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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을 통해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후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한국이 싫어서>, <열광 금지, 에바로드>, <댓글 부대>를 연달아 읽었다. 그의 작품의 매력은 '핫'한 주제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다루되, 세밀화를 그리듯 현실적으로 표현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소설인지 구분이 안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런 혼란은 종종 '정치적 올바름(PC)'의 경계에 대한 혼란으로 확산된다. 이를테면, 여러 작품을 통해 드러난 '여성'에 대한 관점은 꽤 왜곡되어 있다. <표백>에서 이른바 '자살 선언'을 이끄는 세연은 '마녀' 이미지가 강하고,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는 'XX녀'로 불릴 만한 20대 여성의 말투를 정교하게 사용한다. <댓글부대> 또한 그렇다. 남성들이 이루어가는 세상에서 여성의 존재란, 그저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일 뿐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불편한 설정들이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그의 영민함이 그 외 단점들을 가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댓글 부대>를 비판적으로 봤다. 여성에 대한 그의 관점도 관점이려니와, 찻탓캇과 관련 인물들을 통해 진보, 혹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이들을 묘하게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내 머리 위에서 나를 지켜보며 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달까? 그럼에도 작품 자체는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그는 '나쁜 남자' 계열의 작가인 것 같다. 아무튼, <댓글 부대>에 대한 감상을, 작품 속 인터뷰 방식을 차용하여 써봤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죵쾅맹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있던 K가 반갑게 맞이했다. 얼마 전 터진 강남구청 댓글부대사건으로 속이 시끄러울 법한데 K는 오히려 이런 소란을 반기는 눈치였다. 기이한 평화라고, 죵쾅맹은 K가 따라주는 쟈스민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K : 그래, 자네 소설을 잘 팔리고 있다지?
죵쾅맹 : 이게 참,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싫어서>는 헬조선과 맞물려 불티나게 팔리더니 이번 소설은 마침 강남구청 댓글부대사건이 터져서... 며칠 전에는 서울 시장도 제 소설을 홍보해주더군요.
K : 허허. 내가 생각해도 강남구청 건은 참 나이스 타이밍이었어. 그래도 그게 어디 운뿐이겠나. 자네 실력이지.
죵쾅맹 : 과찬에 벌써 배가 부릅니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이번 건으로 그동안 의혹으로 떠돌던 선진화 작업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K : 그건 자네가 염려할 일이 아니네. 우리 애들이 매뉴얼대로 잘 대처하고 있어. 그나저나 '창작부대' 건은 어떻게 되고 있나?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자네가 창작부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소설 나부랭이를 쓰겠다고 할 때 못마땅했었네.
죵쾅맹 : 아... 그러셨습니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작부대>는 일단 제 소설로 그 효과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댓글부대는 투자를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너 댓글부대지?" 한마디면 게임 끝입니다. 지들끼리 알아서 싸울 겁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목표는 이기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K : 이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네.
죵쾅맹 : 물론입니다. 다만 저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K : 그렇다면 뭔가? 창작부대를 통해 자네가 하고 싶은 것이? 지금까지 한 게 있으니 자네를 일단 믿지만 난 아직 잘 모르겠네. 위에 보고하기도 애매하고...
죵쾅맹 : 일전에 제가 은종 게시판이나 줌다 카페에서 썼던 전략 기억하십니까? '황폐화'입니다. 저는 논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저들이 바라는 세상이 올리도 없고요. 아! 물론 착각하게는 할 것입니다. 일베충이든, 한남충이든, 86세대든 밟아버리면 속은 시원하겠죠. 그리고 그걸 지들끼리 돌려 보며 사이다네 어쩌네 할 겁니다. 분명 지들이 정의롭다 싶겠죠. 그런데 이젠, 그렇게 착각하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쨌든 모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아예 모일 땅을 빼앗아야죠. 그게 바로 제가 소설에 썼던 내용입니다.
K : 그 원리는 알겠나 만, 이젠 소설을 통해 많이들 알게 되지 않았나. 분명 따라 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말이지. 그러면 곤란한 거 아닌가?
죵쾅맹 : 바로 그겁니다. 내 패를 까서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저는 이걸 '간파'라 부르겠습니다. 간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간파했다고 느끼는 것, 간파당했다고 느끼는 것. 저는 이 두 가지를 활용하려고 소설을 썼습니다. 먼저 간파했다고 느끼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제 소설에 드러난 전략에 관한 것입니다. 저들은 옳다쿠나 할 겁니다. 마침 강남구청 건까지 터져줬으니... 흐흐흐. 지금 신났을 겁니다. 그러느라 자신들이 간파당했다는 사실은 외면할 겁니다. 그건 중요치 않죠. 사실, 소설에서 일부러 저들의 언어, 전략, 의식의 흐름, 언론 등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죄다 이용했습니다. 조금만 눈치가 빠르면 아마 기분 더러워질 소설이 바로 제 소설이죠. 자기들 머리 꼭대기에서 논다 싶겠죠. 그러다 아마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게 될 겁니다. 페이스북이나 게시판에서 '불편하다'는 용어나 'PC함' 등을 사용할 때 흔들릴 겁니다. "내가 휘말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겠고, 그러는 사이 논점이 흐려질 겁니다. 간파당했다는 걸 안다는 것은 그래서 무섭습니다. 댓글부대처럼 당장 효과는 없어도 분명 타격이 있을 겁니다.
K : 하지만 대부분 이 소설을 반기며 현실 속 댓글부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지 않나.
죵쾅맹 : 저도 그 점은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새로울 것도 없죠. 냅두십시오. 어차피 그러다 말 겁니다. 어차피 자기네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터넷 세상에서의 연대나 집단 지성이란, 지들 마음에 맞는 것을 취하기 위한 알리바이입니다. 조중동 본다 욕하면서 지들은 맨날 경향, 한겨레, 기사 공유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기들이 결코 온전하게 정의롭거나 완벽하게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심으면 됩니다. 간파당했다고 느낀 순간, 그 공포는 확신의 옷을 입게 되죠.
죵쾅맹은 잠시 말을 멈추고 K의 눈치를 살폈다. 여러 번 만났지만 K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뭔가 생각하는 것 같다 싶으면, 그렇지도 않아 보였다. 다만, 어디에 시선을 두든 눈빛은 매서웠다. 죵쾅맹은 차갑게 식은 쟈스민차를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죵쾅맹 : 공포가 확신이 되면, 사람들은 떠납니다. 떠나진 않더라도 최소한 뭉치지는 못하죠. 제가 쓴 <한국이 싫어서>가 그런 내용입니다. 계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민을 갑니다. 이게 포인틉니다. 거국적인 이유로 떠난다면 사람들이 확신을 못하죠. 지옥철을 타고 가다가 문득, 사라지지 않는 바퀴벌레 잡다가 울컥... 뭐 이런 걸로 떠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아! 내 얘기구나"하죠. 마침 헬조선이니, 이민계니, 각종 OECD 지수를 마구 공유시킵니다. 게임 끝이죠. 뭘 해보겠단 의욕을 잃죠.
K : 그러다 보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되는 거 아닌가?
죵쾅맹 : 아닙니다. 절대 못나옵니다. 정의로운 척하느라 한 두 번은 나오겠죠. 그러다 지들끼리 싸웁니다. 폭력이네, 아니네로 반토막, 구호가 산만하네, 아니네로 또 반토막... 이렇게 갈라집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집니다.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공유하는 사람은 먹스타그램만 올리는 사람을 경멸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되고요. 성명서 클릭 하나로 세상이 변할 거라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들 아닙니까. 적당한 정의감, 어느 정도의 연대의식, 자잘한 승리의 경험은 황폐화-간파 전략을 통해 도리어 저들을 더 절망하게 할 겁니다.
K : 흐음. 그걸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게 소설이란 말이지?
죵쾅맹 : 어차피, 개그와 현실의 경계,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입니다. 그 틈을 파고드는 거죠. 제가 소설 쓸 때 신경 쓰는 게 뭔지 아십니까? 되도록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신촌이면 신촌, 안마방이면 안마방 마치 내가 어디선가 보거나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죠. 취재를 통해 디테일을 보강하고요. 그러다 보면, 그게 현실 같아요. 계나가 나인 것 같고, 팀-알렙이 어디선가 존재하는 것 같죠. 이걸 하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요즘 바이럴 마케팅도 되게 교묘하게 하죠. 지금은 댓글부대나 어버이연합 같은 물량 공세가 아니라 세련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다시, 소설의 시대가 된 거죠. 진보 애들의 언어는 어려워서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자극적이고 쉬워야 하는데 쟤들은 그거 못해요. 가오가 안 살거든요.
K : 자네 다음 소설 주제가 궁금해지는구만.
죵쾅맹 : 메갈리안에 대해 쓸 겁니다. 일명 '김치녀 탄생'이라고 할까요? 제 이전 작품에서도 어느 정도 통한 전략인데 PC한 애들을 이기적이고 얄밉게 그리는 겁니다. 맞는 말하는 것 같은데 싸가지는 없네, 꽤 그럴 듯한데 알고 보니 존나 이기적이네, 미러링 한다면서 아예 일체화되었네, 여기도 결국 똑같네... 뭐 이런 이미지를 씌우는 거죠. 메갈이든, 페미니스트든 막을 수 없다면 오염시켜 질리게 해야죠. 이 분야는 사례가 하도 많아서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K : 너무 나가진 말게. 총선도 얼마 안 남았으니 자극시키면 안 좋다는 게 현재 우리 판단일세. 우린 지난번 얘기처럼 OO하기 위한 9가지 충고, 심장 폭행 고양이 동영상 등을 열심히 유포할 생각이네. 현지까지는 좀 먹히거든. 아무튼, 우리가 자넬 신뢰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말게.
신뢰, 라는 말에 죵쾅맹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었다. 언론사 출신 경험을 살려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누구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