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달빛 Mar 14. 2016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초등학교 때 학교 신문에 내가 쓴 시가 실린 적이 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선생님이 빨리 공개적으로 내 시를 칭찬해주길, 아기새가 어미 기다리듯 목을 빼고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이 신문을 펴 들고 '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얘들아, 신문 OO페이지를 봐" 앗싸, 내 시가 실린 페이지였다. "10반 OOO의 시 참 좋지 않니? 이렇게 진실한 글이 좋은 글이야." 어라? 선생님이 소개한 시는 내 시가 아니라 내 시 옆에 함께 실린 시였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지, 그때 화끈거리던 '마음 온도'가 글을 쓰는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말이 더 상처가 되었던 이유는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가 쓴 시 주제는 '할머니'였는데 선생님에게 칭찬받았던 그 친구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는 시를 썼고 나는 할머니와 관련한 훈훈한 풍경을 상상하며 표현했었다. 초등학생들 글쓰기 실력이야 고만고만했겠지만 결국, 고백적 글쓰기가 독자의 마음에 더 인상 깊게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딱 30분 정도만 서운해했다. 다만, 그때 그 풍경이, 선생님의 말씀이 글을 쓸 때마다 소록소록 기억나 지금까지 '글쓰기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낙서하듯 쓴다지만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쓰는 글도 글인지라 그 나침반은 쉬지 않고 내 마음을 콕콕 찌르곤 한다. 많은 사람이 '잘 썼다.' 칭찬해도 도리어 부끄러운 글들이 많아지는 요즘, 그나마 스스로 만족하는 글은 어설프고 찌질하고 부끄러울지언정 마음을 솔직하게 쏟아놓은 글이다. 


글은 잘 못 써도 글에 대한 감각은 희미하게나마 있는지라 여러 글을 접하며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진실의 분량이 점점 줄어든 틈에 낀 '화장빨' 같은 허세에 대해. 화려한 인용문 뒤에 숨긴 지적 과시에 대해. 겸손을 가장한 인정 욕구에 대해. 보인다. 감춰도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글을 쓰게 되는 내적 동기를 늘 점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늘 글을 쓰는 내 마음과 글을 읽는 상대방의 마음 사이에 어떤 단어, 문장들이 놓여야 서로 진실하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하는 글도 영민한 글보다는 어눌하지만 자기 고백이 탱글탱글하게 살아있는 글이었다. 물론 자기 고백이 영민하게 살아있는 글을 쓰는 경지에 이르는 필자들은 더더욱 존경스럽다. 즉, 내 기준에서 좋은 글, 잘 쓴 글이란 '고백적 글'이다.


다양한 글들을 관찰하며 생각을 결을 다듬은 결과,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일상적 글쓰기 유형과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 유형은 다음과 같다. 

자기 계발형 글쓰기와 힐링형 글쓰기, 그리고 잉여형 글쓰기


자기 계발형 글쓰기란,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경험하여 이룬 성과 혹은 자신이 가진 지식 나열 중심으로 도전을 주는 글쓰기다. 다르게는 '자수성가형 글쓰기' 혹은 '지식 백화점형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겠다. 반대로 힐링형 글쓰기란, 주로 사색과 성찰이 가득한 글쓰기다. 다른 표현으로 '스님형 글쓰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두 형태의 글쓰기 모두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으나 자기 계발형 글쓰기를 보면 '꼭 성공해야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고, 성찰형 글쓰기를 보면 '아~ 숲으로 가거나 직업적 구도자가 되어야 하나?' 혹은 '언제까지 힐링을 하면 진짜 힐링이 되어 힐링형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따위의 의문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런 글쓰기도, 저런 글쓰기도 잘 안 되는 나는 글쓰기 고수들의 글을 보고 종종 기가 죽어 시무룩해진다. 

요즘에는 두 유형 너머 다른 유형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테면 '잉여형 글쓰기' 혹은 '고백적 글쓰기' 같은 형태 말이다. 예를 들면, 똥 이야기를 써도 부끄럽지 않고,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를 써도 자신만의 느낌이 있으며, 외롭다고 솔직하게 징징댈 수 있는 글쓰기. 위에서 언급한 '자기 고백이 탱글탱글하게 살아있는 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글이란 기본적으로 '잘 읽히는 글'이다. 잘 읽히는 글이란 삶으로 소화를 시켜 '잘 소화시켰다'고 기분 좋게 트림하듯 쓰는 글이다. 깊고 깊은 생각의 우물에서 갓 길어 올린 싱그런 글이다. 쉽게 읽히나 쉽게 쓰이지 않은 글이다. 그런 글은 투명하여 '화장빨'같은 허세, 화려한 인용문 뒤에 숨은 지적 과시 따위로 독자를 속이지 못한다. 그런 글이 좋은 글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학 온 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