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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수연구소 May 15. 2016

퇴사 후 4년

사실, 다들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별거 없습니다. 

꼭 이맘 때면 뭔가를 정리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괜히 1년을 회고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모습을 티내기 위해 와이프에게 말을 건다.


"첫 직장 퇴사한지 4년이나 됐네, 밥이라도 먹으러 나갈까?"

"무슨 제사 지내? 그런걸 다 기념하고 그래?"


와이프는 항상 현명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의식은 일종의 제사였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니, 추억을 보여준다고 하며 2015년, 2014년, 2013년 .... 의 오늘에 올린 글을 보여준다. 제사 때 읽는 축문 같은 글들이 줄줄이 보인다. (아이 부끄러워)

직장을 다니다 그만 두는 것이 제사를 지낼 만큼 특별한 일이 아닐텐데, 뭔가 괜히 뒤돌아보며 이런 축문을 올렸던 이유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뭔가 최면이 필요했나보다.


사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난 직장 동료들이 찾아와 앞으로 뭘 하는게 좋을 거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나가면 어떠냐고 소감을 물어보기도 한다. 아는 후배는 이런 내용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사직권고를 받고 바로 육아휴직으로 다음 직장을 준비하거나, 그 기간에 세컨잡을 준비하여 리스크를 최소화 하려는 분도 있고,

나보다 몇 년 먼저 퇴사해 자기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는 "왜 아직도 그렇게 남의 일을 해주며 사냐?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해야지~" 하며 혼내기도 하고,

몇 번의 창업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지인은 "우리는 누구든 돈을 주면 일을 해하지.." 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평생을 백수와 알바로 연명하신 하백수 선생은 "허허, 뭘 그런걸 고민하시나" 라고 여전히 입신의 경지에서 내려다 보고 계시고, 

같은 전산과 동기들 카톡방은 언제나 "우린 짤리면 뭘 해서 먹고 사나? 이 사업은 어때? 저 사업은 어때? 네가 먼저 해봐, 내가 돈은 좀 보태줄께 먼저 자리잡으면 합류할께.." 하는 대화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주 드물지만 대기업 다니는 친구 중에서도 "난 이 안에서 이뤄낼꺼야.." 라며 다니는 친구도 있다.


어쩌면 "먹고 사는 문제"라는 가장 크리티칼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고민과 불안은 어쩔 수 없겠지만, 솔직히 한 달중에 이런 고민이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몇 일 안될지도 모른다. 대부분 지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다. 아마, 이런 고민의 횟수가 올라간다면 알아서들 또 다른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들이 찾아오면 부담없이 웃으면서 이야기 해줄 수 있고, 커피나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들은 절대 안망하고 어떻게든 모두 각자의 답을 찾을테니까.


한가지 팁이라면, 이런 논의를 하거나 고민을 할 때 고생스럽게 하지말고, 방학을 한 두주 앞 둔 학생처럼 신나게 '방학계획' 세우 듯이 하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간에 새로운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은 나름 즐겁고 재미난일 아닌가? 가끔 "뭘해서 먹고 살지.." 고민에 사로잡혀 잠도 잘 못자는 친구들도 있어보이는데, "뭘해서 먹고 살까?" 라고 아주 밝고 명랑한 질문을 어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노트북에 커피한잔 시켜놓고 폼잡으며 해보시라.


꼰대같은 이야기를 안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그럴 수록 이런 "가르침을 주려는" 모습이 커지는 것을 보니 애초에 말을 줄여야겠다. 순리는 거스를 수 없나보다.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지난 8년보다 훨씬 다채로운 경험의 4년을 살긴 했고, 하지만 또 그렇게 특별한 것도 없고, 여전히 정규직으로 급여를 받으며 연말정산을 하며 살고 있고, 

이번에 올려줘야 할 전세값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교간 첫 째의 육아를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중이고, 

점점 결리는 곳과 찌뿌등한 날이 많아지며 더욱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고,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2분거리의 바로 앞 슈퍼에서 아무때나 사먹을 수 있는 풍요를 느끼며 잠들기전 묵직한 두 아들에 깔려서 '아마 인생에서 지금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시절'은 없지 않을까 하며 잠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까지의 기록은 www.2mozak.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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