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쏜애플의 멤버가 친구들과 사석에서 했던 "음악에서 자궁 냄새가 나면 듣기 싫어진다"라는 말이 SNS에 공개되어 문제가 되었다. 유명인이 어떤 대상에 관해 혐오 발언을 하거나 잘못을 하면 비난하는 그룹과 옹호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우리 OOO는 절대 그럴 리 없어!" 라며 현실을 부정하지만 사실 그런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OOO에게 1의 도움도 안 되며 그러는 사이 나 또한 그 혐오 발언이나 잘못의 공범이 된다.
이 사건을 접하며 문득 2015년에 했던 '자아비판' 글이 떠올라 공유해 본다. 이 글은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실드 치던 팬의 반성문이며 오늘도 누군가를 실드 치고 있을 팬 혹은 지지자들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다.
지난 토이 콘서트(2015년 4월 2-4일) 당시 유희열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3일 동안 진행된 콘서트 중 나는 마지막 콘서트 관객이었고 그 문제의 발언을 들었다. 유희열 특유의 '언어유희'에 익숙해진 나조차도 '헉' 했고, 유희열도 머쓱해했으나 콘서트는 '은혜 충만' 했다. 콘서트 후 논란이 확산되기 전 유희열은 펜 페이지에 사과 글을 올렸다. 하지만 그 사과 글로 인해 오히려 논란이 증폭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그것이 '성희롱인가, 아닌가'였다. 내 입장은 이랬다. '나는 비록 괜찮았지만, 누군가 불쾌했다면 사과하는 게 맞고, 말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게 옳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에 괜히 서운해지기도 했다. '우리 오빠 그런 사람 아닌데...' 심리라고나 할까. 논란이 있던 그 주 <유희열 스케치북>은 결방했다. 나는 이 일로 <유희열 스케치북>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이 오래 씹어 끈끈해진 껌처럼 마음에 달라붙었다.
-나는 왜 유희열의 농담을 '성희롱'이라 인식하지 못했나.
-유희열을 까는 기사나 SNS 글에 '그는 원래 그런 농담 잘 즐기는 사람이었고, 그 발언은 그런 맥락이 아니었어. 우리는 괜찮았다는데 왜들 지랄이야'라고 내적 합리화를 시킨 행위가 망언이나 성희롱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정치인이나 목회자를 비판할 때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내부 조직을 강화하는 지지자와 교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며칠 후, 장동민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다가 문제의 그 방송을 들었는데 정말 기가 막혔다. 성희롱 수준을 넘어, 폭력에 가까웠다. 장동민을 비판하려니, 유희열이 걸렸다. '유희열은 되고, 장동민은 안되는가?'의 문제를 풀어야 했다. 물론 유희열의 발언은 '찌질한 변태'에 가까운 농담이었고, 장동민의 발언은 폭력적인 여성 비하 발언이었다고 굳이 구분을 할 수 있겠으나,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장동민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유희열에 대한 나의 태도를 점검해야 했다. 팬으로서 내가 유희열의 입장을 이해했던 것처럼 장동민 또한 그렇게 '쉴드' 치는 팬이 존재했고, 그 팬들의 생각 또한 내가 유희열을 옹호할 때 했던 말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희열과 장동민은 무엇이 같고, 다른가?
-만약 내가 장동민의 팬이었다면 나는 장동민을 깔 수 있었을까?
-어떤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판단들과 그 흐름을 통해 정한 입장은 과연 합리적인가?
-나는 나와 관계된(혹은 좋아하는) 사람의 잘못을 그런 식으로 무디게 판단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대략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얼마 후에는 JTBC가 경향신문의 특종을 가로채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보 유출과 취득 과정도 석연치 않거니와, 유가족의 반대를 거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손석희 사장에 대해 비판이 나왔다. 나는 JTBC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고, 손석희 사장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심플한 생각과는 달리 '손석희'에 대한 맹신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관계를 제대로 따지기에 앞서 경향신문이 무서워서 공개 못하는 것을 '손석희 님'이 까줘서 고맙다는 자의적 해석도 황당했지만, "나는 손석희의 순결한 단순성과 그 한결같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신앙고백은 나를 정말 당황케 했다. 나도 손석희를 좋아하지만, 언론인으로서 그를 신뢰하는 것과 그의 모든 것을 맹신하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신이 아닌 이상 잘못은 할 수 있고 잘못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OOO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보다는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전제한 관계가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하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나는 여전히 유희열을 좋아하지만 그를 무조건 옹호하면서 주변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이나 여성 혐오 발언이나, 남성들의 잘못된 여성 인식을 비판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유희열-장동민-손석희를 엮어서 생각해야 했다. 내가 유희열을 옹호했던 논리나 장동민이나 손석희를 옹호한 논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태초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면 그다음에는 분명 (자신의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형태로) 비겁해지거나, 편협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나를 대차게 까야한다. 꽤 괜찮은 '언니'인 척했지만 사실 나는 타인의 불편(쾌)에 관한 감각이 부족했으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척 하지만 사실 지극히 편파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를 그럴듯하게 표현하며 주변 사람을 호도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그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OOO는 절대 그럴 사람 아냐"라는 헛된 믿음은 버리는 게 좋다. 나, 그리고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