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신춘문예를 통해 느낀 '사소한 경험’의 힘
인생에서 처음 작가님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브런치가 아닌 B급 감성 마케팅으로 유명한 배달의민족의 ‘신춘문예’를 통해서였다.
배달의민족에서는 매년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라는 모토로 음식을 주제로 한 짧은 시들을 제출받고, 수상작을 선정한다.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박수칠 때 떠놔라. -회-”,
“우리 위장 부르게 부르게”
“한끼 두끼 세끼 네끼 볶음밥! 볶음밥!”
기발한 수상작을 마주할 때마다 ‘역시 한국인의 드립력이란!’이라는 감탄사만 연발하며 키득키득거렸지 단 한 번도 직접 참여할 생각은 못해봤었다.
이유는 승산 없는 게임에 덤비지 않으려는 ROI를 추구하는 성향이 한몫했던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져서 “오! 역시 창의적이라니까~”와 같은 종류의 말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또 스스로도 무언가를 창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게 신춘문예란 그저 멀리서 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같은 팀 동료였던 친구 한 명이 팀 단체 카톡방에 ‘신춘문예’ 링크를 공유했다. "도오전!"이라는 말과 함께. 여느 때와는 달리 무겁지 않은 접근에 별다른 계산 없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넛지..?)
떠오르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이리저리 조합해보며 가장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를 골라 제출했다. 그새 카톡 알림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팀원들 역시 서로 제출한 시를 단톡방에 공유하고 웃으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올린 시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어떤 팀원은 “오! 신박하다!”라는 의견을 준 반면 어떤 팀원은 뭔 말인지 이해하는데 한참을 걸렸다고 했다.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보며 ‘역시나 수상은 나와 거리가 멀겠다’라고 생각하며 채팅창을 닫았다.
한 달이 지나 업무 시간 중에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제출해주신 작품이 배달의 민족 신춘문예 대상 후보에 선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장난전화인가 싶어 몇 번을 되물었다. 그렇게 전화를 받은 후 며칠 새 홈페이지에서는 대상 레이스 온라인 투표가 시작됐다. 며칠간의 레이스 종료 후 아쉽게도 결과는 최우수상이었다. (그래도 치킨 30마리 쿠폰!!)
신춘문예 수상 후 회사에서는 한동안 ‘카피라이팅이면 코모레비님에게 맡겨야지!’라는 농담이 오고 갔다. 실제로 여러 교육과정의 타이틀과 공지문 속 문구들에 대해 함께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얼떨떨함도 잠시 평생을 담쌓고 살던 ‘창의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잠시나마 정리했던 생각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려고 생각하니 스티브 잡스가 남긴 ‘Connecting the dots’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배민 신춘문예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까지 나에게는 수많은 우연의 점들이 스쳐 지나갔다.
먼저 ‘미듐, 소망, 사랑’이라는 아이디어를 탄생시킨 배경에 관한 이야기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어머니가 어느 날 가져오신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문구가 담긴 큰 액자가 하나 걸려있었다. 기독교 집안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집안 한가운데 떡하니 걸려있던 이 액자는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미지 중 하나였다. 우연한 경험 한 조각이 아이디어의 단초였던 것이다.
둘째로 나는 신춘문예에 참석하기 전 운이 좋게도 회사 내 마케터들을 위한 카피라이팅 교육을 기획하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강사님이 계시길래 직접 강의력을 체크해보려는 요량으로 주말을 이용해 오프라인 교육에 참석했었다. 그때 주워 들었던 대중성, 간결함, 유머, 노래 가사나 명언 등의 패러디, 트렌드라는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퇴근길에 아이디어를 어설프게나마 떠올릴 수 있었다.
셋째로 항상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동료들이다. 회사 동료들은 평소 서로의 흥미로운 일상과 즐길거리들을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였다. 특히나 링크를 보내주던 친구는 항상 호기심이 넘치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링크를 보내주는 넛지를 하지 않았다면 그 해에도 역시나 신춘문예를 눈으로만 감상했을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을 정리해보니 창의성을 탄생시킨 비밀에 대한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창의성은 각을 잡고 진지하게 접근해야만 탄생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평소 경험했던 작은 사건들이 우연히 연결되며 탄생하는 것이었다. 출품했던 ‘미듐ㆍ소만ㆍ사랑’이라는 문구가 머릿 속에서 불현듯 떠오르기까지 아래와 같은 점들(Dots)이 있었다.
어렸을 적 봤던 액자 속 ‘믿음ㆍ소망ㆍ사랑’ 문구 (우연한 경험)
교육 기획을 위해 찾았던 카피라이팅 교육에서 만난 몇 가지 카피라이팅 법칙 (호기심/학습)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하던 동료의 넛지 (네트워킹)
별 계산없이 링크를 클릭하고, 즐겁게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순간 (가벼운 시도)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먹성..? (개인적인 취향)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던 일을 새롭게 바라보는 창의적 관점과 아이디어가 필수적이다. 허나 평소에 창의력을 발휘할 일이 그다지 없다 보니 우리는 변화의 영역을 찾고, 이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방법들을 떠올리는 것을 부담스럽고 어려워한다. 허나 작은 경험 속에서 느꼈던 창의성의 요소들처럼 창의성은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위대한 일은 아니었다.
창의성의 대가라고 불리는 인물들이 남겨둔 말에서도 창의성을 만드는 공통적인 속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신선하고 다채로운 경험의 양을 최대한 늘려가는 것 그리고 창의성이라는 우연을 만나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다.
에디슨 (1847 ~ 1931)
나는 성공하기 위해 실패한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파블로 피카소 (1881 ~ 1973)
예술가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볼테르 (1694 ~ 1778)
독창성은 단지 사려 깊은 모방이다.
혹시나 변화를 이끌고 싶은 마음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거나 꾸준히 창의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가 마음속에 있다면? 자신이 전문성을 높이고 싶은 분야, 주제와 관련된 점들을 최대한 많이 찍어보면 어떨까? 경험이라는 점들을 같은 페이지 위에 찍어둘 때 연결될 확률은 좀 더 높아지고, 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평면적 도형이 아닌 입체적 도형으로 탄생할 확률 역시 높아질 것이다.
스티브 잡스 (1955 ~ 2011 )
창조라는 것은 그냥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뭔가를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의력은 그들이 경험했던 것을 새로운 것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와이어드지 인터뷰,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