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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우인장 / 애니메이션 - 리뷰

가슴 먹먹하게 하는 소년과 소녀, 늘 이별해야만 하는 자들의 이야기

by 오달피

https://music.youtube.com/watch?v=FtUTrX4VSgc&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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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작품에 관하여


<거대한 슬픔이 행복에 이르기까지>

내가 남들과는 다른데, 그게 잘나서 만들어진 차이라면 너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은 슬픔이다. 남들과 차이를 만드는 내 다름이 아픔과 상처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슬픔의 크기는 얼마나 거대할까. 이 애니메이션은 앞서 말한 거대한 슬픔을 안고 사는 소년 나츠메에게 일어나는 일상물이다.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상 속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오지만, 그의 일상은 일반인은 볼 수 없는 요괴들과 함께 이뤄지기에 ‘완벽한 보통의 일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작은 부조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적재적소의 유머와 위트를 통해 나를 피식거리게 만들었지만, 상단 링크에 있는 OST ‘네가 부르는 이름’의 피아노 선율이 나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그 슬픔에 동참하여 마음 아파해야만 했다.

나츠메는 빠르게 고아가 됐다. 집을 떠나 키워줄 어른들을 찾아 떠도는 삶을 살았다. 여기에서 그가 또래들과 다른 첫 번째 차이가 생겨난다. 게다가 그는 요괴를 볼 수 있기까지 하고, 이것은 두 번째 큰 차이가 된다. 이 커다란 차이점 두 가지는 나츠메를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서의 ‘어느 곳’이란, 물리적으로 거처할 공간과, 마음 기댈 정신적인 안식처 모두를 뜻한다.) 나와 나츠메는 처지가 같지 않다. 그런 그에게 나는 왜 그토록 내 모습을 투영시키며 몰입했을까. 어쩌면 슬픔은, 생겨난 이유와 상관없이, 슬픔 속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나츠메와 같이 ‘슬퍼하는 사람’인 나는 그를 가벼이 볼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 나츠메는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몸도 마음도 발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이다. 남들과 다른 자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함을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신이 머잖아 떠나게 된다는 것을 나츠메는 이미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다. 반복된 경험으로 인한 합리적 예견일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지점에서 나츠메가 취하는 태도이다. 나는 나츠메가 ‘체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그게 나를 몹시 슬프게 했다. 슬픔과 불행으로 가득한데 살아내야 하는 인생. 상황이 바뀔 리 없고 자신의 삶은 여태까지 살아온 모습이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 이런 마음으로 삶을 체념한 채 살아가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픈가. 그러나 우인장과 ‘냥코 센세(야옹 선생, 마다라)’가 나타나면서 그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정 붙일 데 없이 쓸쓸히 떠돌던 나츠메는 마음 붙일 곳을 찾아가면서 인간 세상에서도, 요괴 세상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구원 서사’를 가진 ‘어느 소년의 성장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어떤 이유로 ‘힐링물’로 분류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를 알 수 있다. ‘나츠메 우인장’은 주인공 나츠메의 슬픔을 단순히 비추는 것에 끝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행복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대한 슬픔을 가진 주인공이 구원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정화를 느끼게 된다. ‘힐링’이다.

물론 나츠메의 구원은 완성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거대한 슬픔의 그림자가 있다. 하지만 끝내 그 구원은 완성될 것이고, 나츠메는 행복에 다다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안심하고 그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모든 것들을 떠나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레이코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레이코는 ‘실제로 그 세상에’ 남아있지는 않다. 이미 죽고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대상으로 마음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녀 역시 끝내는 구원이었기를>

그렇게 나츠메 이전에 레이코가 있었고, 그녀는 결국 구원받지 못했다. 죽음으로 생을 마쳤기에 우리는 ‘결국’이라는 표현으로 그녀의 삶을 단정 지을 수 있다. 죽음은 이토록 강력하다. 죽음만큼 그 존재가 분명한 것은 없다. 죽음은 손 닿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중단시키고, 끊어내고, 분리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절대로 복구할 수 없는 어떤 단절과 균열을 죽은 이와 남은 이의 사이에 만들어낸다. 남은 이가 되어 본 사람들은 안다. 그 깊은 골짜기와도 같은 균열을 넘어서기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불가능 앞에서 사람은 무력감에 무너지고, 뒤이어 어떤 끝 모를 그리움을 마음에 품게 된다. 나는 이것을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부재의 정서' 정도로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정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말하고 싶다. 이 정서는 ‘살아있는’ 나츠메와 ‘죽고 없는’ 레이코가 자연스레 대비되면서 둘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더욱 커지게 된다.

할머니인 레이코와 손자인 나츠메를 이어주는 것은 둘 모두가 ‘요괴를 볼 수 있었던 외로운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레이코는 과거의 사람이기에 ‘였다’는 과거형을, 나츠메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있기에 ‘였다’의 과거형을 붙였다. 동일한 과거형의 표현이지만 명백히 다르다. 레이코는 끝까지 외로웠고 나츠메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츠메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레이코에 대한 파편과도 같은 기억의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더욱 레이코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 진다. 서서히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츠메는 그럴 수 없었던 할머니 레이코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아닐까. 6기에 이르는 긴 시간을 흘러 지나왔지만 아직도 레이코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를 알기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츠메는 레이코에 대한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나츠메가 걸어갈 또 하나의 긴 여정이다. 그 여정이 끝나기 전에 레이코가 평생을 외로워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앞으로의 내가 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어떤 작은 에피소드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참으로 반갑고 기쁠 것이다. 어쩌면 눈시울을 조금 붉히면서.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부재의 정서>

잠시 벗어나 앞서 말했던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부재의 정서’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면, 이러한 설정은 일본 문화 콘텐츠들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나는 영화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츠키는 죽은 이츠키가 좋아하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태껏 영화의 러닝타임을 채워왔었던, 말없이 과묵했던 이츠키와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결국 그의 짝사랑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관객과 이츠키는 어떤 뭉클한 감정에 빠져든다. 깊은 안타까움이다. 당장이라도 그를 찾아가고 싶다. 이야기하고 싶다. 만나고 싶다. 만지고 싶다. 바라보고 싶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고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나의 마음과 현실 사이에서 더 큰 그리움과 슬픔을 나는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이츠키의 눈물은 그러한 정서가 반영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또 이것은 안개와도 같은 슬픔이다. 폭발하듯 나를 삼켜버리는 격렬한 슬픔과는 다르다. 나의 맑은 정신 뒤로 안개처럼 짙어지던 슬픔은 결국 나를 완전히 감싸고 만다. 나는 이러한 정서를 감상하는 작품들 속에서 만날 때마다 너무도 또렷한 정신 속으로 밀려드는 은은한 슬픔에 마음을 잠식당해 어찌할 줄 모르곤 했다.


<떠나보내기만 해야 하는 자들의 슬픔>

그리고 요괴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중급, 염소수염, 히노에, 미스즈, 냥코 센세(마다라), 히이라기. 머리에 떠오른 요괴의 이름을 가볍게 적어 봐도 나는 이렇게 많은 요괴들의 이름을 댈 수 있다. 그들은 ‘나츠메’, 그리고 나츠메 주위의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지낸다.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어울려 정을 나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간의 삶이란 너무 짧다. 누군가는 키워온 반려동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달프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여행의 이유, 김영하)

함께 마음을 섞고 정을 나누지만 그 존재는 너무도 빨리 사라지고 만다. 인간에게 고양이와 개의 수명이 짧듯, 그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삶을 사는 요괴들에게 인간의 수명이란 마치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시간과도 같이 찰나의 순간일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덧없음과 상실감, 그리고 허무한 마음을 요괴들은 잘 알고 있다. 냥코 센세는 나츠메에게 종종 '곧 죽어 없어질 인간'의 뉘앙스를 담은 핀잔을 준다. 그것은 자신과 현재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고 있지만 머잖아 죽어 없어져 자신의 곁을 떠나버릴, 사랑하는 나츠메에 대한 애정 어린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비단 냥코 센세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시오코시와 수상한 방문자'편에서 미스즈는 나츠메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나는 도중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그립군요, 작디작은 아이와 이렇게 본 달도 언젠가는 그리운 일이 되겠죠." 그러고는 이어서 말한다. "분명, 순식간이겠지." 미스즈는, 지금의 순간은 잠시이고, 나의 주인 나츠메는 곧 죽어 사라질 것이며, 그렇기에 나는 그와 이별을 해야 하며, 이후 죽어 사라진 그를 그리워하게 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즐거움은 잠시이고 그리움은 평생이다. 홀로 불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의 운명은 저주스럽다. 항상 떠나보내고 그리워해야만 하는 삶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슬프다.

그러나 다음 텍스트가 그들에게 조금의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같은 책, 김영하) 먼저 떠나간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여행을 하고 떠난 것이다. 환대를 주고 신뢰를 받았다는 것에서 요괴들이 느낄 그 끝없는 그리움이 조금은 달래어 지기를 바라본다.



Part 2. 나의 이야기


<슬픔을 경험해본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슬픔>

‘나츠메 우인장’을 지배하는 정서는 슬픔이다. 그 거대한 슬픔 속에는 이별, 고독, 쓸쓸함, 외로움 등의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것들을 나 홀로 견디며 살아온 어느 안타까운 소년과 그에게 손을 내밀어 양지로 이끌어주는 인간과 요괴가 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냥코 센세의 등장에서부터였다.

첫 화에서 냥코 센세가 처음으로 등장하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시즌6까지 다 보고 난 지금에는 떠올리니 울컥하게 된다. 그 ‘등장’이 앞으로 나츠메의 세상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키게 될지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기대 없이 삶을 체념하고 살고 있던 나츠메에게 냥코 센세의 등장은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그가 나타나고 시즌6에 이르는 긴 시간에 걸쳐 나츠메가 조금씩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나는 안도했고, 동시에 레이코 생각이 나 안타까웠다. 끝끝내 음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 사라졌을(것이라 예상되는) 레이코는 나츠메와 함께 떠올릴 때 (같은 배경을 지닌) 동질감과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는) 이질감을 동시에 자아내는 존재이다.

나츠메의 슬픔은 ‘상실’과 ‘다름(차이)’에서 만들어진다. 비슷한 슬픔을 경험 속에 간직한 사람은 깊은 공감과 진한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공감은 같은 슬픔을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반대로 나의 감동은 내가 잘하지 못했던 행동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나와 반대되는 나츠메의) 모습을 보고 느꼈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뿌리를 내리는 모습. 나는 그게 참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 행동이 저렇게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살면서 참 많이도 듣는, 그래서 이제는 어떤 지긋지긋함과 피곤함마저 느끼게 하는 이 문장에서 나는, '사회적이다'라는 말이 '비슷하고 공통점을 갖고 있다.'라는 말로 들리고, 더 나아가 '그렇지 못하다면 함께 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사회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까. 아마도 첫 시작은 ‘질병’이었던 것 같다. 나를 관행적 행로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 생각하게 하며 계속해서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도망쳐 멀어지게 만들었던 삶. 이윽고 끊임없이 내가 남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상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가게끔 나를 프로그래밍했던 것.

2008년, 21살의 나는 녹내장 수술을 무사히 잘 마쳤으나 ‘안압 미세 조절’을 위해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 생 눈을 의료용 실로 꿰매었다 풀었다 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당시의 어린 내가 혼자 감당하기엔 참 힘든 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고시원 방에 돌아와 혼자 누워 불을 끈 채 하염없이 음악만 듣곤 했다. 천장은 어두웠다. 밖은 아직 밝았다. 친구들은 새내기 후배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고, 나는 마취가 풀려 욱신거리는 눈을 견디며 얼른 잠이 들기만을 빌었다. 나의 세상과 그들의 세상은 달랐다. 세상이 분절된 느낌이 들었다.

우연히 발견해서 천만다행이라던 이 병인데, 지금 내가 체험하고 있는 순간들이 정말 천만다행의 행운을 거머쥔 사람의 것이 맞는지 나는 늘 스스로에게 되물어야만 했다. 내 상황에 대한 나와 남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나에게 “정말 다행이다. 잘됐다.”, 때로는 “축하한다.”라는 말을 연신 건넸다. 극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또 그만큼의 고통과 외로움도 함께 느꼈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언젠가 실명했을 내가 우연히 그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잘된 일이고 축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빠져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없이 자꾸만 내 감정 속으로 파고들어 갔었다. 안타깝다.)

군대의 괴로움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절대다수가 경험하는 보편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고통은 그러지 못한다. 군대만큼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조금의 힘이라도 되길 바라면서) 나에게 위로의 한 마디씩을 건네주었고, 공감 없는 단순한(그렇다고 당시의 내가 느꼈던) 위로는 나에게 그 어떤 마음의 울림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진심이 진심으로 와닿지 않는 순간에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이것 역시 굉장히 자기감정 중심(우선)적인 사고이다. 걱정 어린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나는 이때부터 갖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말해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나의 고통. 15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리 그 고통이나 경험이 보편적이라 해도, 나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때에는 좀 더 낭만적인(그리고 유치한) 사고를 갖고 있었던 탓에,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또 그것을 사랑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환상 가득한 (사랑의) 대상이 실제로 있을 리 없었고, 당연히 그런 사람을 찾지도 만나지도 못했던 나는 ‘공감받을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사람의 외로움을 꼭 껴안고, 그렇게 한 학기를 버텼다.(혼자서 왜 그리 힘들어했는지, 주위에 좀 기대도 됐을 텐데. 안타깝다.) 그 뒤 신체검사에서 5급이 나와 군 면제를 받았고, 휴학을 했다. (저 감정에서 벗어나 이제는 해방된 내가, 그때 당시의 감정을 지닌 나의 모습을 글로 써서 지켜보고 있으니, 굉장히 안타깝고 또 불쌍하다. 저렇게까지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많은 안타까움이 든다)

녹내장 발견 후 괴로웠던 6개월 끝에, 나는 군대를 가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더러 "6개월 고생하고 2년 군대 안 갔다."며, 나를 '신의 아들'이라며, 부러움에 칭송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고생의 유통기한은 6개월이 아니라 평생이었음을.(친구들은 내가 아직도 안압 관리를 하며 살고 있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곤 한다.) 이 질병은 나를 평생 따라다닐 것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에(심장에 매우 가까운 곳에) 고이 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언제 터져 나를 해칠지 모른다. 이런 생각에 나는 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다. 이 마음은 잊을만하면 다시 날 찾아와 주기적으로 괴롭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주기는 살면서 조금씩 길어졌다. ‘자주’ 힘들었던 게 점차 ‘가끔’ 힘들어져갔다. 이유야 여러 가지일 것이다. 15년이 지나 익숙해진 덕도 있을 것이고, 내가 나이를 먹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이때의 나를 떠올리며 글도 쓸 수가 있다. 참 많이 좋아졌다. 아마,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샛길에서 표류하는 삶의 반복>

그 시절 나는 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다. 우선 21살로 너무 어렸고, 지나치게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다. 그런 내가 ‘내가 선택해서 나온 결과도 아닌’ 이 힘든 상황을 온전히 내 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면 힘들어도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운명처럼 다가온 녹내장은 ‘관행적인 삶의 행로’(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위에서 착실하게 걸어가던 나를 샛길로 밀어냈다. 샛길로 밀려난 나는 너무 무서웠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끝없이 마음에서 피어올랐다. (관행적 행로에 오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언제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할지, 돈을 어느 정도 모으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대출금을 갚아나갈지, 인생의 갈 길에 대한 상세한 지도가 이미 다 그려져 있다. 그저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만 하면 된다.)

내가 서있는 샛길은 미지의 곳이었다. 목적지도 방향도 중계지점도 없었다. 막막했다. (지금은 정반대로 생각이 바뀌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삶이 인간의 본질이고, 그 막막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매뉴얼로 일부러 만들어놓은 게 ‘관행적 행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난 목적도 살아갈 방향도 없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매 순간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하고 그 결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한결 마음이 가볍다. 이동진이 밝힌 자신의 삶의 모토가 생각난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샛길 위에서 나는 떠돌았다. 갈 길을 찾지 못했다. 어설프게 시작하고 아쉽게 끝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완벽한 표류였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내가 표류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던 중에 나는 아빠와의 영원한 작별을 겪었고, 당시의 사건이 내게 준 강렬한 (슬픔의) 힘으로 관행적 행로로의 복귀를 꾀했다. “남들처럼 살아보자. 용기 내서 도전해보자.” 잠시 철이 들었었던 것 같다. 공무원이 되었고,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정주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하고 다시 익숙한 샛길로 돌아왔다.

그곳의 ‘멀쩡한’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었느냐를 판단해보기 전에, 내가 그곳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게 중요했다. 특별함이 아니다. 같을 수 없는 슬픔이다. 나는 자신이 '관행적 행로'위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알 필요조차도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차곡차곡 그 길을 무던하게 잘 밟아 가고 있고, 이런 글을 쓸 필요 없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그런 부러움이 커질수록 내 안의 다름은 더욱 선명해지고 나는 그럴 때마다 슬퍼진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

그러나 이제는 받아들이고 살아가려고 한다. 인간이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듯, 지금 내게 다가온 이 상황들을 나는 어찌할 수 없다. 받아들이고 이 속에서 내가 살 길을 찾아 만들어 가야 할 뿐이다. 여태껏 나는 샛길 위의 삶이 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잠시 방황하고 머무르다 떠날 곳이라고 여겨 애착을 갖고 가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나는 여기에서 평생을 머물러야 할 것 같고, 그러고 싶고 이제는 그러려고 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 내 자리라고 생각하고 애착을 갖고 다듬고 키워낼 것이다. 적극적으로 떠도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내 안의 가장 양지바른 곳에다 놓아두고 살 것이다. 그것은 각오라기보다는 어떤 수용에 가깝기에. 흥분보다는 차분함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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