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폭력과 온기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들
교직에서 일하면서
이전에 선생님으로 만났던 이들에 관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기억은 과거이면서도 현재이기도 한
오묘한 무언가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파편같은 기억
어떤 것은 싹으로 틔워졌고
어떤 것은 흉터로 남기도 했다.
-순서는 무작위. (학년 순서X)
담임1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커다란 도장 뒷면으로 아이들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또, '거지 발 싸개'같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집에 가서 '엄마, 거지 발사대가 뭐야?'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담임2
일기 검사를 할 때면 아이를 교탁 옆에 세워두고 한장 한장 같이 읽으며, 재미 있으면 웃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꿀밤을 한대씩 때렸다.
보통은 울 때까지 때렸다.
부반장을 교탁 앞으로 불러내어
"반장 엄마는 운동회때 햄버거를 돌렸는데 너희 엄마는 왜 아무것도 안하냐."라며 혼을 냈다.
내 목에 부스럼이 난 걸 발견하고는 연고를 가져와서 발라 주었다.
담임3
같은 반 남자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말싸움 하던 도중 그 아이가 나에게 돌을 던졌다. 목표를 빗나간 그 돌은 내가 아닌 내 뒤에 있던 다른 아이가 맞아 크게 다쳤다. 우리 때는 일주일에 한번 불소를 입에 머금고 소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담임이 불소를 입에 넣어주었다. 불소를 입에 넣고는 나에게 '너 때문에 걔가 다친거다. 왜 그랬냐.'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물리적으로 해명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굳이 불소가 없어도 충분히 말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왜, 라는 생각이.
어떤 아이가 담임에게 산머루를 드셔 보시라고 가져왔는데 담임은 우리에게 보여주며 "얘는 이런것도 선생님한테 가져다 준다."라고 자랑하며 한알 한알 따 드셨다.
교과서에 '콩나물은 외국 음표인가보다.'라고 쓴 시를 칭찬해 주었다.
담임4
교실에서 매일 매일 담배를 피웠다.
아침에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집 가기 전에 한 번.
우리 반에서 대장처럼 군림하려던 남자 아이를 무지막지하게 때려서 코피가 멈출 줄 몰랐다.
담임5
가정 환경 조사 때,
'다들 눈 감고, 엄마 없는 애 손 들어봐. 아빠 없는 애 손 들어봐.'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실 눈을 뜨고 누가 손을 드는지 보고 있었다.
해마다 담임은 바뀌었지만, 교실에 흐르는 공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악 선생님
합창반을 운영하셨는데, 방과후나 주말에도 모여서 열심히 우리에게 합창을 알려 주셨다. 지금까지 봐왔던 선생님들과는 달리 너무 예뻤고, 말투도 부드러웠고, 착하셨다. 주말에 나가서 연습하는 것도 모두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힘들었을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실지.
1학년 때 국어 선생님
처음으로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었다.
쉬는 시간 밖에서 놀다 늦게 들어간 나에게
"넌 아까 양호실 갔다 온다고 했지? 얼른 자리에 가서 앉아라."라고 하셨다.
'아닌데...'
1년 내내 빚진 마음으로 국어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교사1
손목만 한 굵기의 길쭉하고 무거운 몽둥이를 들고 다녔다.
당시 교과서는 지문 위주로 되어 있었는데, 주로 한명에게 읽게 하고 불시에 다른 아이에게 읽게 했다. 지목당한 아이가 잘못 읽으면 무지막지하게 때렸는데, '사림'을 '사람'이라고 잘못 읽은 아이의 등판을 철썩, 철썩, 몽둥이로 휘감으며 내리치던 모습이 그 과목과 오랫동안 연동되었다..
음악 선생님
피아노를 좋아하던 나를 무대에 세워 주시고, 3년 내내 피아노 독주의 기회를 주셨다. 피아노와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음악 선생님 덕분에 내적인 자존감이 정립될 수 있었던 것 같다.
2학년 때 공부를 하겠다고 오케스트라 말고 영어회화 반에 들어갔는데, 선생님이 영어회화 반 수업 첫날 교실 앞에 와서 나를 째려보고 가셨다. 3학년 때 다시 오케스트라 반에 들어갔다.
담임1
자주 지각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날 아침도 어김 없이 늦게 교실에 들어왔는데, 담임은 빽 소리를 치더니 한바탕 욕을 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 아이의 가방을 거칠게 확 낚아 채어 지퍼를 열고, 바닥을 향해 뒤집어 모두 쏟아냈다. 투명한 봉지에 싸인 빵이 나오자 이딴거 챙겨 올 정신은 있냐며 발로 빵을 마구 밟아댔다. 빵은 뭉개지다 못해 으깨지고 신발 바닥이 바닥을 퍽퍽 찍는 소리만이 고요한 교실을 가득 채웠다.
나중에 그 아이 엄마가 학교에 한 번 왔다 간 이후로 담임은 그 아이에게 매우 부드럽게 대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시절이 시작됐다.
1학기때 담임 선생님이 아기를 낳게 되어
2학기 담임으로 수학 선생님이 오셨다.
뚱한 무표정에 '수학'이라는 어려운 과목.
심리적 거리는 멀게만 느껴졌다.
일화1.
반 아이가 선생님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 안타까워 괜찮으신지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은 '그래, 내일 보자'라고 짧게 답장하셨다.
일화2.
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선생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선생님은 '남편이 나 학생한테 전화왔다고 자기가 더 좋아했다.'라는 말을 반 전체에 전하며 웃으셨다.
일화3.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주신 수학 문제 프린트물을 풀었는데 내가 지금껏 받았던 점수 중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아 봤다. '나도 하면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밤낮 없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가 수직상승했다.
일화4.
선생님과 나란히 낡은 나무 벤치에
나는 좀 어색하게 반쯤 걸터 앉아 짧은 상담을 했다.
'영어 성적이 왜 이러니?'
'아, 이거 40점 만점이라서 그래요.'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더 잘 봤는데?'
'네..'
'그래, 앞으로 좀더 노력해 봐.'
'네..'
'혹시 다른 힘든 일은 없니?'
'네, 없어요.'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꼭 말 해야 돼.'
그때의 고요한 분위기가 오래 맴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던 공기, 좀 지친 듯한 표정과 땀에 거의 지워지고 있던 눈 화장, 걱정 어린 눈빛.
낡은 햇살이 그보다 낡은 상자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선생님이 졸업하셨다는 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며
좀 더 오래 선생님을 기억했다.
낡은 벤치를 둘러싸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공기는 힘든 일이 있으면 꼭 말하라던 문장을 여전히 머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