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쌤이 운영하는 홈베이킹 동아리

feat. 상상과 현실

by 시쓰는국어쌤
방송반 담당 시절

바야흐로, 3월 경

동아리를 개설하라는 쿨메신저 메세지가 온다.


어떤 동아리를 만들어야 하나?

이전에 주로 개설했던 동아리는 '시 창작' 동아리였다. 방송반도 담당해 보았지만 동아리라기보단 업무에 가까워서, 동아리의 성격은 좀 약했다.


시 창작 동아리는 시와 글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주로 신청했지만 원하는 동아리를 선택하지 못해 밀리고 밀려서 온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주로 엎드려 잠을 잤는데, 그게 시를 정말 쓰고 싶은 아이들의 사기를 흐렸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다같이 온전히 하나에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활동할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떤 동아리를 개설해야 모두가 집중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스쳐 지나간 하나.

'베이킹!'


미인가 대안학교에 있을때 원데이 클래스로 진행했던 홈베이킹!


한달에 두어번 정도 초코칩쿠키, 딸기타르트, 스노우볼쿠키, 에그타르트 등을 만들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비교적 느슨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지.


두세명의 학교 밖 아이들과 '요리'라는 작업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삶을 이야기하고, 고민도 나눠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선택했다. 이번에는 홈베이킹 동아리를 개설해 보는 것으로.


[시작 전]

급식실, 동료 선생님들과의 대화


"선생님은 어떤 동아리 개설하셨어요?"


"홈베이킹 동아리요."


"음... 힘드실텐데"


"괜찮아요. 시간도 잘 가고 아이들이랑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힘드실텐데..."


나도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해본 적이 있어서 힘듦의 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선생님들이 말씀한 '힘듦'과 내가 예전에 경험했던 '힘듦'이 다른 것이란걸 깨닫게 되었다.


일단,

동아리는 무조건 17명의 인원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중1, 2학년 아이들 합쳐 17명이 모집되었다.



[상상편 1]

마지막 시간에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 프레첼과 루돌프

나: 얘들아,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쿠키를 만들어 고마운 선생님들께 나눠 드리는 시간을 가질 거야.


아이들: 우와~


나: 자, 오늘의 재료 확인 하고, 조별로 소분해서 가져가 볼까?


아이들은 각 조의 재료를 저울에 정확히 재서 소분해 간다.


나: 잘 만들고 있네.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떠니? 힘든건 없고?


아이들: 요즘 공부가 힘들어요. 근데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 그렇구나, 어떤 과목이 제일 힘드니?


이런식으로 대화를 나누며 쿠키나 머핀 등 구움과자를 '함께'만드는 것.



[현실편 1]

나: 얘들아,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아이들: 웅성웅성, 야 내 가방 내놔~


나: 얘들아 집중해서 설명 들어보자.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아이들: 웅성웅성, 니가 먼저 그랬잖아~ 죽을래?


나: 건우야, 영서야 조용히해. 쌤이 설명을 할 수 없잖아.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쿠키를


아이들: 웅성웅성 웅성웅성


나: (분노게이지 50% 상승하면서 시작)


어찌어찌해서 재료 나누고 만들기 시작함.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질문 지옥이.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명대사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에요." 동아리 대부분의 아이들도 이 어조로 말한다.


"선생님~프레첼 모자라요~"

"선생님~ 이거 반죽이 안돼요"

"선생님~ 이거 흘러요"

"선생님~ 저 앞치마 끈 묶어 주세요."

"선생님~ 저 조 바꿔주세요"

"선생님~ 얘가 제꺼 뺏어 가요"

"선생님~ 이거 제 맘대로 만들어도 돼요?"


허둥지둥 만들고 나서 설거지를 시키니 스텐볼 하나 씻는데 퐁퐁을 절반을 사용한다.

비유적인 표현의 '절반'이 아니라 진짜로 퐁퐁 새것을 주었는데 다시 갖고 온 건 절반이었다.


설거지 팀이 하도 안 돌아와서 가 보니 화장실 전체를 거품으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거품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다.


이때 처음으로 나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흑화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1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마."

딱 1분만 내 바람대로 되었다.


그리고 청소 시간

반죽 및 재료로 엉망이 된 책상을

마른 행주로 슬쩍 닦고 청소를 다 했다는 아이.



[상상편 2]

나: 자, 이제 다들 잘 만들었지? 각자 두 분의 선생님께 전달해 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오렴.



[현실편 2]

"저희 담임쌤 자리가 어디예요?"

"다른 선생님 드리면 안 돼요?"

"그 선생님 안 계시면 어떻게 해요?"

"그냥 제가 먹으면 안 돼요?"

"쟤는 왜 한개 더 갖고 있어요?"

"제가 꼭 갖다 드려야 돼요?"


또다른 질문 지옥의 시작.


그리고...

작은 고사리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선생님들 자리에 놓은것들이 기특해서 바라보는데,

쿠키가 어떤 이유에선지 뒤집어 놓아져 있다.


'굳이..왜지?'


쎄한 마음에...앞으로 돌려 보았더니

갖고 오는 길에 한번 떨어뜨렸던 것인지 엉망진창 뭉개져 있었다.

내가 먼저 발견한게 다행이지..


얼른 치우고 내가 시범으로 만들어 놓았던 새 것으로 바꿔 놓았다...



[동아리 운영 중]

"선생님~ 동아리 운영은 잘 하고 계세요?"


"아, 네. 시간도 잘 가고 재미있어요."


동료 선생님의 질문에 '죽을 맛이에요. 살려 주세요.'라는 말이 목까지 나왔지만, 자존심 상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의 선택 -성급하고도 오만했던-의 짐을 끝까지 짊어지는 것은 나의 숙명이기에. 동아리 날이 다가올 때마다 다시 굴러 떨어져 내릴 커다란 공을 산 위로 굴리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마무리하며]

일단, 이 동아리를 운영하며 서번트 리더십이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좀 깨달았다. 그것을 실천하기에 나는 배워야될 것이 많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도.


17명의 아이들이 온전히 베이킹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 단 1초도 쉴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엠엔엠 쿠키와 르뱅 쿠키
스모어쿠키와 르뱅쿠키
초코파운드 케이크, 아이들 맛보기로 다른 틀에 구운 초코파운드케이크
서로 다른 틀에 구운 마들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다보니 아이들이 무척 활기찼고 자유롭게 떠들어댔다.


동아리를 진행해야 하니,

"설명해야 하니까 조용히 해."라는 말을 100번은 한것 같다.

나중에는 당이 떨어지고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Q.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미마운'기억이 있다.

방금 내가 만들어 낸 단어인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기억이다.


생크림 스콘을 만드는 날이었는데,

다 굽고나서 아이들 중 한 명이 '스콘이 짜다'라며 갖고 왔다.

내가 한번 먹어 보니,

'왓 더'


이건 사람이 먹을 만한 것이 아니라,

암살 무기로도 사용될 수도 있겠다.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났을 때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비상식량으로 두어달 동안 조금씩 섭취해도 되겠다.

아이들이 이걸 주말 동안 먹고 탈이 날까 걱정되어 단톡방에 절대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왜 그런지 되짚어 보니

세상에... 아이들에게 소금 양을 3g 넣으라고 알려줘야 하는데 30g이라고 잘못 알려준 것.


그럼에도..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치고

설거지하며 거품 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 누구도

'선생님, 이게 뭐예요. 못 먹겠잖아요.'

라고 하는 이가 없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주말 동안 나는 생크림 스콘과 마들렌을 열심히 만들어 월요일에 가져가서 음료와 함께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미안함을 전했다. 정말 오랜만에 홈베이커리 풀가동했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

'미안해..사실 제대로 만들면 이런 맛이야.. 입맛을 정화하렴...'

피스타치오 레몬 글레이즈드 마들렌 2종과 생크림 스콘. 미안, 원래 이런 맛이야...



Q. 또 운영할 건가요?

네, 니오.

모르겠다.

운영한다고 해도 17명은 너무 많은것 같다.

예산도 동아리 중에 내가 제일 많이 써서 다른 선생님들께 미안했다.

만약에 한다면 4-5명 정도, 진짜 장난 안치고 집중 안하는 아이들이면 가능?

모르겠다.


근데

매번 깔깔 웃던 너희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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