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결심 20160303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남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열등감 덩어리'다. 온갖 종류의 열등감이 혈관 속 피처럼 흐른다. 예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남들보다 못난 외모, 작고 살찐 몸매, 후줄근한 차림도 언제나 불만이라 거울 보기 두려울 때가 많고, 일 영역에서도 자신이 없어 남들보다 몇 배 노력을 해야 겨우 평균에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잘 쓴 문장들을 만나면 내 문장이 늦가을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지는 경험이 일상이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나는 미리 포기해 버린다. 나 같은 애를 저 사람이 왜 좋아하겠어. 타인의 칭찬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그 나이에..."라는 편견의 말인데 그걸 나에게는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하여 "이 나이의 나"를 한심해한다. 그런 나를 한심해하면서도 극복하려는 노오력도 그다지 하지 않는다. 실패할까 봐. 상처받을까 봐. 내가 정해놓은 아주 작은 영역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긍정의 말을 들려준다. 넌 괜찮은 사람이야. 잘 될 거야. 열등감에 위선까지 갖추었다.
또 한 가지, 나는 행복하면 불안하다. 어릴 때부터 행복 뒤에는 늘 불행이 찾아온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행복하다는 걸 느끼지 말아야 불행이 안 찾아온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쩌다 잠시 우쭐해질 상황이 닥치면 그 바로 뒤엔 쪼그라드는 상황이 추격해 오곤 했다. 그래서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비관주의를 택했다. 누군가는 최대치의 결과를 상상하며 열심을 낼 때 나는 최악의 결과를 예측하며 그것을 피하기 위해 집중했다. 좋은 일도 늘 평가 절하하여 해석해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문득 고민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힐까...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고민을 해봐도 답은 안 나온다. 우리 부모님이 칭찬에 인색하신 분들이긴 해도 특별히 나를 무시하거나 억압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된통 당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며칠 동안 열등감 대폭발 시기가 찾아왔다. 수시로 찾아오지만 주로 글을 쓰거나 어떤 일이 잘 안 풀릴 때 최대치가 되는데 이번 경우는 조금 예외였다. 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마냥 숨고 포기하긴 싫었다. 그래서 애써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는 노력을 해보지 않은 채로 내가 나를 왜 사랑하지 않는지,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그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제 본 <주토피아> 속 대사가 생각난다.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뿐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구원할 사람 중 첫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나를 사랑하고 싶다.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오늘 결심은 질문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