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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하는 리뷰
by 명랑달빛 Jan 08. 2018

드라마 속 '여성 노동' 관찰기

드라마

이 글은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 에 출연분 원고입니다. 글 내용을 목소리로 듣고 싶다면!
[시즌3-12] 드라마 속 일하는 여자를 찾아라!
[시즌3-13] 드라마에서 일하는 여자가 그려지는 법


우선 반성한다. 팟캐스트 초청을 받고 고민해보니 그동안 드라마를 많이 봤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성과 노동을 연관 지어 보는 데 인색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지은 기자(전 IZE 기자)가 출연한 '한남 엔터테인먼트'와 '아재 엔터테인먼트' 편을 들었는데 "모든 대중문화의 경향"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드라마의 세계도 그렇다. 특히 드라마는 신체 중 피부처럼 우리 삶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장르이므로 지금까지의 드라마가 노동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그리는 데 인색했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노동하는 여성에 관해 인식할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지금은 잘 안 쓰지만 '직업여성'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를 들으면 '직업을 가진 여성'을 뜻하는구나, 생각하겠지만 흔히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다. 아마 과거에는 전업주부 비율이 높았으니 직업을 가진 여성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게 그게 전부라서 그러지 않았나 싶고, 직업을 가진 여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탓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주부의 일, 즉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닌 건가?     


가사는 '노동'인가, 아닌가?


최근에서야 우리는 가사 일에 '노동'이라는 단어를 붙여 인식하고, '여성이 집에서 노는 게 아니다. 노동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런 풍경을 당연한 듯 반영했다. 그런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2016년에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 거야>에는 요즘에 흔하지 않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이 등장한다. 이 가족에서는 ‘ 미아리 산동네 18평 연립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결혼 생활을 시작해 환갑까지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살았’던 어머니가 가사노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그 어머니와 딸이 나눈 대화가 흥미롭다. 할머니와 엄마가 사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화를 낸다. “(니들) 아빠 부모님 모시는 게 당연히 내가 할 일이었고 집안일하면서 니들 학교 끝나고 와 ‘엄마’ 아빠 퇴근하고 들어와 ‘여보’할 때 언제라도 집에 있는 내가 행복했어. 내 인생을 왜 니가 니 맘대로 생각해? 내 자리에서 내 책임 열심히 다한 걸 그렇게 노동이라는 말로 가볍게 얘기하지 마." 아주 오랫동안 여성의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닌, 지극히 당연하고도 신성한 운명처럼 인식되었다. 그런 인식은 드라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럼에도 드라마 속 여성의 노동하면, 가사노동이 떠오른다. 그래서 여성의 이 주제를 ‘가사노동’에서부터 출발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드라마 속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어떻게 재현되었을까?  
   

 대가족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여성은 며느리, 아내, 엄마의 역할이 주어져 상하/종속 관계로 존재한다.

남성들의 무대는 거실이나 안방, 여성들의 무대는 주로 부엌이다.

남성의 부재는 주로 존재로 부각된다. "그이가 이 생선을 참 좋아했는데…" "니들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니들이 무시를 안 당했을 텐데…" 반면 여성의 부재는 역할로 부각된다. "여보~ 양말 어디 있… (아내의 부재를 깨닫는다)" 딸이 끓인 맛없는 국을 먹으며 아내를 떠올리는 식이다.

가정주부를 '밖에서 열심히 돈 벌어오는 남편을 착취하며 편하게 사는 존재'로 인식한다.

가정주부가 아닌 여성, 즉 일하는 여성은 주로 얄밉고 이기적인 신세대 둘째 며느리나 부모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되바라진 딸 이미지로 재현된다.

주로 부유한 집에서는 가사 노동을 ‘가사 도우미’에게 맡기는 주부가 등장하는데 대체로 사치스럽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부정적 이미지로 재현된다.    

드라마 세계에서 대가족 중심, 가부장적 질서 등 가장 보수적인 가치관을 재현하는 게 주로 '주말 가족 드라마'인데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주로 아버지가 부엌에서 요리한다. 아버지가 분식집 주방장이어서 요리하는 거에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흔치 않은 장면이다. 물론 여전히 드라마 속 부모 세대는 ‘아버지는 거실/어머니는 부엌’이라는 이분법 설정을 선택하지만 이런 장면이 나오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라마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여성, 즉 '노동하는 여성'들이 어색하지 않게 일상적으로 등장한 건 1997년 IMF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가 아닐까 싶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가정이 더 이상 가장 1인이 벌어서 가계를 꾸려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고, 그 흐름을 타고 직업을 가져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자 욕망하는 여성 개인들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좌우지간 '맞벌이' '커리어 우먼' 등으로 '노동하는 여성'의 서사가 드라마에 등장했다.     


그중 2013년에 방영된 <직장의 신>은 '노동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흔치 않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파견의 품격>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한 드라마인데 버블경제 붕괴 이후라는 일본의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는 'IMF 16년 후'라는 상황으로 바뀌어 전개된다. 드라마 1회에서는 IMF 이후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자료 화면이 나오며 "IMF 16년 후 기간제, 비정규직, 계약직이라는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는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그 '새로운 인류'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 미스 김이다. 그리고 미스 김 주변에는 3개월 계약직 정주리, 재계약을 위해 임신 사실을 숨겨야 하는 5년 차 계약직 박봉희 등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미스 김은 '자발적 계약직'이고, 나머지는 '비자발적 계약직'이라는 것. 이 드라마에서 미스 김은 170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슈퍼 갑'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인물로 나오는데 주목할 점은 '미스 김은 왜 자발적 계약직이 되었는가?'이다. 미스 김은 과거의 어느 사건을 겪으며 죄책감과 환멸감을 느끼며 조직을 떠나게 된다. 그 사건은 2007년 제정된 ‘비정규직 보호법’에 반대하는 파업 때 발생한 화재 사건이었다.     


우리는 흔히 IMF 이후로 급속하게 악화한 노동시장에서의 최대 피해자를 남성/가부장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가 나오고, '고개 숙인 남성' 담론이 나왔는데 사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 상당수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미스 김도 그중 한 명이었고, 그 결과 현재까지 미스 김의 후예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들은 모두 계약직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나도 그랬고, 당시 시청자들은 '와이장'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마음껏 무시하며 '슈퍼갑'으로 살아가는 미스 김을 동경했고, 그녀처럼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예외적 인간이다. 오히려 사회적 목숨을 저당 잡힌 3개월짜리 인턴 정주리나, 임신한 사실도 숨겨야 하는 5년 경력 계약직 박봉희가 현실에서의 우리와 가깝다. 정주리는 2017년에 방영된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3개월짜리 인턴 은호원으로,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임신한 사실이 밝혀져 회사로부터 권고사직당할 위기에 처하고, 동료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결국 유산하는 김유주(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로 반복 재생된다.     


그렇다면 정규직이 된 여성의 노동 현실은 달라질까? 2014년에 방영된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생각해 보자. 미생은 '바둑'이라는 세계에서 밀려난 장그래가 주인공이지만 그 드라마에는 장그래의 '유일한' 여성 입사 동기 안영이와 능력 있는 '워킹맘' 선 차장, ‘마녀’ 재무부장도 나온다. 특히 안영이는 수석 합격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지만 입사해서는 지속해서 고통을 당한다. 일단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에서 안영이는 늘 소외될 수밖에 없다. 남성들에게는 그들을 이끌어 줄 우정의 연대 혹은 선배 그룹이 있다. 그러나 안영이에게는 그런 우정이나 선배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여성인 선 차장 정도가 안영이를 이해하며 조언을 하지만 선 차장 역시 위치가 불안한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남성 동료나 선배들을 나쁜 쪽으로 자극한다. 사수인 하 대리는 시시때때로 안영이를 무시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고, 마 부장은 안영이가 작은 실수를 해도 “이래서 여자랑 일을 못 하겠단 말이야” “진짜 여자들이 문제야” “그게 다 여자들이 의리가 없어서 그래” 등의 성차별적 발언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사회는 안영이에게는 장그래, 장백기, 한석율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것 - 능력뿐 아니라 여성성 - 을 요구한다(실수도 하지 말아야 하고 생수통도 갈아야 하지만, 업무를 위해서라면 가슴과 엉덩이에 뽕도 넣어야 하고, 결정적으로 상사에게 뻣뻣하지 않고 고분고분해야 한다). 안영이는 그게 부족하여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그런 안영이를 지지하거나 잘 가르쳐 줄 (여성) 우정의 연대나 선배 그룹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안영이가 그 조직에서 살아남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워킹맘'이 된다면 선 차장이 될 것이다. 선 차장은 어떤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만, 엄마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내야 하는 '이중 노동'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여성이다. 이 중 하나라도 못 해낸다면 회사에서는 하 대리가 안영이에게 했던 말 "이래서 여자랑 일을 못 하겠단 밀이야" "진짜 여자들이 문제야" 등의 말을 다시 들을 것이고,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면 죄책감은 기본이고 사회적 성취마저도 평가절하될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비혼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쌓는다면 어떨까? 재정 부장처럼 깐깐하고 드센 비호감형 여성으로 인식될 것이다. 즉 노동현장에서 여성은 '노동하는 인간'보다는 '여성'으로 우선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직원 같지만 결정적으로는 '여'직원인 것이다.     


드라마 속 '일하는 여성'은 어떻게 재현되었나?


드라마 속 '일하는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의 문제를 다시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잠재적 연애 대상 : 이런 말이 있다. "미드(미국 드라마)는 경찰이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한다. 일드(일본 드라마)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교훈을 주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교훈을 준다. 한드(한국 드라마)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연애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한다."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 여성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우선 잠재적 연애 대상이 되어 러브라인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2016년 인기가 높았던 <또 오해영>을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주인공 오해영은 이 드라마에서 어느 회사의 외식사업본부 상품기획팀 대리다. 초반에는 이 여성이 일도 잘하고, 사랑도 잘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는 한도경의 사랑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캐릭터로 전락한다. '오해영'을 연기했던 서현진이 출연한 다른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는 의사인 윤서정에게 들이대는 후배 의사 강동주가 나온다. 그에게 윤서정은 선배이자, 의사가 아니라 그저 '사귀고 싶은 여자‘다. 그래서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강제 키스를 감행한다. 2017년 초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인 상황에서 모든 방송사가 특집 방송을 하는 와중에서도 결방하지 않은 유일한 드라마 <힘 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부분에서 문제작인데 특히 도봉순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가장 문제다. 엄청난 힘과 게임 개발자로서 성공할 자질을 주었지만 그가 맡은 사회적 역할은 그를 사랑하는 게임 개발회사 사장 한민혁의 개인 비서였다. 말이 비서지, 그냥 그의 사무실 옆에 책상 하나 가져다 놓고 옆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툭하면 결근하는 역할이었다. 그에게 노동은 사랑을 위한 액세서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럴 거면 그 엄청난 힘은 왜 주었는지 모르겠다.    

 

워킹맘 : 앞서 소개한 <미생>의 선 차장이 대표적인 경우이겠고, <자체발광 오피스>의 조석경 과장이나 <송곳>에 나오는 대형마트 푸르미 일동점 직원들이 그렇다. 따지고 보면 '워킹맘'이라는 단어 자체가 차별적이다. 남성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게 당연하고, 여성은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워킹맘'은 있어도 '워킹 파파'는 없다. 드라마에서는 심지어 전문직인 경찰도 ‘미세스 캅’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기자든, 변호사든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물론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워킹맘'의 방점이 '워킹'이 아니라 '맘'에 찍힌다는 데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그 '맘'을 반기지 않는다. 반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차별하며 불이익을 가한다. <미생>에서는 선 차장이 둘째를 임신한 걸 알게 된 직원들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한다. “나 이래서 회사에서 여자랑 일 못 하겠다는 거야. 희생정신도 없고, 도대체 뭘 기대해 뭘!” “그것 참 어떡하려고 또 임신을 했데, 아 참 이기적이다” “진짜 여자들이 문제야. 기껏 교육시켜 놓으면 결혼에 임신에 남편에 애기에, 참 핑계도 많아. 그것도 아니면 눈물바다로 해결하려고 하고 말이야” “그게 다 여자들이 의리가 없어서 그래” 이건 분명 여성 직장인이어서 당하는 차별이다. 남성 직장인이 둘째를 가졌다는 이유로 저런 말을 듣기를 하나, 회사에서 잘리기를 하나.  

물론 여기에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그 차별은 더 심해진다. <자체발광 오피스>에는 이혼한 워킹맘 조석경 과장이 나온다. 조석경 과장은 "출산 전날까지 이 악물고 야근해 애 낳고 2주 만에 출근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고, 성공욕이 강하며 그에 맞는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동기들은 부장으로 승진할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겨우 과장이다. 그마저도 '이혼한 싱글맘'이라는 사실이 사내에 퍼져 "그렇게 독하니까 이혼당했지"라는 말을 듣는다. 남성들이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회사에서 일을 통해 성취감을 누릴 때 (물론 그게 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여성은 안 그런가!) 여성들에게는 엄마, 이혼녀 등의 단서를 많이 붙여 존재 자체를 평가절하한다. 그나마도 그게 전문직이거나 사무직인 경우 비교적 비중이 높게 다뤄진다.

드라마 속에서 생산직이나, 서비스직 여성의 노동이 주요하게 다뤄진 적이 얼마나 있을까? <송곳>의 주 무대는 대형마트 푸르미 일동점이지만, 주인공은 파업을 주도한 이수인 과장과 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 즉 남성이었다. 또한, 다른 수많은 드라마에서 생산직이나 서비스직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는 경우는 희박하거나 피상적이다.     

사회성 부족한 센 여성 : 어리바리한 20대 여성과 3-40대 워킹맘 사이에 이런 여성들이 존재한다. <직장의 신>이라 불리는 미스 김은 회식, 접대 등을 거절하며 스스로 왕따가 되고, <미생> 안영이는 "뭐가 이렇게 뻣뻣해? 죄송하다고 안 해?"라는 다그침을 받는다. <욱씨남정기>의 욱 다정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상사의 말에 "좋은 게 좋은 건 누구한테 좋은 겁니까?"라고 반문한다. 셋 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 순응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여성들을 '사회적 부족하다'거나 '노처녀 히스테리' '마녀' 등의 언어로 평가하여 불이익을 가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은 왜 히스테리 부리는 마녀, 센 여성이 되었는가’이다. 1. 남성 중심의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다(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2.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 3. 남성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독립성과 생존능력을 갖추었다. 이 이런 것이 그들의 업무 능력이나 직업윤리 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들이 마녀인 이유는 그들 자신일까, 남성 중심의 불합리한 조직 문화 때문일까?     


진화하고 있는 드라마 속 '일하는 여성’을 찾아라

 

드라마 속 '노동하는 여성'은 진화하고 있을까? 솔직히 소위 ‘알탕’ 영화나 ‘아재’ 예능 흐름보다는 낙관적이다.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봤다.     

성취와 자부심으로 무장한 / 위기의 공동체를 구원하는 여성 - <직장의 신>의 미스 김, <욱씨남정기> 옥다정, <아버지가 이상해> 번혜영 : 한때 '골드미스' '알파걸' 등의 용어가 등장하며 새로운 여성들이 출현했다. 직장 여성들의 일상을 다룬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나 '파티시에'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여성, 김삼순을 탄생시킨 <내 이름은 김삼순>이 2005년 언저리니까 그로부터 12년 정도가 흐른 셈이다. 그 이후 '일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직장의 신>의 미스 김처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인간을 그저 값싸게 쓰고 버리는 사회의 부품으로 여기는 세상을 스스로 거부하거나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처럼 자신이 있을 곳을 스스로 정하는 주체적 여성들이 되었고,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혜영처럼 주관이 뚜렷한 전문직 여성들도 등장했다. 물론 모든 여성이 이렇게 살게 된 건 아니지만 분명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여성들이 강조하는 건 '성취'와 '자부심'이다. 미스 김이 회사라는 조직과 거리를 두는 이유와 옥다정이 대기업 황금 화학에서 중소기업 러블리 코스메틱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유는 모두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발휘하며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고, 자부심을 지킬 수 있는 곳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심지어 변혜영은 '결혼 인턴제'라는 새로운 결혼 가치관을 개척한다). 또 하나 살펴볼 건, 이들의 위치성이다. 미스 김은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불안 가운데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옥다정은 거대 기업의 횡포에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 변혜영은 위기에 처한 가정에서 빛을 발한다. 즉, 일하는 남성이 '가족을 위해'라는 말로 사내 연줄, 회식, 접대 등으로 남성들의 우정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생존할 때 사회/공동체를 구원하며 유지시키는 건 여성들이다. 물론 이건 능력 중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능력도 갖추고, 멘탈도 강해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과거 수동적이며 보조적인 존재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욕망에 충실한 여성 - <파스타>의 서유경,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 : 두 작품 모두 서숙향 작가 작품이고, 공효진이 연기했다. <파스타>에서 서유경은 남성들의 세계인 레스토랑 주방에서 셰프가 되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그 욕망에 솔직하며, 그걸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붕어'라 부르며 윽박지르는 셰프의 무시도 견디고, 비굴하거나 비겁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도 마찬가지다. 표나리는 앵커를 욕망하는 기상 캐스터인데 앵커에 비해 기상캐스터의 처우는 좋지 않다. 비정규직이며,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실력보다는 외모로 평가당한다. 그마저도 자리 보존하기는 쉽지 않다. 그 상황에서 표나리는 질기게 버티며 앵커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높은 장벽을 두드린다. 물론 앵커 시험에 응시한 표나리는 배신자로 비난을 당하고, 여러 방해에 부딪히지만, 그 욕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파스타>에서 서유경이 했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실력 있는 셰프가 되고 싶고, 사수 셰프인 최현욱과 사랑도 하고 싶은 그에게 "주방에서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두 마리 토끼 다 잡고 싶어?"라고 동료가 묻는다. 서유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일하는 토끼가 사랑도 하는 거. 그런 거 아닌가?" 이 대사는 서유경과 표나리라는,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잘 드러내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앞서 '일하는 여성'을 잠재적 연애 대상으로 인식하는 방식에 관해 비판을 했다. 처음에는 '일하는 여성'을 재현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직장에서 연애하는' 스토리로 흐르고, 그러다가 연애만 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서유경과 표나리는 일도 하고, 사랑도 하는 여성을 재현한다.      


직장에서 '연애'하지 않고, '일'을 하는 여성 - <시그널> 차수현, <비밀의 숲> 한여진 : 그런가 하면, 연애하지 않는 '일하는 여성'을 그린 드라마들도 있다. <시그널>의 차수현과 <비밀의 숲>의 한여진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형사라는 전문직 종사자다. 한국 드라마가 '직장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들을 반복하니 시청자들은 이제 연애를 뺀 이야기를 선호하고, 두 작품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좋은 작품이다. 이 두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존재가 아니라 서사를 이끌고 가는 전문성을 가진 주인공이다. 앞으로 특정 직업군이 아닌 다양한 직종에서 이런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워킹맘' - <굿 와이프>의 김혜경,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 : 지금까지 '워킹맘'을 재현하는 드라마들이 '워킹'보다는 '맘'에 방점이 찍혀있었다면 이 두 여성은 '워킹'에 방점이 찍혀있다. <굿 와이프>의 김혜경은 제목과 달리, 검사 남편의 아내가 아닌, 변호사 김혜경으로 성장해 간다. 그 과정에서 노골적인 무시를 당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는 스튜어디스다. 실력과 경력을 갖춘 스튜어디스지만 "다음 (퇴사) 차례는 너"라는 주변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불안한 위치기도 하다. 게다가 자신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집안일을 결정하는 남편에게 지친 상태다. 결국, 최수아는 "누가 빨래를 너는데 그게 너무 평화로워 보이고 난 뭐 미친 사람처럼 사나 싶"어서 퇴사를 하고,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두 여성 모두 '일하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며 성장하기도 하지만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새로운 남성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비슷한 흐름으로 <두 번째 스무 살>의 하노라를 꼽을 수 있다. 하노라는 고등학교 때 임신을 하여 가정주부라는, 갇힌 존재로 살다가 뒤늦게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이혼을 감행하고 홀로서기를 한다. 이름이 노라여서 <인형의 집>을 모티브로 했나 기대했는데 결국 첫사랑이라는 또 다른 <인형의 집>으로 들어간 건 아닌가 싶어 결말이 아쉽지만, 그동안 '워킹'도 잘 해내야 하고 '맘'의 역할도 성공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불륜'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을 억압한 가부장 질서를 뛰쳐나와 독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하는 여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N포 세대/비정규직 세대 '을'의 입장을 대변하며 저항하는 여성 -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 <자체발광 오피스>의 은호원, <쌈 마이웨이> 최애라 :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현상은 이른바 N포 세대로 불리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 글의 주제와 조금은 어긋날 수 있지만, 팬심으로 넣어봤다. 이 드라마에서 서봄은 하룻밤 실수로 임신하여 '갑'의 세계 며느리로 들어가는데 그 세계에서 순응하지 않고, 혁명을 일으킨다. 아마 '새로운 인류'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무려 '갑'의 세계의 약자들 - 서봄, 메이드, 집사들 - 이 모여 노동법을 배우며 각성한 뒤 그 세계를 탈출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 공동체에서 서봄은 ‘일하는 여성’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그런 서봄의 아이는 마을 공동체가 함께 키운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사회상을 보여준 건 아닐까 싶다.

<자체발광 오피스>의 은호원은 저스펙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드라마를 보며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이 한인상과 결혼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여 졸업했다면 은호원이 되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딱 그 이미지다. 은호원은 '자소설' 100통을 쓴 끝에 어렵게 하우라인이라는 가구 회사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준 의사가 사실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 오너 아들이며, 불온한 의도로 자신을 그 회사에 낙하산으로 꽂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차분하게 오너 아들이 위법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며 정규직으로 전환할 기회를 달라며 '협상'하여 쟁취한다. 다른 남성 동료들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하는 여러 상황에서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며 선을 긋고,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소신껏 행동하기도 한다. <쌈 마이웨이> 최애라 역시 저스펙 비정규직이다.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를 꿈꿨으나 현실은 백화점 안내데스크 아가씨다. 그마저도 '갑'의 횡포에 시달리다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결국 '공중파 방송 아나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격투기 장내 아나운서'를 선택한다.    

이 여성들이 발랄하게 저항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갑'들이 만들어 낸 세상은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고, 질이 낮은 노동 환경으로 청춘들을 내몬다. 그러면서 '노오력'을 하지 않은 개인을 탓하고, 모욕하며 언어/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드라마에도 그런 장면들이 빈번하게 재현된다. <청춘시대>에서 생계형 알바를 뛰는 윤진명은 레스토랑 매니저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잘릴까 봐’ 참아야 한다. 그런 흐름에서 보자면 그런 모욕에 그들은 지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캐릭터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은호원은 자신을 모욕하는 면접 현장에서 깽판을 치고, "남들 이력서 스펙 채울 때 뭘 했는지" 묻는 면접관에게 최애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남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돈 벌었습니다."    


여성의 노동과 생애 - <막돼먹은 영애씨>의 이영애 : 아마 이 글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2007년에 시작하여 현재 열여섯 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는, <전원일기> 이후 최장수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는 제목이 드러내듯, 이영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0년 사이 이영애는 4번의 이직, 2번의 자진 사퇴, 2번의 해고를 경험하며 '일하는 여성'으로서 무르익어 간다. 이 드라마를 분석한 IZE 기사에 따르면 "광고 디자이너지만 경리 일도, 차 심부름도, 청소도 자연스레 여직원의 몫이 되어버리는 1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 직장 생활 대부분을 고용의 불안정과 직결되는 환경에서 보내고, 사장 개인의 변덕이나 무능, 독단을 막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고 연봉은 제자리걸음에 월급이 연체되기도 일쑤다. 시즌 12에서 경력 12년 차 디자이너인 영애의 월급은 203만 원에 불과했다."라고 ‘일하는 여성, 이영애’의 현실을 압축하여 소개한다. 앞서 여러 '일하는 여성'을 소개했지만, 이 드라마가 재현한 서사가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 이 드라마가 장수하여 이영애가 동시대 여성들과 함께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더 많은 '일 하는 여성'의 서사와 롤모델이 필요하다


‘일하는 여성’에 관한 드라마적 설정이 진보하고 있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입장에서 몇 가지 바람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일하는 여성들의 서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 앞서 쭉 소개했지만, 일하는 여성들의 서사가 전면에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중심 서사에서 한 걸음 비낀 보조적 줄거리 거나, 역할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드는 대부분 ‘그래서 러브라인이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로 수렴된다. 러브라인 없이 여성이 열심히 일하는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여러 드라마를 통해 목격했다. 드라마는 대중적 장르이므로 시청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요즘 드라마에 연인끼리라도 남성이 여성의 손을 잡아끌고 가거나, 윽박지르거나, 벽 키스 등을 하면 ‘데이트 폭력’으로 간주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시청자들의 문제의식이 결국 드라마를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할 것이라 생각한다. '연애하는 여성'이 아닌, '일도 하고 연애도 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성취와 자부심을 귀하게 여기는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을 많이 만나고 싶다.     

그런 여성들을 위한 '롤 모델'이 필요하다 : 드라마 속 '일하는 여성'들의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롤 모델'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한때 유행했던 '골드미스' '알파걸' 이후 '일하는 여성'들은 무슨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그보다 더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들은 제대로 그려지고 있을까? 현실에서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이 희귀하듯, 드라마에서도 그렇다. 있다 하더라도 남성화되었거나 기성세대 입장을 대변하는 명예 남성이거나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는 '여적여' 프레임에 활용될 뿐이다. 앞으로의 우리가 눈여겨보고, 참고할 만한 일하는 여성의 롤모델을 어떻게 탄생시키느냐의 문제를 고려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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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다 체한 비규격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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