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설 Sep 24. 2023

소통의 예술,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장이, 영화가 사라질 수 있을까? OTT 시장이 코로나 특수와 맞물려 호황을 이루자 여기저기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구조적인 문제와 위기가 대두되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 고찰을 SNS로 내놓았다. ‘극장이 곧 사라질 것이다’, ‘OTT가 있는데 굳이···?’. ‘그렇지만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망하지는 않겠지’,’운영 서비스와 가격이 부담된다’ 등의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그들의 의견은 몇 가지를 빼고는 공감하는 바이다. OTT 서비스는 문화 홍보에는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영화 산업의 파이를 효과적으로 넓히긴 어렵다. 중앙일보에 실린 인터뷰 중 “OTT에 ‘납품’하는 것일 뿐 산업 기반을 키우는 건 아니니까요. 영화 산업을 키우려면 결국 영화관이 살아나야만 합니다.”를 보자. 한국영화관산업협회 김진선 협회장과의 인터뷰다. OTT가 있다고 해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극장과 영화제를 찾았다. 많은 영화들을 봤지만, 이 글에서는 JIFF 온라인 상영작이었던 <썸머 필름을 타고!>를 다뤄보려 한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시대극 ‘오타쿠’ 맨발과 친구 킥보드, 블루하와이 그리고 미스터리 소년 린타로의 좌충우돌 영화제작기가 담긴 영화이다. 고교 마지막 여름, 맨발의 사무라이 영화는 라이벌 카린의 로맨틱 코미디를 제치고 상영될 수 있을까? 시대극 오타쿠 맨발과 미스터리 소년 린타로는 사무라이 영화를 상영하는 낡고 오래된 영화관에서 처음 만난다. 매번 혼자서 영화를 보던 맨발의 눈이 린타로를 발견하자 반짝 빛났다. 마치 사무라이 영화를 볼 때의 그 눈빛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된 낡은 영화관···, 더 이상 대중이 찾지 않는 사무라이 영화를 감상하는 청소년의 조합은 어딘지 모르게 신선하다.





  정말 100년 뒤, 1000년 뒤 내가 사랑한 영화가, 영화관이 사라질까? 그 질문에 미스터리 소년, 아니 미래에서 온 소년 린타로가 말한다. 자신의 미래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바빠서 5초 이상의 영화를 소비하지 않고, 1분만 되어도 긴 영상이라고 평가 받는다. 영화관도 없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게 그 이유라고 했다. 영화가 사라진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그것이 마치 디스토피아(Dystopia: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어두운 미래상)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미래는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도 빨리 감기로 영화를 보다 못해 유튜브로 편집된 요약본, 숏폼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착각은 짧은 시간 안에 스토리와 감상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영상을 보는 목적이 ‘소비’라면 10초를 건너뛰든 빨리 감기로 보든 상관없다. 이는 패스트 푸드를 기계적으로 빠르게 먹거나, 씹지 않고 삼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칼로리 섭취가 목적이지, 식사 그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콘텐츠를 ‘섭취한다’는 것도 적절한 표현이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저, 이나다 도요시)에서 발췌』




   영화는 말로써 설명하는 게 아닌 표현으로 감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영화 감상은 결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관객은 시종일관 스크린과 씨름한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 가치관을 대입하며 감상한다. 그렇기에 백 명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느끼는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요리와 같다. 하지만 요약본은? 편집자의 생각을 거쳐 만들어진다. 요약본을 본다는 것은 결코 영화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말할 수 없다. 편집자의 생각을 답습하는 것에 가깝다.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한다. 이 순간 영화의 본질, 창작자가 전달하는 메시지조차 흐려진다. 패스트푸드는 먹는 그 순간에는 즐겁지만 몸에는 백해무익하다. 거기다 OTT는 접근성이 좋은 만큼 우리의 집중력을 흐트리는 요소가 도처에 널려있다. 반대로 영화관은 그런 요소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온전히 영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맨발과 린타로, 스크린 밖의 나 사이에는 연결고리, 그러니까 공통점이 있다. 영화를 좋아한다. 시간과 금전적인 비용을 들여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영화는 말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나도 내 영화를 통해 미래로 연결하고 싶어”라고 맨발은 말한다. 그들이 영화를 완성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린타로의 미래로 연결된다. 여전히 영화가 존재하는 미래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이 소녀의 순수한 애정이 견딜 수 없게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것에 진심인 사람은 반짝반짝거린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 에너지에 스크린 밖의 나도 주먹을 꽉 쥐고 응원하게 됐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진 힘이 친구와 린타로, 그리고 나에게도 전해졌다.





  맨발은 “영화라는 건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잖아.”라고 말했다. 단어 없이 표현하는 것, 10대 소녀의 영화 철학이 꽤 무겁고 단단했다. 맞아 영화는 설명하는 게 아니야. 보여주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타인의 세계를 보여주고 나와 연결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사람은 하나의 사람을 의미하고 인간은 사람 인(人), 사이 간(間)이라는 한자를 쓴다.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다.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든 있을 거야. 인간의 인력(引力)은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질 테지. 그 믿음과 마음을 상영하는 영화관은 100년 뒤에도, 1000년 뒤에도 빛을 잃지 않을 테다. 종말하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식물의 언어는 참 신기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