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두 돌 때쯤 무렵 신랑 앞에서 크게 울음을 보인 적이 있었다.
묵혀두었던 울음이라 한번 터지니 쉽사리 그쳐지지 않았다.
산후 우울증이나 육아의 고됨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느꼈던 엄마의 직감으로 인해 흘린 눈물이었다.
“여보….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가 아무래도 자폐인 거 같아….”
내 말에 신랑은 크게 화를 내면서 완강하게 거부했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화로 표현한 것이리라… 사실 신랑은 현재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고, 받아들이는 중에 있다.
그렇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전형적인 자폐의 모습과는 좀 차이가 있기에 처음부터 바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릴 수 있다.
그래서 발견과 진단 시기도 늦어질 수 있다.
나 역시 병원에서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아이가 자폐인듯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폐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자폐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고 긴가민가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은 늘 헷갈림과 아리송함 그리고 혼란스러움 속에서 계속 방황했다.
'내 마음속에 끼여 있는 이 뿌연 안개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아닐까? 만약 맞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신랑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보였던 날 나는 다짐했다. 그리고 신랑에게 말했다.
"그래. 여보. 당신 말이 맞아. 내가 소아정신과 의사가 아닌데 아이에게 진단을 내리는 건 옳지 않아.
그런데 나에게 진단명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진단명은 그냥 진단명일 뿐이야.
내가 아이의 엄마라는 것과 이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만약 자폐가 아니라고 하면 다행인 거고, 만약 자폐라고 한다면 나는 이 아이를 더 사랑할 거야."
신랑은 나의 말을 듣고 조용해졌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아들은 좋겠다. 그런 엄마가 있어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나의 계획은 36개월 정도까지는 가정보육을 하고, 그 이후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3년 동안 엄마와의 애착 중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논문과 전문가들의 말을 따라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해서 가정보육을 하면서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고, 엄마표 놀이와 학습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지역들도 그렇겠지만 어린이집 입학이 생각보다 치열해서 특히 좀 괜찮다고 소문이 난 어린이 집의 경우는 미리 대기를 걸어 놓지 않으면 입소가 힘들다고 하여 내년에 보낼 어린이 집에 미리 입소 대기를 걸어 두었는데 아이가 30개월쯤에 중간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중간 입소 자리는 보통 기존에 원에 다니던 아이가 이사를 가게 되거나 다른 곳으로 원을 옮기는 경우 빈자리가 나게 된다. 쉽사리 나는 자리가 아니기에 당연히 내년에 입소 연락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연락을 받은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집에서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판단 내리지 말고, 아이가 어린이 집에 가게 되면 아이들을 많이 봐오신 선생님들은 아이가 뭔가 좀 다르다면 분명 나에게 피드백을 주시리라.’
그렇게 아스퍼거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