘 바쁘고, 벅차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만큼은 특수교육이 가능한 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고, 아이의 장애에 대해 내가 공부를 하고 알고 있어야지 선생님과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장애는 조기 발견과 빠른 진단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은

적절한 치료와 함께 엄마표 수업이 더해져야 한다.


엄마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장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과 동시에 일반 또래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에 대해서도 늘 눈과 귀를 열고 더불어 같이 공부해야 한다.


장애아동이라고 해서 장애에 관련된 것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대한민국에도 장애를 가진 아동을 잘 키워낸 훌륭한 부모들이 많을 것인데 그에 대한 자료는 별로 없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자녀를 대중들에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이 부분을 사회와 국가에서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선배 부모들이 장애 아동을 키우면서 알아낸 주옥같은 사실들과, 경험담 등을 후배 부모들에게 접근성 좋은 자료(예 : 책)로 공유함으로써 앞으로 이 길을 걸어올 후배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헤매고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을 줄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이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줄 기관과 인력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도서관에 가보면 자폐 관련 서적들 중에는 국내 저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외국인 저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자폐 아동의 부모가 쓴 책이나 자폐 아동이나 성인 자폐인이 쓴 책도 있는데 우리 사회가 자폐를 비롯한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 아동의 부모와 장애인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이는 미래 장애 세대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장애 아동을 둔 가정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도 있겠지만 하루하루 먹기 살기에도 바쁜 가정들도 많을 것이고, 장애 아동 케어로 인해 시간적,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여유 등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러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책까지 출판하는 것은 도움 없이는 힘들다.


그래서 우선적으로는 기존의 여러 전문가들(의사, 임상심리사, 특수교사, 치료사 등)의 장애 아동 판별법, 육아법, 교육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정리를 해서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에게 치료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 각기관에서 '장애 아동 부모 지침서'나 '장애 아동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의 장애에 대해 공부하고, 배울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고, 상담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선배 부모들은 책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어서 후배 부모들의 '멘토'가 되어주어야 한다.


현재 각자 가정에서 장애 아동을 개별적으로 키워내는 각자도생법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특히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의사나 치료사와 같은 전문가들도 필요하지만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멘토'들 역시 간절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선배들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로서의 삶의 노하우와 장애인 자녀를 케어하고 교육하는 실생활 테크닉을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고, 그런 멘토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사회가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선배 멘토들은 캄캄한 망망대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큰 힘과 용기와 위로가 될 것이며, 등대와 안내자가 될 것이다.


한국은 아직 장애 아동을 키울 사회 제도적인 시스템이나 편견과 시선 때문에 장애인 복지가 보다 더 잘 되어있는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민을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장애 아동을 잘 키워낼 수 있는 사회 시스템과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이 장애에 대한 훌륭한 기술이나 자료를 만들어서 이 지구에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도 있다.


나는 그런 멋진 일을 우리 '대한민국'이 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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