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기사에서 마케터로

by 오디잼

나는 원래 토목기사였다. 도면을 보고, 구조를 계산하고, 현장에서 공정을 관리하던 사람. 콘크리트 강도와 철근 배근 간격을 따지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금은 브랜드를 고민하고, 문장을 다듬고, 사람의 반응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완전히 단절된 선택은 아니었다.


토목은 눈에 보이는 구조를 다룬다. 기초를 세우고, 하중을 계산하고, 무너질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다. 마케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를 다룬다. 사람의 감정이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어떤 메시지가 오래 남는지, 브랜드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고민한다. 대상은 달라졌지만, ‘구조를 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토목 현장은 솔직하다. 계산이 틀리면 균열이 생긴다. 설계가 약하면 문제가 드러난다. 마케팅도 비슷하다. 브랜드의 기초가 약하면 메시지는 오래 가지 못한다. 화려하게 보이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토목에서 배운 건 결국 이 부분이었다. 겉이 아니라 기초를 보라는 것.


마케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왜 굳이 안정적인 길을 벗어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자격증도 있고, 이미 쌓은 경력도 있었으니까. 나 역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구조물보다 사람의 선택과 반응이 더 궁금해졌다. 완공 사진보다,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표정이 더 인상에 남았다.


마케팅은 토목과 다르게 정답이 명확하지 않다. 공식도, 안전계수도 없다. 같은 전략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 처음에는 이 불확실함이 부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실험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고,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요즘 나는 BTL 마케터를 지향하고 있다. 공간을 활용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일. 동선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사람들이 어디에서 멈추는지, 무엇을 보고 기억하는지를 고민한다. 토목이 물리적 동선을 설계하는 일이라면, BTL은 감정의 동선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나는 길을 버린 게 아니라, 확장한 것에 가깝다. 토목기사였던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기초가 됐다. 덕분에 나는 브랜드를 볼 때도 화려함보다 구조를 먼저 본다. 무엇을 기반으로 서 있는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내가 보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구조를 보고, 기초를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콘크리트 대신 사람과 브랜드를 다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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