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이나 목요일 찬양 집회가 한창 유행일 때 나도 그 유행에 편승하고자 한동안 집회를 다녔었다. 찬양집회를 다니며 '믿음으로 변화된다'는 의미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쓰레기' 때문이었다. 천국을 다녀온듯 은혜받은 얼굴로 와르르 쏟아져 나오던 사람들이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릴 때,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다툴때... 불과 몇 분 전, 그 은혜받은 사람들 맞나, 싶기도 했다.
직업상 행사를 많이 치르다보니 '사람들의 흔적'을 묵상할 때가 많다.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나 바닥에 흘린 커피를 쭈그리고 앉아 닦아야 할 때, 무례할정도의 요구를 하는 참가자를 만날 때... 신앙은 무엇이고,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하나를 통해 열을 판단'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참 매력적이더라는 것이다.
가끔 다른 단체가 우리 사무실에서 모임을 할 때가 있다. 장소 사용에 대한 특별한 원칙은 없으나 낯선 장소에서 모임을 하시는 그분들을 최대한 도와드리려 한다. 얼마 전에도 '기도로 시작하는' 모임이 진행되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여자 화장실 수압이 낮아 종종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화장실 다녀오신 어떤 분이 "여자 화장실 물이 잘 안내려 가네요"라고 내게 말했다. 그분께 대답했다. "네. 수압이 낮아요. 혹시 변기가 막혔으면 뚫어뻥이 화장실에 있어요"라고. 그러자 그분은 황당한듯 우아하게 썩소를 날리며 곤란한 어깨짓을 하고 말도 없이 세미나실로 들어가버리셨다. 그래서 막혔다고? 아니라고? 알 길이 없는 나는 '막혔으면 내가 뚫어야 하는건가?' 라는 끌데없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의 대답이 그분께 황당하게 들렸을 수 있는데 나 또한 그분의 똥을 치워드려야 할 '당연한' 이유도 없다. 만약 나에게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했다면 이 사무실에 서식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쌩깠고 나는 뚫어야 했다.
화장실에 한바탕 뚫고 다시 들어오니 그분들은 경건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있었다. 참 익숙한 풍경이었다. 내 성격이 까칠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교회에서 말하는 '섬김과 봉사'는 결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생각하는데 이런 경우 그 생각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 신앙과 인격(공공성)은 어긋날 수도 있으며 교회는 신앙도 신앙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존중도 고민하면 참 좋겠다.
나는 신앙의 덕목 중 자신이 싼 똥은 스스로 치우는 '책임성'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하나님나라는 뚫어뻥을 스스로 감당하는 이들을 통해 시작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