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캉쓰 Dec 24. 2022

국숫집 팀워크

팀워크란 이런 것이다

퇴근길에 남편이 마중 나왔다. 저녁 시간이라 배도 출출했던 터라 근처 국숫집에 들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옛날식 김밥과 국수 맛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좁은 가게는 식사 중인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밖에는 대기줄이 있었다. 어느 정도 기다리자 우리에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카운터에 면한 자리에 앉았다. 국수와 김밥을 주문했다.


주방을 포함해서 5평 정도의 작은 가게다. 총 네 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었다. 홀을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 주방에서 재료를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 카운터에서 국수를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 마찬가지로 카운터에서 김밥을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이었다.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일을 하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은 덕분에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홀 담당자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일 처리는 정확했지만 중간중간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멈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카운터에 있는 국수 담당자가 지시를 내렸다. 그런 모습이 몇 번 반복되는 동안 새로운 사실을 눈치챘다. 바로 이들의 놀라운 팀워크였다.


국수 담당자가 리더로 보였다. 그 옆에 있는 김밥 담당자는 서브리더였다. 그들은 빠르게 음식을 만드는 와중에도 홀과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손님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무엇을 주문했는지, 음식이 얼마 만에 나가는지, 어느 테이블을 치우고 누구를 안내할지, 곧 계산할 사람이 누구인지, 부족해서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할 식재료가 무엇인지 꿰뚫고 있었다. 홀 담당자가 머뭇거릴 때마다 리더는 정확하고 빠르게, 그렇지만 친절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주방 담당자가 서둘러서 면을 삶아서 가져오자 찬물에 빠르게 헹구며 애호박을 볶으라고 했다.


놀라운 광경에 눈 뜬 나는 이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졌다. “이 분들 일을 엄청 잘해.” 나직이 남편에게 속삭였다.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리더의 통솔 아래 꽉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낭비 없이 움직이는 네 사람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했으나 다소 놀라워했을 뿐 그들의 우수함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것을 알아보려면 비슷한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은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경기는 단연 여자 배구가 아니었을까. 4강까지 진출한 성과도 대단하지만 경기 중 단합이 눈에 띄었다. 김연경 선수는 “해보자, 해보자, 후회 없이” 끊임없이 팀을 독려하며 이끌었다. 과감한 서브로 화제가 된 박은진 선수는 “연경 언니가 자신 있게 서브를 때리라고 해서 때렸다”라고 말하며 주장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들 팀의 경기는 스포츠가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의 정석이었다.


내가 국숫집에서 본 것도 이런 모습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리더가 팀원을 독려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팀원들은 리더를 온전히 신뢰하고 따른다. 그 국숫집은 하나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혼자만 알아보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여기가 운동장이었다면, 사무실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감정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그것을 멋지게 해낼 뿐이다. 누가 지켜보건 아니건 말이다.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서 “정말 멋있는 국숫집이었어”하고 밖으로 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비, 여름의 감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