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할 정당을 정하자

일일결심 20160318

by 명랑달빛

지지할 정당을 정하자.

나의 첫 선거는 1997년 대선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전라도 출신 민주당 지지자였는데 투표하는 날 "김대중 안 찍을거면 집에 들어오지 말아라!" 농담을 던졌을 정도였다. 생전 처음 들어가보는 작은 기표소 안에서 도장을 들고 기도를 했다. 도장만 찍으면 되는데 꽤 오래 있다 나오니 선거관리위원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좌우지간, 김대중은 나의 첫 대통령이 되었다. 2002년에는 노무현에 매료되어 '노사모'에도 가입하고 국민선거단 신청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하도 부모님과 나는 지지 정당이 같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빠는 더이상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꽤 오래 민주당을 지지했다. 마음이야 벌써 떠났지만 그놈의 '사표 방지' 논리에 마음이 흔들리고, '이번에는 믿어보자'는 헛된 믿음에 발목이 잡혔다.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행보에, 무능력하기까지 한 민주당이었지만 어쩐지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2012년 대선을 마지막으로 나는 "앞으로 절대 민주당에 표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짐했다. "이번에는 승리하게 도와달라" 반복하지만 자신들의 승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나. 민주당은 내게 더이상 지지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 했다. 그렇게 나는 '무당파'가 되었다.


궁서체로 말하자면, 무당파가 된 이후 매년 반복되는 나의 고민은 두 가지다. '올해는 어느 야구팀을 응원할까?'와 '어느 정당을 지지할까?' 물론 안 찍을 자유도 있겠지만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한 이상, 정당 체제는 중요하다고 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제대로 일하도록 감시하고, 비판하고, 지지하는 것이 투표권을 가진 자로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은 후 총선과 지방선거 등 '정당 투표'를 해야하는 선거 때마다 다른 정당에 투표를 했다. 정의당을 뽑기도 하고, 녹색당과 노동당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녹색당을 뽑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유령처럼 선거때만 표를 던지는 것도 책임있는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늘 고민이 되었다.

4.13 총선을 앞두고 곳곳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다. 그중 내가 눈여겨 본 격변은 선거구제 개편과 필리버스터다. 이 두가지에 대해 설명하자면 글이 길어질 것 같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 의원을 늘린 이번 선거구제 개편은 명백한 퇴행이다. 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체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왜 늘어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다양성과 전문성을 가진 국회의원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할수만 있다면 강제로라도 청년, 여성 국회의원을 늘리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지만 얼마 전 진행되었던 '필리버스터'를 감동의 드라마로 이끈 주역들은 거의 비례대표 의원, 청년 비례대표 의원, 여성 의원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우리가 알다시피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는 당내 경선을 통해 정해지는데 이 과정이 참 거지같다. 자기들 나름대로 공평하게 진행 한다지만 조직력이 탄탄하고 노련한 다선 의원이나 남성 의원 등이 유리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조직력의 벽을 넘어서지 못 하면 민주당 김광진, 장하나 의원처럼 당내 경선의 벽조차 넘어서기 어렵고, 정의당 조성주 의원처럼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비례 순번을 받게 되어있다. 사람을 제대로 키우기 보다는 '박박기다가 알아서 각자생존'해야 하는 구조에서 더 나은 정치를 상상해봤자 항상 '상상 이하'의 결과만 반복할 뿐이다.

물론, 그것이 '정치'라 말하겠지만...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이것이 과연 정치인가? 각 정당이 무슨 정책을 내놓는지 보다는, 자기들끼리의 이전투구와 생존이 화두가 되어버리는 것이 정말 정치인가? 나는 이런 제도 아래선 좋은 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 할거라 생각한다.

정말 화가 나서라도, 정치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며 소신껏 정치다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인을 곁에 두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지지할 정당을 찾고 가능하다면 당원이 되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표만 던져주니 '호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지할 정당에 대한 고민이 또 시작되었다. 몇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1.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는 표를 주지 않겠다. 새누리당은 사악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2. 정의당은 조금 더 지켜보겠다.
3. 정책적으로 가장 동의되는 정당은 녹색당이지만 나는 녹색당이 정당인지, 시민단체인지 아직 판단을 못하겠다. 다만, 녹색당이 원내에 진출하여 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노동당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이 대변하는 대상이 '노동자'인지 잘 모르겠다.
5. 내가 어떤 가치나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리하고 각 정당별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 검토한다.

6. 우리의 선택지는 새누리-더불어민주 두 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과반 횡포를 막기 위해 반드시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더 많은 야당이 원내에 진출하여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대충 이정도다. 길게 썼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는 투표를 할 것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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