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결심 20160314
성실하게 먼지를 닦고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자.
3월 1일 감기에 걸려 2주 동안이나 고생하다가 오늘에서야 병원엘 갔다. 이번 감기는 기침감기였는데 특히 밤에 집중적으로 기침을 하느라 삶의 질이 떨어졌다. 어젯밤에는 기침하다가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는데 문득 '사는 내내 기침하다가 죽어서 무덤에서도 기침을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결국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은 그 지역 할매와 할배들의 임시 노인정 같았다. "내가 몇 시에 왔는데 아직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어쩌라는 것이냐!"는 할배의 호통에 이골이 났는지 카운터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간호사는 영혼없는 목소리로 "아이구~ 이게 다 제가 일을 못 해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능청을 떨며 할배를 간단하게 제압했다. 이런 저런 풍경을 시청하는 사이, 약 한 시간 반 동안 지루하게 전광판에 박혀있던 내 이름이 드디어 깜빡였다.
내 증상을 메모하며 듣던 의사는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는 약과 위염 약을 처방한 후 안녕히 가시라 인사를 했다. 한 시간 반 기다려 3분 진료하고 나오니 약간 허무했지만 엉덩이 주사 처방을 받지 않아서 기뻤다.
"꼬박꼬박 밥을 먹어야지" 식후 30분에 먹는 약 3일 치를 받아들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약을 먹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을 잘 챙겨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니 사실, 약을 먹어 병이 낫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성실하게 보살피는 과정을 통해 낫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은 거들 뿐.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으니 며칠 사이 성실하게 앉은 먼지가 보였다. 물티슈를 꺼내 먼지를 닦으려니 문득, 천명관 소설 <고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중략)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
엄마는 먼지에 민감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엄마 눈에만 보이는 먼지가 따로 존재하는지 엄마는 "먼지에 집 무너지겠다" 등의 어이없는 말로 나를 채근하곤 했다. 그 때문인지 먼지가 쌓이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성실하게 번식하는 먼지처럼 살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까... 라는 먼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먼지를 닦아냈다.
인생이란 먼지를 닦아내는 것과 같듯, 일상이란 꼬박 꼬박 챙겨 먹는 한 끼 식사와 같아서 사유의 허기, 감정의 불균형을 살뜰하게 채운다.
감기, 감기같은 감정에 사로 잡혀 헤매느라 며칠 동안 깨졌던 일상의 리듬을 찾아야 겠다. 먼지를 닦고 밥을 챙겨 먹는 일은 귀찮지만 성실하지 않으면 금방 표가 난다. 그러니 성실하게 먼지를 닦자. 꼬박 꼬박 밥을 챙겨 먹자. 그러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