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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수연구소 May 01. 2017

5년 그 후

임기가 5년이라는 것은, 시작해서 결과를 볼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맘때면, 그냥 넘어가기 아쉬어서 이번에도 제사를 지낸다.


첫 퇴사 후 5년 정도 지나고 나니 퇴직이나 창업, 프리랜서, 이모작 뭐 이런 종목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의미가 없어보이고, 실제로 몇 점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5년. 10년의 반. 100년을 산다면 인생 전체의 5%의 시간. 유년기, 학생을 지나 가장 왕성한 경제 활동을 하는 시기가 인 30~40대의 20년이라고 하면 25%에 해당하는 시간. 정말로, 적지 않은 이 기간에 갑자기 떠오르는 질문은 :


1. 뭘 하려고 했지?

2. 뭘 했지?

3. 뭘 할거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하고 싶어진다. 


1. 뭘 하려고 했지?

5년전 오늘 뭘 하려고 했던가? 사실, 딱히 정한 것은 없었다. 자분자분한 먹고 살 꺼리들을 고민해 봤지만, 딱히 그것을 꼭 해야지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름 계획대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아쉬운 것은, 탄천을 뛰려고 했던 기억은 난다. 먹고 살 계획은 없었지만, 꼭 책을 더 읽고, 달리기를 더 하고, 아코디언을 좀 더 잘 연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모두가 꽝이구나. 오히려 책도 더 조금 읽고, 운동도 더 못한다 안한다. 아코디언은 썩은지 오래다. 


2. 뭘 했지?

생각이 많았다. 이것 저것 많이 했다. 이것저것 안해야할 것을 고르느라 신중했다. 그러면서도 그때 그때 가장 맞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했다. 선택의 기준에는 특별한 목적이나 산술적 비교보다는 그냥 '기분'이 기준이 되었다. 알바에서부터 스타트업, 지금은 중소기업을 다닌다. 사실, 이런 업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컨텐츠가 더욱 중요했었다. 운 좋게도 첫 직장인 대기업에서도 다양한 일을 했지만, 근 5년도 정말 다양한 스탯을 찍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개발 기술부터, 투자/합병, 형사/민사 소송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계획없이 이것 저것 한다지만, 참으로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었다. 물론 겉할기 수준이지만, 종류로만 따지만 이보다 다채로울 순 없을 것이다.  단지, 이런 것들을 어디에 써먹을 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3. 뭘 하지?

어쩌면 똑같다. 책을 많이 읽고, 달리기를 많이 하고, 아코디언을 좀 더 잘 연주 했으면 좋겠다. 거기에 좀 맛있는걸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즉, 5년 뒤에 이런 글을 다시 쓸 때는 책도 많이 읽었고, 달리기도 많이 했고, 아코디언을 더 잘 연주하고, 이것 저것 맛있는 것들이 내 피와 살이 되었다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무언가를 안정적으로 이루거나, 큰 목표를 달성하거나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당연히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로 5년이면 뭘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저 한 구석에 있기도 하다. 가끔 부모님께서는 '하려던 일은 잘 되고 있냐?'고 물어보시기도 하고, 친척들은 뭐 대단한 거라도 한방 터트리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거기에 기어다니던 아들 둘은 점점 커가고, 내 몸은 점점 쪼그라 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냥 이렇게 쿨내나게 있어 보이는 척 마무리 하는 것은, 그래도 이제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 혹은 비장한 각오, 어쩌면 절실한 바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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